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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인들 “I love 캐나다”

부시 재선 후 캐나다 이민 문의 폭주 … 해외 여행 땐 캐나다인 행세 다 아는 상식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미국인들 “I love 캐나다”

미국 영화제작사들은 야외 촬영지로 캐나다의 영어권 도시를 자주 이용한다. 인건비가 싸고, 캐나다의 겨울이 미국보다 길어서 봄이나 여름에 겨울 장면을 촬영하기 좋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캐나다를 미국으로 알고 영화를 본다. 사실 웬만해선 구분이 어렵다. 길 가는 사람들의 인종 구성,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브랜드, 각종 프랜차이즈 가게의 로고 등이 미국 도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모습을 뚫고 속살로 들어가면 두 나라는 꽤 많이 다르다. 미국과 캐나다의 차이를 생각해보게끔 하는 두 가지 얘깃거리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선과 관련해 최근 등장했다.

하나는 부시 재선 확정 직후 캐나다로의 이민에 관심을 갖는 미국인들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해외여행을 하는 미국인들이 세계 각국의 반미감정 때문에 봉변당하지 않도록 캐나다인으로 위장하는 가이드북과 소도구 키트가 미국의 유명 온라인업체를 통해 팔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미국인들 가운데 보수 강성 대통령의 정부 아래서 또 4년을 사는 것이 지겹고, 그런 대통령을 뽑은 자국민에 실망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캐나다로의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 11월 부시 재선이 확정된 직후 이틀간 미국에서 캐나다 정부의 이민 안내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한 건수가 평소의 7배인 26만1000여건이나 됐다.

울컥하는 심사 이웃 나라 동경



아마도 이들 대다수는 진지하게 이민을 고려하기보다 울컥하는 심사로 잠시 이웃 나라를 동경한 정도일 것이다. 미국인이라고 캐나다행 이민수속을 빨리 끝낼 수 있는 특별창구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이민을 신청한다 하더라도 대략 2년을 기다려야 결말이 난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나온 뒤 현재까지 캐나다 내 이민 알선 변호사 사무실로도 미국인의 문의전화가 폭주하고 있고 그중 상당수가 이미 이민수속을 의뢰해두었다는 점, 부시의 첫 임기 때 이미 그가 이끄는 미국에서 살기 싫다며 캐나다 이민을 결행한 사람도 다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같은 ‘탈(脫)미국’은 단순한 일과성 현상으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캐나다 밴쿠버의 이민 알선 변호사 루디 키셔는 해마다 20여명이었던 미국인 고객 수가 앞으로 1년간 2배 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12월 중 미국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잇따라 이민설명회를 열었다. 12월 초순 입장료가 25달러인 설명회에 이미 250명넘게 예약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사는 랠프 어폴트(51·휠체어 판매점 매니저)와 그의 아내(49·간호사)는 이미 이민수속을 의뢰했다. 어폴트는 “미국인들이 지난 4년간 이 나라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해도 너무한 것”이라며 갈수록 보수 성향이 짙어지는, 더 정확히 말해 보수와 진보로 양극화된 채 4년간 더 재임할 보수 성향의 대통령을 뽑은 자국민들에게 실망감을 표시했다.

캘리포니아에서 교장으로 재직했던 비피 맥매스터(50·여)는 부시가 재선되기 수개월 전 이미 캐나다로 이민해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넬슨에서 살고 있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과 그에 따라 변해가는 미국 문화에 염증을 느꼈다”며 “부시의 재선이 확정되는 것을 보고 내가 좋은 결정을 내렸음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이민자를 많이 받는 나라이긴 하지만, 두 나라 사이에도 이민자를 주고받는다. 보통의 경우 이민자가 정치 상황과 관계 없이 주로 취업을 계기로 두 나라를 오간다. 2003년의 경우 약 5900명의 미국인이 캐나다로 이민했고,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캐나다인들이 미국에 살러 갔다. 2003년뿐 아니라 두 나라 사이의 인구 ‘거래’에서 캐나다가 대부분 손실을 본다.

드물게 흐름이 역전됐던 때가 바로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징병을 기피한, 혹은 양심에 따라 거부한 미국인 징집 적령자들이 캐나다로 대거 넘어와 난민 자격으로 영주권을 얻었다. 미국은 캐나다보다 월등히 센 경제적 자력(磁力)으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지만, 때로는 캐나다가 이처럼 가끔 더 큰 정치적 자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해외에서 만난 사람들과 미국 정치 이야기를 피하고 싶으세요? 캐나다 사람인 척하세요. 단돈 24달러 95센트로 완전 위장!”

미국의 대형 온라인 의류판매업체 티셔킹닷컴(T-shirtking.com)이 12월 들어 내건 광고 문구다. 문제의 키트는 캐나다 국기가 크게 인쇄된 티셔츠. 캐나다를 상징하는 몇 가지 휘장(스티커·배지 등), 캐나다 사투리 가이드북 등의 세트로 구성돼 있다. 가이드북은 더 완벽한 위장을 위해 캐나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아이스하키 이야기를 꺼내라는 조언도 잊지 않고 있다.

정치적인 면에서 매력 발휘

이번 일이 있기 전부터도 배낭여행 등을 떠난 미국인들 사이에서 해외에서 반미감정과 맞닥뜨릴 경우 캐나다인이라고 둘러대는 것은 상식에 가까운 ‘지혜’다. 2003년 이라크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미국 미네소타의 한 대학은 해외에 머물고 있는 재학생들에게 외출할 때 캐나다인 행세를 하도록 지침을 내리기까지 했다. 이번 티셔킹닷컴의 상품은 더 적극적인 ‘위장 수요’를 겨냥한 것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캐나다인이 미국인보다 훨씬 보수적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정설로 통했다. 적어도 60년대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소리 없는 대역전이 이루어져 지금은 어떤 잣대로 재더라도 캐나다인이 더 진보적이다.

캐나다 주요 여론조사 기관의 하나인 엔비로닉스가 “가정에서 아버지가 가장이 돼야 하는가”의 질문을 2000년 미국인과 캐나다인들에게 동시에 던졌을 때 “그렇다” 응답이 미국에서는 49%에 달했지만, 캐나다에서는 18%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지역별로 ‘그렇다’고 한 응답이 최고 71%(남부)에서 21%(뉴잉글랜드)로 큰 편차를 보였으나, 캐나다에서는 지역별로도 고르게 나타났다.

캐나다는 온타리오 등 6개 주에서 동성애 커플의 혼인신고를 접수하고 있다. 아직 동성애 커플을 인정하지 않는 나머지 4개 주도 곧 따를 상황이어서 캐나다는 벨기에 네덜란드에 이어 사실상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동성 간 혼인이 법적 혼인으로 인정되는 나라가 됐다. 이밖에 사형제도, 낙태, 총기에 관한 인식 등에서도 캐나다인은 미국인보다 진보적이다. 또 캐나다인은 미국인보다 훨씬 덜 종교적이어서 종교가 아예 없는 사람도 많고, 종교가 있더라도 덜 열성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런 성향의 캐나다인들이 미국의 일방주의 대외정책을 반길 리 없다. 캐나다는 비록 미국의 눈치를 보며 어려운 줄타기를 하긴 했으나 베트남전쟁뿐 아니라 이라크전쟁에도 발을 담그지 않았다. 그러니 세계 어디를 가든 캐나다에 반감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부시 재선 이후 이런 캐나다에 기대는 ‘영악한’ 미국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



주간동아 2004.12.30 466호 (p72~73)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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