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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기행|권력쟁탈전과 단맥(斷脈)

회안대군 무덤 뒤가 훼손된 까닭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dgkim@core.woosuk.ac.kr

회안대군 무덤 뒤가 훼손된 까닭

회안대군 무덤 뒤가 훼손된 까닭

회안대군의 무덤. 회안대군 후손들이 세워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혈맥을 끊은’ 표지판과 ‘산맥을 끊은 흔적지’ 표지판(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2월 초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세계한국학대회’가 열렸다. 한국학중앙연구원(정신문화원 후신)과 베이징대학의 공동 주최로 열린 한국학에 대한 세계학술대회였다. 필자도 ‘한반도 풍수사상의 수용과 변천사’라는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베이징에 내렸다.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은 베이징대학 조선어문학부 대학원생이었다. 우리말을 너무 유창하게 구사해 조선족이거나 한국 유학생인 줄 알았는데 공국희라는 한족이었다. 필자의 논문 주제가 풍수라는 것을 알고 공국희 씨는 중국에서 전해지는 풍수 야사 하나를 들려주었다.

“장제스 정권이 대만으로 밀려나기 전 국민당 정권은 마오쩌둥 주석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비열한 짓을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 주석 조상 묘를 폭격, 없애고자 한 것이었다. 다행히 고향 사람들이 엉뚱한 곳을 알려주어 큰 피해는 면했으나 장제스 군대의 무차별 폭격으로 마 주석 조상 묘 일부가 손상을 입었다. 그 까닭에서인지 마 주석을 제외한 일가 친척들에게 불행한 일이 많이 일어나 지금은 거의 후손이 끊긴 상황이 되었다.”

이는 타인의 조상 무덤을 훼손함으로써 그 집안의 번성을 방해한다는 전형적인 ‘단맥(斷脈)’에 해당하는 것으로 야사지만 풍수사(風水史) 전체를 놓고 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 몽염 장군의 비운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몽염은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의 2인자로, 그는 만리장성을 쌓았던 실질적 총책임자였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고 뒤를 이은 후계자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하게 되자 이렇게 탄식했다. “요동에서 임조까지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지맥을 잘랐겠는가. 바로 이것이 내 죽을죄다.”

중국에서 마오쩌둥 조상 묘 일화



또 수나라가 망하자 당시 민간에서는 수 왕조가 대규모 운하를 건설하면서 많은 지맥을 잘랐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이 조선에 인재가 나오지 못하도록 전국 곳곳의 맥을 잘랐다는 전설이나 일제강점기 때 박았다는 쇠말뚝 이야기도 맥을 자르면 재앙이 생긴다는 관념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이러한 단맥은 심지어 형제간에서도 발생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회안대군 묘 사건이다.

1400년 태조 이성계의 아들 방간과 방원(태종) 사이에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 요즈음 재벌 2세 사이에 발생하는 ‘왕자의 난’의 원조인 셈이다.

왕자의 난에서 패한 방간(회안대군)은 포로로 잡힌 뒤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곧 사면되어 황해도 토산으로 유배된다. 얼마 후 방간은 전주로 유배지를 옮긴다. 유배생활 20년이 흐르면서 형제간 살육의 감정이 누그러지자 태종은 형님 회안대군을 한양으로 올라오도록 한다. 그러나 회안대군은 한양으로 오던 중 충남 은진에서 병사한다.

이때가 서기 1420년, 회안대군 나이 57세 때다. 회안대군 묘비 문은 ‘이때 태종은 예장(禮葬)의 예를 베풀고 지관 세 명을 파견하여 무덤 자리를 잡게 했는데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형상인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의 명당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비문에는 없으나 후손들 사이에 전하는 이야기다.

장례를 치르고 상경한 지관들이 태종에게 경과를 보고하자, 태종은 그 자리가 어떠냐고 물었다. 이때 눈치 없는 지관이 ‘군왕이 나올 정도’로 좋은 자리라고 말했다. 이에 태종은 회안대군의 자손이 군왕이 되는 것을 염려해 곧바로 사람을 보내 회안대군 무덤 뒤 맥을 자르게 했다. 그렇게 하면 방간 후손의 번창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회안대군의 무덤 뒤 산 정상에 올라보면 여기저기 심하게 골이 파인 흔적이 보인다. 그때 수백명의 사람을 동원하여 맥을 자른 흔적이라고 한다. 최근 이곳을 답사했을 때 회안대군의 후손이 세웠는지 ‘혈맥을 자른 흔적’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어 600년 전의 일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주간동아 2005.08.16 498호 (p93~93)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dgkim@core.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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