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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창ㅣ 할리우드와 동양 무술

‘태권도’ 익힌 주인공 열연 보고 싶다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태권도’ 익힌 주인공 열연 보고 싶다

‘태권도’  익힌 주인공 열연 보고 싶다
왜군을 물리친 거북선. 그런데 그 거북선이 일본 나무로 만들어졌다?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수십억원을 들여 제작한 거북선이 일본산 나무로 만들어진 사실이 최근 밝혀져 논란을 빚었다. 일본산 수입 삼나무를 사용했다는 것인데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재질은 단단한 소나무인 춘양목으로 선체를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일본과의 아픈 역사적 관계를 생각할 때 우리 민족의 자긍심의 상징이라 할 만한 거북선을 ‘적국’ 일본의 나무로 만들었다니. 어처구니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자존심이 상한 이들도 있을 법하다.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던 원형 그대로 복원을 한다는 점에서나, 또 소나무가 한국을 상징하는 수목이라는 점에서나 우리의 소나무로 만드는 게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상징인 소나무에 대한 얘기에 이르면 서글픈 사실이 하나 더 드러난다. 3000년 전부터 한반도에 자라기 시작해 제주도에서 백두산까지 전국에 걸쳐 볼 수 있는 한민족의 나무, 소나무. 그러나 이 소나무가 외국에서는 ‘일본의 나무’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에 알려진 소나무의 이름은 ‘일본 적송(Japanese Red Pine)’이다. 바깥 세상을 먼저 접한 일본인들이 이 나무를 먼저 세계에 소개했기 때문이다. 불의의 뒤통수를 맞는 듯한, 유쾌할 수 없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권도에도 우울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태권도가 외국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의 일이었다. 이때 해외로 나간 태권도 1세대 사범들은 무엇보다 생소한 태권도를 알리는 것에서부터 애를 먹었다. 궁리 끝에 짜낸 것이 그보다 몇 십년 전에 들어와 있던 일본의 가라데 이름을 빌려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코리안 가라데(Korean Karate)’라는 이름으로 도장의 간판을 올린 것이다. 그 뒤로 태권도가 많이 알려지면서 ‘태권도’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지만 태권도는 한동안 가라데의 ‘변종’쯤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가라데의 발상지가 우리나라 고대 가야라는 설이 있는데,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소나무와 태권도의 이 같은 ‘과거사’는 결국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국제사회 시각의 ‘과거사’를 보여준다. 서양에서 동양문화 하면 중국과 일본이었기에 한국은 국제 무대에 진입하기 위해 일본과 중국의 ‘옷’을 빌려야 했던 것이다.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지금, 세계 각국에서 수천만명의 동호인을 자랑하는 태권도는 이제 과거의 초라한 기억은 떨쳐버리게 됐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만큼은 태권도가 아직도 소수자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양 무술은 쿵푸 아니면 가라데이기 때문이다. 가라데가 미국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60년대다. 이때는 일본 경제의 상승기와 겹친다. 쭉쭉 뻗어나가는 일본 경제력이 가라데 보급에 후원자 구실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 한국인의 역할이 컸다는 점도 흥미롭다. 바로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모델인 최영의, 일명 최배달이었다. 이른바 ‘극진 가라데’를 창시한 그는 작은 체구에 놀라운 격투 기술을 선보이며 가라데에 신비의 무술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씌웠다.

가라데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류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척 노리스, 스티븐 시갈 등 동양 무술을 구사하는 액션배우들이 거의 가라데 고수들이라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80년대 국내에 개봉된 ‘베스트 키드’라는 하이틴물도 사실은 원제목이 ‘가라데 키드’였다. 나약한 소년이 가라데를 배우면서 강인한 청년으로 성장해간다는 줄거리의 이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는 ‘가라데’라는 말에 대해 한국 관객들이 품을 수 있는 거부감을 염려했던 듯하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라데의 독점구조가 조성돼 있는 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한 역사로 본다면 중국의 쿵푸가 가라데보다 ‘선배’다. 가라데와 유도, 쿵푸가 격돌하는 이소룡의 ‘정무문’에서처럼 중국과 일본의 무술이 스크린을 양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양파전에 태권도가 뒤늦게 뛰어든 셈이지만 아직 이렇다 할 작품은 보기 힘들다. 올림픽 경기 때 듣는 얘기처럼, 태권도 동작이 너무 정형화되고 단조롭다는 지적을 받기 때문일까? 태권도를 익힌 ‘바람의 파이터’(사진)라도 나올 순 없을까?



주간동아 2005.03.08 475호 (p85~85)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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