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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희생자 두 눈 뜨고 있어”

신기남 의원 아버지에게 고문당한 차익환 씨 분노 … “친일명단 제외 이해 못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고문 희생자 두 눈 뜨고 있어”

“고문 희생자 두 눈 뜨고 있어”

8월29일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 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편찬위)는 2005년 8월29일 친일인사 명단 3090명(중복자 포함 3700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친일 의혹이 있는 여권 정치인의 선친들이 명단에서 빠진 점 때문에 이번 발표의 객관성과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선친인 고 신상묵 씨가 대표적 사례. 편찬위 관계자는 모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자료 불분명”을 신 씨 누락의 이유로 댔다.

그러나 신 씨에게서 고문을 받았던 항일운동가 차익환(車益煥·80·경기 고양시) 씨는 “신 씨를 친일인사 명단에서 누락시킨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차 씨는 편찬위의 친일인사 선발 기준에 의문을 제기했다.

“고문 희생자 두 눈 뜨고 있어”

1944년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돼 신상묵 씨가 지휘한 취조반으로부터 고문을 당한 미술교사 출신 고 김주석 씨가 석방된 뒤 고문받는 장면을 그린 삽화.

편찬위는 친일인사 선정 기준을 군인의 경우 소위 이상, 경찰의 경우 경부(경사) 이상으로 제한했다. 이외 별도로 기타사항을 두어 구체적 친일행위에 대한 자료가 있을 경우에도 친일인사로 분류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신 씨는 일본군 헌병 오장(하사)과 군조(중사)를 지냈으므로 이 기준대로라면 친일인사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친일을 한 구체적인 자료가 있거나 그에게 고문을 당한 생존자의 증언 등이 있다면 그는 친일행위자로 분류될 수도 있다.

“내게 문의 한번 해오지 않았다”

신 씨한테서 고문을 당한 인사들은 아직 생존해 있다. 차 씨와 그의 동료인 김장룡(金章龍·79·부산 순천의원 원장) 씨는 “1944년 7월 경남 진해에서 만세운동 등을 계획하다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당시 일본군 헌병 군조인 신상묵(시게미시 구니오)한테서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편찬위 측에선 “자료가 불분명하다”고 해명했는데, 이에 대해 차 씨는 “신상묵이 일본군 헌병이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신상묵한테서 모진 고문을 당한 당사자인 나와 김장룡 씨가 이렇게 두 눈 뜨고 살아 있지 않은가.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한 쪽에선 내게 문의 한번 해오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편찬위 측의 해명과 달리 신 씨의 친일행위를 보여주는 자료는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지도급’인 교사직을 포기하면서까지 일본군에 지원한 신 씨가 좌담회에 참석해 조선 학생들의 일본군 지원을 독려한 1940년 11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연재 기사물 “반도를 석권한 애국혼의 선풍, 전 조선의 영예, 지도적 계급에서 먼저 지원병이 되자”와 신 씨가 친일 잡지인 ‘삼천리’ 1941년 1월호에 기고한 ‘지원병의 일기’라는 제목의 글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같이 일본 남자인 우리들이 폐하의 군인이 되는 것은 으레 할 일. 내선일체를 이루는 데 가장 먼저 할 일은 지원병이 되는 것” 등이 그에 해당한다.

한편 신 전 의장 측은 지난해 말을 전후해 차 씨에게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사과를 했는데, 이에 대해 차 씨는 “신 전 의장이 직접 온 것도 아니고 대신 사람을 보냈다. 그들은 내게 사과하기보다는 나를 살피러 온 사람 같았다. 신 전 의장은 나 대신 광복회를 찾아가 사과를 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9.13 502호 (p16~16)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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