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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판교, 황금의 땅인가

판교엔 지금 ‘인적 뜸’ “여기가 정말 판교 맞아”

부동산 업소들 개점 휴업 ‘대박 열풍’ 실감 안 나 … 오히려 분당엔 ‘꾼’ 북적, 판교 효과 ‘톡톡’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판교엔 지금 ‘인적 뜸’ “여기가 정말 판교 맞아”

판교엔 지금 ‘인적 뜸’ “여기가 정말 판교 맞아”

하늘에서 내려다본 판교. 서울 접근성이 좋고 인구밀도가 낮아 입성을 꿈꾸는 실수요자가 많다. 이래저래 청약 열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서울 광화문에서 한남대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20분여를 가면 판교 인터체인지에 도착한다. 경기 성남시 분당까지는 오른쪽 길로 들어서도 꽤 달려야 하지만, 인터체인지 바로 왼편에 온 국민의 관심사인 판교 신도시 예정지가 있다. 서울에서 ‘너무’ 가깝다.

‘2·17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판교발(發) 투기 열풍’을 가라앉힐까, 채권과 분양가 병행입찰제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판교에 상주할 국세청 직원이 투기꾼들을 잡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판교에 직접 가보면, 정부의 안정대책이나 단속 등은 ‘백약이 무효’하다는 게 느껴진다. 신도시로 성공했다는 분당보다 서울과 더 가까운데, 녹지율은 35%로 분당(27%)보다 높고, 인구밀도는 분당의 절반(95명/ha)이란다. 신분당선 전철이 완공되면 신사동에서 판교까지 약 14분 거리. 출퇴근이 쉬울 뿐 아니라, 강남문화권에 들어간다. 분당과 판교 사이 경기 성남시 분당 서현동에 사무실을 낸 한 공인중개사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떠올랐다.

“무슨 대책이 나와도, 판교는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 별로 효과가 없을 겁니다. 실수요자가 많으니 거품이 있어도 폭락은 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그는 판교 아파트 가격이 ‘분당의 강남’으로 꼽히는 정자동 주상복합아파트에 필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도 제일 비싸다고 꼽히는 파크뷰는 최근 33평형이 평당 2000만원을 넘어섰다. 판교 시장에 잔뜩 기대를 걸고 사무실까지 옮긴 그의 말에서 과장이 느껴지긴 했지만, 실수요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좋은 주거지 조건을 판교가 갖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도대체 집이 뭐기에.



판교1 : 청약통장 거래 ‘뚝’

정작 판교 신도시 예정지는 썰렁하다. ‘2·17 판교 대책’이 발표되기 전이나 후나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판교동사무소에서 이어진 골목에 부동산 업소들이 30개 남짓 있지만 문들은 대부분 닫혀 있고, 불은 꺼져 을씨년스럽다. 유일하게 불을 밝힌 정육점의 색등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간혹 언론사의 취재 차량들이 보이고, 공터에 주차된 대형 승용차들이 행인 수보다 훨씬 많아, 이곳이 ‘판교’임을 실감하게 할 뿐이다.

판교엔 지금 ‘인적 뜸’ “여기가 정말 판교 맞아”
그나마 문을 연 부동산 사무실도 난방기를 꺼놓아 한데나 다름없다. 손님이 들어서자 주인은 난로를 돌려주지만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다. ‘청약통장 상담사절’이라 써붙인 걸 봤지만 “청약통장은 전혀 거래가 없냐”고 묻자 “지금 청약통장 갖고 뭐하시게? 떨어질지 붙을지 모르는 걸 몇 천만원씩 주고 사시려고? 설사 당첨돼도, 5년 동안 전매금지인 거 아시죠? 누굴 믿고 몇 억이 될지 몇 십억이 될지 모르는 집을 남의 이름으로 등기해놓고 사시겠소?”

그는 등기가 가능한 ‘대토’의 지분을 권했다. 대토는 판교 원주민들에게 할당된 상업지·주택지로 이미 80평에 4억원 정도의 권리금이 붙어 있다고 했다. 여기에 실제 땅값을 추가로 내야 하지만 등기가 가능해 안심할 수 있고, 분양되면 권리금 이상으로 뛸 것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부동산 사무소도 비슷했다. 공인중개사 이모씨는 “하루 대여섯 건씩 성남 1순위 주민이라는 사람들이 청약통장을 팔아달라는 전화가 온다. 성남에서 40세로 10년 이상 집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첨돼도 3억원을 마련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자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투자와 주거를 겸한다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분당 아파트를 빨리 사라며 분당 사무실을 소개해주었다. 한때 판교 원주민 이주권과 보상 상담으로 성황을 이루었던 부동산 골목은 이제 어쩌다 나오는 대토 거래와 서울 손님을 분당으로 보내주는 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여기저기 공인중개사에서 나온 이들이 모여 식사를 하러 떠났다. 토지 정리가 시작되면 이 골목은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판교2 : 분당, 부동산 값 급등

판교 신도시 예정지에서 길 하나, 다리 하나를 건너면 성남시 분당구다. 이곳 상가, 오피스텔, 주상복합 등에 공인중개사 사무실들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판교 신도시 개발 열풍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판교가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넓고 환한 사무실과 활기가 판교 개발지 부동산들과는 사뭇 다르다. 분양이 6월에서 11월로 미뤄졌지만, 판교 수요 덕분에 분당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고 한다.

풍림리치공인중개사 사무소 전용님 대표는 “판교를 분당 이상으로 치는 이유는 우리나라 부동산의 가격이 강남과 얼마나 쉽게 연결되느냐로 결정돼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판교는 강남이나 분당보다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된 곳이면서 강남권과 더 가깝습니다. 이런 매력이 있는데 국민주택 규모는 평당 900만원대, 중대형은 1500만원 남짓으로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소형 아파트의 프리미엄이 3억원은 될 걸로 봅니다. 분양가를 낮추는 게 결국 투기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분양가를 낮추는 것보다 아주 비싸게 팔아 그 이익금으로 서민주택을 싸게 공급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판교엔 지금 ‘인적 뜸’ “여기가 정말 판교 맞아”

판교의 부동산 거리. 한때 통장 거래와 이주민 상담, 대토 거래로 활기를 띠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전 대표는 현재 전혀 입주가 되지 않은 동백지구와 일부 남은 용인 입주가 100% 이뤄지면 어마어마한 인구가 서울로 출퇴근을 하게 될 것이므로 도로 건설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아침저녁으로 ‘교통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문제 역시 “분당도 같이 겪게 될 문제이므로 판교 자체의 악재는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분당에서 집값이 비교적 낮은 야탑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도 ‘판교 효과’를 기대하는 강남 사모님들의 전화를 받기에 바빴다. 야탑동은 평당 1100만원 선인데, 호가는 1200만원까지 간다고 했다.

“분당 아파트 값이 최근 엄청나게 올랐어요. 급매물은 나오자마자 나가고 분양 때 화제가 됐다 거품이 꺼졌던 한 주상복합의 경우 이미 1700만원 선까지 다시 뛰었어요. 그러나 가격이 너무 많이 뛰어서인지 실제 구매자는 없는 상황이고요.”

그는 청약통장 거래에 대해 “외환위기 전 용인에서 통장이 프리미엄만 6000만원까지 갔는데, 분양가 인상되고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무용지물이 되는 바람에 고소 사태가 벌어진 경험이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믿을 만한 사람끼리’ 당첨이 되면 7000만원을 지급한다는 ‘쌍방합의서’를 쓰고 예금액에 300만~400만원 더 얹어 거래하는 경우를 봤다”고 전해주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다툼이 생길 경우 ‘불법 거래’인 만큼 적극적으로 권리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 이혼을 해서 남편을 20년 무주택 세대주로 만든다는 소문도 이 ‘믿을 만한 사람’ 찾기가 어려워서일 것이다 .

이곳에서 만난 한 ‘투자자’는 이런 충고를 했다.

“내가 분당의 한 여성사회단체 회원인데, 요즘 앉으면 판교 얘기뿐입니다. 난 지난 30년 동안 압구정동, 대치동, 도곡동, 용인까지 안 사본 아파트가 없어요. 이번에 판교 넣으려고 식구 수대로 청약통장을 만들어놓았어요. 그때 주소도 옮길 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고. 아들이 여자친구 사귀면 그애도 내가 청약통장부터 만들어줘요. 직장 10년을 다닌들 3억원을 모을 수 있나요? 그러니 공짜 로또 사는 셈 치는 거죠. 로또보다 확률은 더 높잖아요.”

‘꼭 청약하라’는 그의 충고가 귀 안에서 크게 울린다.

판교엔 지금 ‘인적 뜸’ “여기가 정말 판교 맞아”

판교에서 화훼와 농사업 등을 해온 임대 주민들 500여명이 남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수평 이동’이 가능한 수준의 보상을 요구한다.

판교3 : 베벌리힐스를 꿈꾸다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의 헐값 매입 의혹이 일고 있는 곳도 판교 택지다. 서판교 개발지 옆 남서울 CC 길이 닿는 언덕에 400평 단위 105가구가 들어설 대지가 조성돼 있다. 아래는 숲이 펼쳐지고, 멀리 불빛으로 둘러싸인 야경까지 ‘판교 힐스’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다. 현재 5가구가 살고 있고 다른 시설도 없지만 입구에 바리케이드와 경비 초소가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용인 고기동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여러 차례 경비원에게 부탁을 했지만, ‘절대’ 통과시킬 수 없다며 소리를 높였다.

판교 힐스를 비롯해 판교 일대 전원주택지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 용인 고기동이다. 분당 미금에서 용인 쪽으로 접어들어 차 하나 다닐 만한 길을 따라 끝없이 가다보면 두메산골 풍경이 이어지고 마침내 ‘쫛쫛토지개발’ ‘부동산’ 등 간판이 수십 개 모인 분지에 도달한다. 판교에서 보면 ‘판교 힐스’ 넘어서인데 낙생저수지와 규모가 큰 맛집들이 이어져 강남 ‘사모님’들의 모임이 자주 열린다. 그 사모님들이 한번씩 들르는 곳이 이곳 부동산 사무실이다.

“아이들 다 키우고 강남·분당 아파트 생활에 지친 분들이 많이 찾아오십니다. 영덕-판교-양재간 도로가 2008년 완공되면 강남권에 들면서 자연 속에서 살 수 있으니까요. 요즘 판교 때문에 이곳도 땅값이 꿈틀대 바로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평당 250만원 정도 합니다.”(함광호 신세계투자개발)

판교 얘기가 처음 나온 2001년 무렵에 비해 3배가량 뛴 가격이다. 한 투자자는 “아는 사람들끼리 돈을 모아 1평당 70만원에 1000평을 샀는데 3배가 올랐다”며 싱글벙글이다.

그러나 함 대표는 “토지거래허가제 때문에 노후에 전원주택을 마련하려는 실수요자들은 단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살고 있어야 거래 허가가 되기 때문이다. 투기지역은 따로 관리하고, 나머지 지역은 실거래가로 엄격히 세금을 걷되, 거래 자체는 자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곳은 이미 상업시설로 개발이 시작돼 신도시 개발 후 조용한 전원주택지가 될지, 판교 주민들의 위락지가 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판교4 : 판교의 그늘

판교 인터체인지를 나와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도처에서 휘날리는 붉은 현수막이다.

‘땅장사 토지공사 집장사 주택공사 해체하라’ ‘판교 주민 주거대책 수립하라’ ‘이주단지 보장’ 등의 구호들이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이곳에서 ‘특별’ 보상을 요구하는 단체만 전국철거민협의회 산하 ‘판교택지개발주민대책본부’ 등 예닐곱 개에 이른다.

단체 사무실 마당엔 철거하다 만 집에서 가져온 목재 등을 드럼통에 넣어 지핀 불을 쬐며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복덕방 거리가 끝나는 지점,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 자리한 ‘판교택지개발주민대책본부’를 찾았을 때 마침 한국토지공사 판교사업단 보상과의 신임 차장이 ‘부임 인사’를 겸해 주민들을 만나고 있었다.

“여기서 평당 4만원씩 임대료를 내고 화훼농장을 하거나 공장을 하던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보상비를 주고 떠나라는데, 그 돈으로 어디서 그만한 일을 한단 말입니까? 그럼에도 토지공사에선 판교 보상을 해주면, 다른 데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니 말이 됩니까? 그러니까 불미스런 일도 나고 그런 거 아닙니까?”(이춘재 주민대책본부 위원장)

“제가 새로 와서 잘 모릅니다만, 감정평가 방법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기저기 보상을 많이 해봤습니다만, 법적으로 보상하는 거 외에는 곤란하니까요. 하여간 자주 뵙고 협조 좀 부탁하겠습니다.”(한국토지공사 보상과 차장)

그가 떠나자 대책본부에 있던 한 주민은 “마지막 수습하러 온 사람이구먼. 이제 용역 깡패 동원하겠다는 거지”라며 쓴 입맛을 다셨다.

판교에는 여전히 땅을 빌려 농사를 짓거나 소규모 공장을 하던 임대인 500여명이 남아 ‘이주권 보장을 받기 위해 보상 평가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서울 등 외지인인 지주들이 상당한 보상을 받은 데 비해, 정작 그린벨트 제한 때문에 무너지는 집을 수리도 못하고 살았던 임대인들의 보상비는 이런저런 이유로 깎고는 이제 와서 감정평가회사와 토지공사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토지공사가 판교 개발로 2조6000억원 이익을 본다고 하고, 실제로는 14조 이상 수익을 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더도 필요 없어요. 여기서와 똑같이 다른 데서도 하던 일 하게만 해주면 됩니다.”

2월4일 청와대 앞에서 삭발 시위를 벌이고 ‘목숨을 건 투쟁’을 다짐하고 있는 주민들은 그러나 판교 관련 언론보도가 ‘청약통장 불법 거래’에만 맞춰져 있는 데도 분노를 표시했다.

“뭐, 판교 기사 나오는 거 우리랑 관계도 없는 말뿐이에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판교를 개발한다면서, 도대체 주민이 아니면 누구의 삶이란 말이오?”

판교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인다. 매일 판교를 바라보면서 분당과 수지로 출퇴근하는 이들, 인터넷의 각종 포럼과 세미나를 통해 ‘판교 입성’을 냉정히 따지는 이들, 판교 때문에 반상회와 동창회에 나오는 이들. 전 국민이 ‘판교’란 거대한 도박판에 걸려들었다. 이것이 부도덕하니 빠지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다. 물론 “국세청 조사가 예상되어 이번엔 빠질 것”이라고 말한 사회지도층 인사도 있긴 했다.

세상은 이제 판교 당첨 가능자와 가능 희박자로 나뉘며, 그동안 구박받던 10년 무주택 늙은 가장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다. 그러나 ‘당첨돼도 걱정’이란 이들이 많다. 결국 프리미엄 몇 천만원 쥐고 당첨권을 팔게 될 것이고, 다시 연차만 늘어난 무주택 세대주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또 판교 투자를 생각하는 이들 중 적잖은 이들이 전체 가구의 75%에 이르는 국민주택과 임대주택이 얼마나 잘 ‘격리’되느냐가 판교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 했다. 어떤 집이냐뿐 아니라 어떤 사람들과 사느냐가 집값에 큰 영향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판교는 당초 서민들의 집값 안정을 목적으로 기획됐지만, 부유한 25%가 전체를 갖게 됨으로써 ‘성공’하는 딜레마를 안고 출발하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5.03.01 474호 (p12~15)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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