주간동아 504

2005.10.04

연하 소년과 ‘쿨’한 사랑 이야기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9-28 1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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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하 소년과 ‘쿨’한 사랑 이야기
    서른 살 학원강사 여성과 열일곱 살 남학생의 사랑. 이렇게 기본 설정만 놓고 보면 ‘사랑니’는 얼마 전에 개봉된 ‘녹색의자’와 마구 비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재미있는 건 영화를 보고 난 뒤엔 ‘녹색의자’와의 연관성을 탐구하고 싶은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니’는 ‘녹색의자’보다 ‘와니와 준하’나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더 가깝다.

    내용은? 물론 서른 살 학원강사와 그녀의 제자인 열일곱 살 소년의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녹색의자’나 ‘로망스’에서 그랬던 것과는 달리, 이들의 관계는 결코 영화의 중심이 아니다. 영화는 이들의 로맨스를 직설적으로 다루는 대신 주인공인 조인영(김정은)의 내면 묘사에 집중한다.

    영화는 비교적 평범하게 시작한다. 인영은 자신의 학원에 다니는 제자 이석(이태성)이 어린 시절 자신이 짝사랑했던 대상과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인영과 이석의 관계가 점점 깊어지는 동안 영화는 가끔 과거로 돌아가 열일곱 살의 인영과 이석이 어떻게 만났는지 들려준다.

    이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통속적이다. 인영은 웬만한 통속극 하나를 커버할 만한 인공적인 멜로드라마 설정을 이중으로 겪는다. 현재에서 인영은 첫사랑과 닮은 연하 소년을 사랑하는 여자다. 과거에서 인영은 짝사랑했던 죽은 소년의 쌍둥이 형제를 사랑하는 소녀다.



    연하 소년과 ‘쿨’한 사랑 이야기
    그러나 중반에 접어들면 영화는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의 공식에서 벗어난다. 아니, 멜로드라마의 공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상식에서도 벗어난다. 우리가 과거라고 생각했던 건 꼭 회상되는 과거가 아닐 수도 있고(아마, 아닐 것이다), 한 번 정도 봐줄 수 있었던 우연의 일치는 그 도를 넘어선다. 이석의 여자친구가 인영의 학원에 찾아오는 순간부터 영화는 평범한 멜로드라마의 세계에서 벗어나 거의 ‘데이비드 린치’적인 해결 불가능한 퍼즐이 된다. 그 퍼즐을 해결하려는 쓸데없는 노력만 포기한다면 영화의 미로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사랑니’는 ‘쿨’한 영화다. 그냥 태생적으로 쿨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쿨하려고 작정했다. (심지어 술에 취한 극중 인물 한 명이 중간에 ‘아, 쿨하게 살고 싶다’라고 외치기까지 한다!) 영화는 우리의 평범한 삶을 지배하는 고루하고 따분한 편견들과 그것들과 대면해야 하는 귀찮음에서 거의 완벽하게 해방되어 있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된 영화의 세계는 당연히 현실의 평범한 모방은 아니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일차적인 목표였던 우리 시대를 사는 30대 여성의 내면 탐구도 아마 이차적인 듯싶다. 그러기엔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외쳐대는 “쿨하게 살고 싶다!”는 외침의 소리가 너무 강하다. 그러나 그게 단점일까? 아니, 쿨한 건 결코 나쁜 게 아니다. 구질구질한 현실의 반복을 재현하느라 충분히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을 낭비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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