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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교수의 ‘과학 속 세상史’

소설 … 비평 … 물리 … ‘한국판 케스틀러’를 기다리며

  •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소설 … 비평 … 물리 … ‘한국판 케스틀러’를 기다리며

아서 케스틀러(Arthur Koestler, 1905~83)는 ‘한낮의 어둠(Darkness at Noon)’ 또는 ‘정오의 어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소설로 잘 알려진 영국의 비평가이자 소설가다. 원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1922년부터 빈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독일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했으나 37년 스탈린의 ‘모스크바 대숙청’에 환멸을 느껴 탈당했다.

그 당시 스탈린은 혁명 동지이던 니콜라이 부하린 등을 ‘반혁명죄’로 몰아 처형했고, 이를 계기로 케스틀러는 소련 공산주의의 폭력성에 반발했던 것이다. 바로 그 사건을 소설로 묘사한 ‘한낮의 어둠’을 막연하게 알며 내가 미국 유학을 떠난 게 67년 2월. 그리고 나는 뜻밖에 그가 상당한 과학사 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학사 과목의 교재로 케스틀러의 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분수령(Watershed)’이란 제목의 자그마한 페이퍼백이었는데, 케플러의 타원궤도설의 발견을 재미있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내게 있는 그 책의 끝 장에는 67년 11월8일 밤에 책을 다 읽었다고 적혀 있다.

사실 ‘분수령’은 천문학 내지 우주관의 역사에 관해 쓴 과학사 책 ‘몽유병자들(The Sleepwalkers, 1959)’을 발췌한 것이다. 원래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케스틀러는 청년 시절 치열한 공산주의 운동과 신문기자 생활 등을 거쳐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지성인이다. 45년 영국인이 되기까지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신문기자로 활약했고, 스페인내란에 가담하여 포로가 되기도 했다. 하긴 1930년대 유럽 청년 지식인들이 대부분 그렇기도 했지만.

그는 사회 개혁을 추구하는 지식인의 태도를 둘로 나눠 그 사이의 긴장 관계를 유지할 때 사회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나는 인민위원(코미사·commissar)의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명상가(yogi)의 태도다. 급진개혁을 추구하는 인민위원의 태도는 자칫 나선형의 모순이나 비탈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간디 같은 명상가의 태도로도 세상을 고쳐갈 수 없다.

케스틀러는 많은 책을 써서 큰 영향을 준 사람이지만, 죽고 나서는 갖가지 이상한 해석도 따랐다. 그는 세 번째 아내 신시아와 83년 3월3일 동반자살했다. 케스틀러가 마지막 가는 길에 아내를 교묘하게 유도해 동반했다는 말도 나온다. 그녀는 이렇다 할 건강상 문제가 없는 57세의 여성이었고, 케스틀러는 79세의 나이에 파킨슨씨병과 말기 백혈병까지 앓고 있는 환자였으니…. 또 그는 사르트르의 애인이던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잠깐 동거한 적도 있는데, 그 이유는 사르트르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98년에 나온 그의 전기는 케스틀러가 몇 명의 여성을 폭행했고, 영화감독 질 크레이기를 강간했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여하간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천문학에 관한 유명한 저서를 남겼지만, 그는 생명과학과 심리학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하는 빈대학 캄머러의 일생을 책으로 썼고(1971), 유산을 에든버러대학에 기부해 ‘케스틀러연구소’를 만들었다. 케스틀러연구소는 초능력, ESP 등 초심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오늘 한국에 필요한 것은 인문사회와 과학을 아우르는 케스틀러 같은 지성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부도덕한 측면은 빼고 말이다.



주간동아 2005.08.16 498호 (p75~75)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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