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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치인 불신 벽 넘기 힘들었다”

박지원 ‘무죄’ 이끈 소동기 변호사 “전직 대통령 측근들 잇단 변호 맡은 것은 인연과 우연 때문”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정치인 불신 벽 넘기 힘들었다”

“정치인 불신 벽 넘기 힘들었다”
박실장님, 대법원이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습니다.”

11월12일 소동기 변호사(47)는 수감돼 있는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찾아가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날 오후 2시, 대법원은 박 전 실장의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 혐의에 대해 사실상 무죄 판결을 내렸던 것. 이에 박 전 실장은 소 변호사의 손을 부여잡고, 녹내장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한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로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초특급 변호사들이 즐비한 게 법조계라지만, 한물간 권력자까지 챙길 변호사는 드문 게 이 바닥의 생리일 터. 그런 면에서 박 전 실장 처지에서는 자신의 변호를 자임하고 나서, 자신의 알리바이 입증을 위해 일본과 태국으로까지 뛰어다닌 소 변호사야말로 ‘귀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소 변호사가 박 전 실장과 고향 및 출신 대학이 일치한다는 점을 들며 그의 헌신적 변론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 변호사가 1997년 한보 사태로 구속된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영원한 집사 홍인길씨의 변호인을, 98년에는 다섯 번째 마약소지 혐의로 구속된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지만씨의 무료 변론을 자청했던 점을 고려하면 그의 선택에는 독특한 철학이 느껴진다.

“검찰은 대법원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고 장담하는 소 변호사를 만나 박 전 실장과의 짧은 인연과 현대 비자금 사건 뒷얘기를 들어봤다.



-박 전 실장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가.

“잘 알려진 대로 녹내장이 심각하다. 또 안압을 낮추기 위해 복용한 약 때문에 급성 담낭염까지 생겼다. 구속 집행정지 결정이 나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있으니 점차 나아질 것이다.”

-이런 표현이 적합할지는 모르겠지만, 권력의 끈이 떨어진 이들을 변호하고 나선 점이 인상적이다. 의도적인가.

“내가 홍인길씨 변론으로 유명해지자 내 고향을 거제도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저 단순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홍인길씨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별것 아니다. 내가 고문변호사로서 도왔던 한 사업가가 YS, 홍인길씨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그래서 알게 됐을 뿐이다. 그가 언젠가 나를 홍씨에게 추천했나 본데, 나는 조직생활을 해본 사람이 아니고 갈 능력도 못됐다. 97년 2월 한보사태로 홍인길씨가 구속되자 우연한 기회에 접견을 하면서 쟁쟁한 변호사들을 물리치고 그에게 선택됐을 뿐이다.”

-박지만씨와는 어떻게 연결됐나.

“그 또한 우연한 만남이었다. 우리 세대는 지만씨와 동년배이기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와 우연한 기회에 18홀 라운드를 함께 돌면서 내 편견이 지나쳤음을 깨우쳤다. 그 뒤 별 인연이 없는 나에게 변론을 요청해 깜짝 놀랐다. 당연히 나 아닌 많은 거물급 변호사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는 ‘그 사람들 역시 스쳐가는 사람일 뿐이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내가 무료변론을 제의했다. 그에게 돈 때문에 일했다는 느낌을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박 전 실장과의 인연은 또 무엇인가.

“그와 고향은 물론 대학까지 같지만 나는 애당초 정치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와 일면식도 없었다. 직접 대면한 날짜는 대선 이틀 전 97년 12월17일로 바로 홍인길씨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그 사건은 유ㆍ무죄를 다투는 사안이라기보다 시간이 흘러 사면을 받는 게 중요했다. 그는 김대중 후보(DJ)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DJ에게 진언할 수 있는 사람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박지원 실장을 추천했다. 당시 DJ의 일개 정치특보였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택한 셈인데….

“홍인길씨 표현에 따르면 박지원씨는 야당이지만 아이디어가 좋고 성실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DJ가 가장 신임하고 그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였다. 박 실장과의 첫 만남에서 모든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야 내가 단국대를 나왔고 고향이 진도라고 실토했다. 그러자 그는 ‘왜 당신이 홍의원을 변론하느냐’고 묻더라.(웃음) 그냥 인연이라는 대답에, 박 실장은 자기도 홍 의원을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오히려 자기를 잘 부탁한다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인연치고는 좀 싱겁다. 그 뒤 다시 만나기도 했는가.

“나는 한량 기질이 있어 골프나 좋아했지 정치와 무관한 사람이다. 작년에 대북송금 사건이 터지자 속으로 ‘그 일은 매를 맞을 수도 있고, 영웅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이다’고 생각해 찾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연이어 현대 비자금 사태가 터졌고, 이후 변호인들 명단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내가 필요할 것 같아 뒤늦게 합류했다.”

-항소심에서 검찰은 20년을 구형했고, 실제로 징역 12년에 150억원 추징 판결이 나왔다. 절망했을 것 같은데….

“전혀. 박 실장과 가족들은 가슴 아파했지만, 나는 이왕 별 달 바에야 더 값나가게(?) 달자고 용기를 줬다.(웃음) 그렇지만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

-수사 검사들은 전 민주당 고문 권노갑씨와 박지원씨가 돈을 챙겼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게다가 두 사건은 묘하게도 유사점이 많다. 해외에 머물고 있는 무기중개상을 이용했다는 점도 그렇고….



“전혀 그렇지 않다. 권노갑씨의 2500만 달러와 애당초 구조가 다르다. 우선 뇌물제공 수단이 현금이 아닌 CD(양도성예금증서)라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그는 계보가 있는 정치인이고, 박 실장은 DJ의 비서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정치자금이 아닌 150억원이라는 거금을 개인에게 건넸다니…. 한 개인에게 150억원을 안길 수 있는 사업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박 실장에게 ‘당신이 20억원을 받았다면 포기하라고 권유하겠지만 오히려 150억원이기 때문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대로라면 150억원은 확실하게 미국으로 건너갔다. 박 전 장관이 무죄라면 배달사고라는 뜻인가.



“그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 언론이 말하는 ‘배달사고’라는 뜻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무기중개상 김영완씨가 짜고 박 실장의 이름을 빌려 정 회장을 속였다는 의미라면 더욱 그렇다.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나는 이익치 전 회장이 그 돈을 챙길 정도로 나쁜 사람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행위는 ‘나쁨’의 도가 너무 지나치다. 그가 갖고 있는 품성이나 학식, 그리고 살아온 인생에 비해 너무나 단순한 ‘나쁨’이다. 배달사고라고 표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 전 실장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나는 나쁜 머리를 부지런함으로 메우는 스타일이다. 무죄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도쿄도 가고 방콕에도 다녀왔다. 스스로 수사관이 되어 카드사용 명세와 골프장 기록을 다 뒤졌다. 형사소송에서 변호사는 검찰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죽기 살기로 덤볐다. 엄격하게 검찰과 피고인의 힘은 ‘무기 대등의 원칙’이 성립할 수 없다.”

-대법원 판결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DJ의 대북 특사나 호남 민심을 배려한 판결이라는 것이다.

“세간 사람들이 법조계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지점이다. 실제로 판사들은 훨씬 더 소심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으로 어떻다는 뒷말은 말 그대로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가.

“파기 환송심에 들어가면 서울고등법원에 검찰이 추가 입증을 위해 증거신청을 할 수 있고, 재판부가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 지금 상태로 추가 입증이 없다면 대법원 판단에 귀속된다. 이미 1년 6개월 이상 구속된 상태이기 때문에 죄값은 다 치른 셈이다.”

-이제라도 김영완씨가 법정에 나와 추가 진술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 그는 증인으로서의 효력을 다한 사람이다. 2년 동안 모든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이제껏 귀국하지 않고 진술서나 보낸 사람이 대법원 판결 이후에 나오는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은 검찰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검찰은 자신들의 명예를 걸고 수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보호할 가치가 없는 명예다. 내가 검찰이라면 김영완씨를 소환하지 못한다는 점을 파악한 순간 참고인 소재 불명으로 기소중지했을 것이다. 물증도 없고, 참고인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슨 명예를 들먹거리는가.”

-만약에 이대로 종결된다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당연히 받았겠지, 더 받지 않았을까’ 하는 편견의 벽을 뛰어넘기 힘들었다. 정치인을 무조건 깎아내리려는 시각에 절망했다. 박 전 실장이 연루된 한빛은행 불법대출 의혹 사건 때 한나라당 누군가가 나에게 ‘저 인간이 우리 편이라면 일등공신이겠지만, 지금 살려두면 틀림없이 우리를 죽이려 할 터이니 낙마시킬 정보를 달라’고 제안했다. 능력 있는 인재를 짓밟아야 하는 정치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주간동아 2004.12.02 462호 (p46~47)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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