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2

2005.09.13

新한류 주역 ‘눈물의 외출’

  • 입력2005-09-07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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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한류 주역 ‘눈물의 외출’
    한국 TV 드라마나 영화가 동남아시아 관객들에게 어떤 환상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좀더 정교하고 치밀한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일본과 그밖의 나라의 경우는 구분해서 그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보다 대중문화가 발달해 있는 일본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의 잃어버린 과거의 삶을 한류 열풍 속에서 확인한다. 그러나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한류 속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발견한다.

    거칠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불교나 유교적 신앙이 아직도 절대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동남아권에서 한류는, 그들의 삶과 동화되면서도 이질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힘을 발휘한다. 개인주의적 가치관보다는 공동체적 가치관에 대한 선호, 삶의 낙관적 전망보다는 비극적 전망이 오랫동안 지배한 역사적 경험과 함께하면서도 한류는, 어느 순간 그것들을 배반하며 새로운 가치관의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다.

    드라마 ‘여름향기’로 동남아권에서 폭발적 인기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성공한 것은 로맨티시즘과 센티멘털리즘을 극대화한 드라마가 과거에 대한 향수와 지금은 부재하는 정서를 여성들의 가슴속에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배용준, 최지우의 개인적 성공으로 이어졌다. ‘겨울연가’ 등을 비롯해서 윤석호 PD의 사계절 시리즈 판권을 갖고 있는 NHK는 다음 작품으로 송승헌, 손예진 주연의 ‘여름향기’를 와우 케이블 TV를 통해서 먼저 방영했고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본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이상형으로 손예진을 꼽는 경우가 늘어났다. 손예진은 일본 내에서 순수한 사랑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손예진의 인기는 그녀가 주연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한국 개봉 이전에 높은 가격으로 일본에 판매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현재 손예진은 동남아권에서 한류 스타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지명도를 갖고 있다. TV 드라마 ‘여름향기’, 그리고 정우성과 함께 출연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나 ‘클래식’ 등 영화들의 성공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손예진을 부를 때 눈물의 여왕이라고 한다. 그녀는 지금까지 유난히도 슬픔에 사로잡힌 배역들을 많이 맡았다. ‘연애소설’의 수인이나 ‘클래식’의 주희도 그렇지만, 최신작인 ‘외출’의 한서영도 결코 인생을 해피엔딩으로 끌고 가는 인물은 아니다.



    新한류 주역 ‘눈물의 외출’

    TV 드라마 ‘여름향기’,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클래식’(위부터).

    ‘외출’ 시사회는 동남아 취재진 400여명이 참가해서 모두 700여명의 내·외신 기자 및 평론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떠들썩하게 진행됐다. 영화를 보면, 배용준과 손예진이라는 한류 스타를 캐스팅한 이유를 명백하게 알 수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를 통해 일상적 삶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던 허진호 감독의 영화라기보다는, 배용준이나 손예진이라는 한류 상품을 극대화하는 CF 모음 같다는 극단적인 평가도 뒤따르고 있다.

    영화에 대한 불만과는 별개로, 사랑하는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병원에서 남편이 다른 여인, 그것도 가정이 있는 유부녀와 밀월여행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고통을 겪는 한서영 역의 손예진에게는 찬사가 쏟아졌다. 역시 눈물의 여왕답게 손예진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같은 고통을 겪는 그 유부녀의 남편 인수 역의 배용준과 깊은 관계에 빠지는 캐릭터를 뛰어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에 대해 불만도 있을 수 있다. 배용준도 그렇지만 나머지 배우들이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느낌을 주고 있고, 배역이 겪는 고통의 심연 속으로 관객을 끌고 가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표피적인 연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손예진은 나름대로 자신의 연기생활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외출’ 촬영에 임했고 적극적으로 연기를 한 흔적이 곳곳에 있다. 특히 9시간에 걸쳐 촬영한 배용준과의 두 번의 베드신과 술 먹고 취하는 연기 등은 그녀의 이전 연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낯선 모습들이다.

    취한 연기 하느라 진짜 술 마셔 … 밤새 화장실 들락날락

    “‘외출’의 주인공들은 각각 배우자가 있는 결혼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정신적인 사랑만 한다면 관객들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육체적 관계가 빠질 수 없다.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서영의 감정 역시 복잡다양하고 미묘했지만, 힘들게 찍은 베드신이 영화 속에서 잘 표현된 것 같다.”

    손예진은 시사회를 본 뒤 만족감을 표시했다. 너무 떨려서 두 번 이상 보았는데도 아직도 화면 전체가 정확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시사회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언제나 불만스럽다. 좀더 연기를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출’의 결과에 만족한다. 전체적으로 인물의 감정선이 잘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예진은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체질이다. 그래서 술 마시는 장면에 특히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이 장면은 인수 역의 배용준과 감정이 가까워지는 결정적 장면이다. 촬영할 때 그녀는 진짜 술을 마시며 연기했다. 술 대신 물을 잔에 부어놓고 마시는 연기가 아니다.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에 다시 맥주를 한 잔 더 마셨다. 빈속이었다. 그러나 손예진 스스로 영화를 찍고 있다는 사실은 또렷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술에 취하긴 했지만 완전히 취하지는 않았다. 손예진은 감독 대신 ‘컷’ 사인을 외치기도 했다. 그리고 상당 부분 즉흥적인 대사를 했다. 그만큼 서영 역에 몰입되었다는 증거다. 그날 촬영 후 손예진은 밤새도록 호텔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고 한다.

    ‘외출’ 시사회가 끝난 뒤 배용준도 그랬지만 손예진 역시 관객들의 반응을 너무나 궁금해했다. 극적 반전이 있는, 혹은 내러티브가 강한 드라마가 아니라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선이 끌고 가는 영화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배우들은 긴장해 있었다.

    “주어진 대사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디테일한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뺏기지 않는 것이었다.”

    ‘외출’은 손예진을 눈물의 여왕, 멜로의 여왕 자리에서 당분간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1982년생으로 올해 스물세 살인 손예진은, 지금 자신의 연기생활의 꽃을 활짝 피우는 순간에 와 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그녀의 성공과 실패를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완벽한 연기를 갈망하는 그녀의 집념은 결국 우리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을 남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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