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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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정치, 영화의 ‘삼각 로맨스’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3-24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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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정치, 영화의 ‘삼각 로맨스’
    68 학생운동은 당시 젊은 시절을 보냈던 노년 층 영화광들이 회상하기 딱 좋은 소재다. 시네마테크 창립자 앙리 랑글루아의 해직에 반대하는 시위가 혁명 운동을 촉발하는 불꽃이 되었으니, 컴컴한 극장 안에서 흐릿하게 떠오른 이미지에 불과해 보이는 영화가 뭔가 거창한 역사적 태동에 한몫했던 셈이다.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롱 아일랜드의 사랑과 죽음’의 저자 길버트 어데어의 소설 ‘몽상가들’을 빌려 이 시기를 회상하고 싶었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베르톨루치는 68혁명 당시 20대 후반의 혈기왕성한 젊은이였고 거장 대열에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사회 경험이 없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이었던 영화의 주인공들과는 조금 처지가 달랐지만, 그래도 그 정도만으로도 적극적으로 당시를 회고할 자세가 갖추어진 셈이다. 아니, 오히려 여유 있게 회상할 수 있을 정도랄까.

    영화는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파리로 왔다가 시네마테크에 눌러앉은 미국인 영화광 매튜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영화 초반에 그는 랑글루아의 해직에 반대하는 시위 대열에서 쌍둥이 남매인 이자벨과 테오를 만나 친구가 된다. 이자벨과 테오는 부모가 여행을 떠나자 빈 아파트에 매튜를 초대한다. 바깥 세상은 68혁명의 열기로 진동하는데, 그들은 마치 자궁 속의 태아처럼 아파트 건물 안에 틀어박혀 서로의 육체와 정신을 탐하기 시작한다. 전 세계 검열관과 심의위원들을 난처하게 한 노출 장면과 섹스 신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

    이 다소 근친상간적인 삼각 로맨스는 세 개의 축을 통해 전개된다. 섹스, 정치 그리고 영화. 섹스와 정치는 너무나도 베르톨루치적인 주제라 그의 전작들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도 전에 벌써 본 듯한 느낌을 느낄 것이다.

    세 개의 축 가운데 나름대로 영화에 고유의 질감을 부여하는 것은 ‘영화’다. 지금까지 카메라 뒤에 숨어 있던 영화라는 매체가 이번엔 당당한 주인공이 되어 중심으로 들어온다. 주인공들은 모두 지독한 영화광이다. 그들은 영화라는 매체로 세상을 보고 행동하고 말하고 섹스를 한다. ‘크리스티나 여왕’ ‘쥘과 짐’ ‘무세트’ ‘프릭스’ 같은 영화들이 섞여들며 인용된다. ‘몽상가’들은 그래서 종종 장편영화를 위장한 ‘영퀴(영화퀴즈)’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후반에 접어들면 이들 삼총사를 연결해주던 영화 천국은 실제 세계의 파동에 의해 붕괴된다. 아마 베르톨루치는 영화 예술이 실제 세계에 끼치는 영향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드물게나마 영화가 혁명의 불씨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이 어리디 어린 예술이 할 수 있는 건 겨우 그뿐인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영화관 밖으로 나가야 한다.

    ● Tips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41년생. 열두 살에 영화를 만들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이탈리아 영화사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매우 ‘성적이고 정치적인’ 영화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를 비롯해 ‘하나의 선택’과 ‘마지막 황제’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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