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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21세기는 유목민 시대로 간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21세기는 유목민 시대로 간다”

“21세기는 유목민 시대로 간다”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웅진닷컴 펴냄/ 536쪽/ 2만원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노마드(nomad)’는 현대에 들어오면서 의미가 확대된다. 그 말은 단순히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불모지를 생성의 땅으로 바꾸고,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꿔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뜻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저자 자크 아탈리는 이미 ‘21세기 사전’에서 ‘디지털 노마드’라는 신개념어를 만들어 유목의 시대를 예견했다. “노마드적 삶의 양식과 문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현대인의 필연적 패러다임이자 미래 세계를 바꾸는 주된 동력”으로 설명하고 있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은 유목민을 야만과 무지의 역사로 폄하한 정착민의 시선이 아닌, 새것을 창조했던 유목민의 시각에서 인류 역사와 문화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문명발전의 주체가 정착민이라고 철석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600만년에 이르는 인류사에서 정주성은 0.1%에 그칠 뿐이다. 언어, 종교, 민주주의, 시장, 예술 등 문명의 실마리는 유목민이 제공했다. 정착민이 발견해낸 것은 고작 국가와 세금, 그리고 감옥뿐이다.”

최근 5000년 인류 역사는 정착민의 입을 통해서만 전해져왔다. 그들은 야만적인 유목민족의 침략에 대항해 부와 재산을 스스로 보호하고 문명국가를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똑같이 노마드였던 정착민들은 우월감으로 다른 노마드 민족에 대해 항상 경계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문명은 노마드인들을 매개로 하여 빠르게 흘러다녔다.

히타이트족, 수레르족, 흉노족, 페니키아인, 아바르인…. 이들은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키고 사라져간 종족들이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마지막 노마드인들은 약 1000만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인도에 가장 많다. 그러나 빠르게 수가 줄어들고 있다. 노마드 종족들은 부당한 대접을 받으며 주변인으로 전락, 아주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갈 뿐이다. 대체로 지구상에서 가장 척박한 곳에 틀어박혀 있다. 건조지대나 밀림, 그리고 가장 추운 곳이 그들의 생존 환경이다.



“노마드인들의 4/5 이상이 극빈자다. 더 심각한 것은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활양식으로는 살아가기 힘들고, 정착민들의 생활양식은 그들에게 문을 닫아버렸다. 노마드인들은 말 그대로 앞뒤가 꽉 막힌 절망 상태다. 많은 노마드인들이 알코올 중독으로 쓰러지거나 다른 형태의 자살을 택해 삶을 마감한다.” 사라져가는 그들에게 저자는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다.

아탈리는 인류를 세 부류로 나눈다. 첫 번째는 어쩔 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이주 노동자나 정치 망명객 등이 해당한다. 두 번째는 정착민으로 농민, 장인, 공무원, 기술자, 의사, 교사 등 한곳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세 번째는 자발적 노마드로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 즉 음악가·통역사·연극배우·영화감독 등 유희적 노마드다.

지구에 사는 60억 인구 중 5억명 넘는 사람들이 일 또는 정치와 관련된 유목민으로 구분된다. 해마다 10억명 이상이 좋든 싫든 여행을 한다. 또 그보다 훨씬 많은 ‘도시 노마드인’들이 노동을 위해 매일 이동한다. 저자는 정착민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노마드 행렬이 잠시 쉬어가는 오아시스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도시와 국가를 이동하는 노마드인들은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넘어 새것을 창조해내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국경은 허물어지고 마지막 정착민 제국(미국)은 시장, 민주주의, 이슬람이란 새로운 노마드 세력 앞에서 마지막 몸부림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21세기는 디지털 장비로 무장하고 지구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시대다. 특히 한국은 휴대전화, 노트북, PDA 등 첨단 디지털 장비의 진화 속도가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디지털 장비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다. 한국에 대해 저자는 미래 “노마드의 실험실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가 인류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갈지 궁금하다.

● Tips

자크 아탈리 1943년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소수 정예 엘리트들이 모이는 그랑제콜에서 공학, 토목학, 정치,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 뒤 프랑스 최고지도자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 석학으로 ‘파우스트에 가장 근접한 유럽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간동아 2005.03.29 478호 (p90~91)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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