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8

2005.03.29

“오강현 사장 밀어내려는 세력 있다”

해임 사유 놓고 정·관가 ‘시끌’ … 집요한 비리 캐기로 노골적 사퇴 압력?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5-03-24 12: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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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강현 사장 밀어내려는 세력 있다”

    인도양을 가르는 LNG선.

    정부 산하 공기업 사장이, 정부가 옷을 벗기려 하자 거세게 반발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 “공기업을 개혁하라”며 내려보낸 관료 출신 사장이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낯선 장면이 연출된 것.

    주인공은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 오강현 사장. 합리적이면서도 강단과 추진력을 갖춘인사라는 게 그에 대한 주변의 평가. 정치권에서 날아온 ‘낙하산 사장’과 달리 이력도 흠잡을 데 없다. 행정고시 9회,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 차관보, 특허청장.

    공기업 경력도 화려하다. 특허청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뒤 한국기술거래소 사장, 강원랜드 사장을 거쳐 2003년 9월 가스공사에 둥지를 틀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오 사장은 산자부 장관 후보로도 오르내릴 만큼 검증된 인물”이라고 했다.

    실적 또한 나쁘지 않았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이익(3230억원)을 냈다. 기획예산처는 공기업 고객만족도 평가에서 가스공사를 1위로 평가했다. 사외이사들마저도 지난해 경영실적을 평가하면서 경영 능력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줬다.

    지난해 경영 실적 평가서 후한 점수



    3월14일 가스공사 이사회는 이런 오 사장을 해임하겠다고 결의했다. 이유는 이렇다. △지난해 11월 비상근무령이 발동됐을 때 근무지를 이탈해 골프를 쳤으며 △노조의 정부 반대 집회를 용인했고 △정부 방침과 달리 5조 3교대 근무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법정 대응도 검토하겠다”는 오 사장의 거센 반발대로, 이사회가 내건 구실은 해임 사유로 꼽기엔 궁색한 게 사실이다. 골프 행사만 하더라도, 가스공사의 고객사(바이어)를 대상으로 한 관례 성격이 짙었다. 99년부터 평일에 도시가스 회사 사장단 및 한전의 발전자회사 사장단과 간담회를 연 뒤 골프를 해왔다는 것. 게다가 소요된 비용도 과거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3월18일 현재) 그의 해임 여부는 3월31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18일까지 해외출장 중인 오 사장은 가스공사에 e메일을 통해 “노조를 등에 업고 사장직에 연연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면 주총 전이라도 다른 결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자진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오 사장의 전례 없는 대응은 관가와 공기업 주변에서 적지 않은 화제가 되고 있다. 관료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으며 장관이 될 꿈을 키웠던 그가 정부에 반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보통의 공기업 사장이라면 ‘위’에서 ‘사인’이 오면 보기 좋게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자리’일 수밖에 없는 공기업 사장의 한계를 잘 아는 그가 정부와 정면승부를 벌이는 듯한 태도를 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 사장 주변에선 오 사장을 밀어내기 위한 ‘표적 사정’으로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많다. 오 사장은 사내 전산망에 올린 글에서 “음해와 오해에서 비롯된 부당한 압력에 굴복할 수 없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 사장의 한 측근은 “한마디로 퇴로를 열어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를 했다”고 귀띔했다. “모양새 좋게 물러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기는커녕 지난해 국정감사 이후 감사원, 총리실, 대통령 민정수석실 등에서 잇따라 오 사장의 뒤를 캤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비리가 있어 옷을 벗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버텼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측근의 설명이다.

    “지난해 골프를 쳤을 때는 골프장에 사정 당국 관계자가 미리 와 있었다. ‘외부’ 세력과 연계된 내부 제보자가 있었다는 얘기다. 다음날 곧바로 사정 당국 관계자들이 가스공사 사장실로 들이닥쳐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이때 집무실 밖으로 큰 소리가 들릴 만큼 오 사장이 크게 반발했다.”

    알짜 자리 소문 … “노리는 사람 많다”

    오 사장이 ‘괘씸죄’에 걸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산자부 출신으로서 산자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것. 산자부와 오 사장은 가스산업 구조개편 등에서 이견이 있었다. 산자부는 가스산업 구조 개편안의 일환으로 발전회사 등이 액화천연가스 가스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도입하는 제도를 시행하려 했지만, 오 사장의 반대에 부딪혔다. 가스공사와 발전자회사 등이 경쟁을 통해 가스를 들여오면 이점이 많다는 게 산자부의 판단이었으나, 가스공사는 과당 경쟁으로 오히려 손해를 본다고 반박했다. 고시 후배인 이희범 산자부 장관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스산업 구조개편 등에서 오 사장과 의견을 같이해온 가스공사 노조는 공기업의 자율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문제 제기에 나서고 있다. 오 사장의 우군을 자처한 것. 주총에서의 물리적 저지를 비롯해 상정 금지 가처분 신청, 사외이사 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 감사원 감사 청구 등을 준비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산자부가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퇴 압력을 계속해왔고, 스스로 물러나지 않자 사외이사를 동원해 해임안을 결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자부 주변에선 ‘윗선’ 얘기가 흘러나온다. 오 사장 해임 절차를 밟게 된 것은 청와대와 정치권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라는 것. 가스공사 사장직은 가스 도입 규모가 수십조 단위에 이르러 가스를 판매하는 나라에서 칙사 대접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저장 설비와 운송 시스템 등 관련 산업도 규모가 매우 커 ‘알짜’로 통해왔다.

    게다가 가스공사 사장직은 연봉이 3억원으로 공기업 사장 중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가스공사 관계자는 “성과급을 고려하면 1억5000만~2억8000만원이고, 세금을 공제하면 7000만~1억5000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아무튼 정치권에선 가스공사 사장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오 사장 해임 절차를 밟고 있는 것에 대해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6~7명은 된다는 게 여권 핵심인사의 귀띔이다.

    오 사장의 도덕성에 대한 가스공사 내부의 평가는 후하다. 역대 어느 사장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는 것. “업자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가 하면, 다른 사장들과 달리 상조회비나 경조사비도 모두 개인 돈으로 냈다. 음해성 투서에 시달린 것도 구매 계약과 관련한 편의제공 요구 등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거절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가스공사의 한 관계자)

    그렇다고는 해도 여권에선 “할 만큼 한 사람인데, 청와대와 오 사장 사이에 낀 산자부 후배 공무원들을 더는 난처하게 하지 말고 순순히 물러나는 게 도리 아니겠느냐”는 수군거림이 나온다. “가스공사 사장으로 갈 때도 고대 출신 여권 실세 정치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차피 정치적인 자리인 만큼 ‘위’에서 ‘사인’이 오면 모양 좋게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기업 이사회가 사장에 대해 해임을 결의한 것도, 이에 대해 해당 공기업 사장이 거세게 반발한 것도 모두 처음 있는 일이다. 가스공사의 조직 위기로까지 발전한 ‘오강현 사태’는 공기업 CEO의 자율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공기업 인사는 다시 한번 시험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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