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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기업 ‘도요타 열풍’

불황 장기화 생산성 향상 ‘발등의 불’ … ‘사람과 의식’ 바꾸기 전 업종서 벤치마킹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위기의 한국 기업 ‘도요타 열풍’

위기의 한국 기업 ‘도요타 열풍’

11월19일 황규봉 태양금속공업㈜ 사장(가운데)이 경기도 안산 공장에서 직원들과 생산성 향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파버나인.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이 회사는 요즘 ‘도요타 배우기’ 열기로 뜨겁다. 전문강사를 초빙해 직원 150여명이 총 10시간의 교육을 받았음은 물론, 3월부터 차례로 직원들의 일본 현지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벌써 7명의 임직원이 4박5일 내지 5박6일의 연수 일정을 마쳤다.

그 자신 가장 먼저 일본 연수를 다녀온 이제훈 사장은 “중국의 무서운 추격 속에 미래에도 한국에서 제조업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고민하다 ‘마른 수건도 짜 물을 내는’ 도요타 생산 방식을 벤치마킹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7개월여 만에 약 2억원의 생산비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도요타 특유의 ‘가이젠(改善)’을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한 덕분이다. 이 사장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계속 기업 경영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싹텄다”고 했다.

파버나인이 열심히 배워 실천하고 있는 것은 TPS(Toyota Production System)로 불리는 도요타 특유의 생산 시스템이다. 1980년대 도요타의 고속성장을 집중 연구한 미국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초 한 번 붐을 일으켰던 것이,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다시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10년간 장기 불황 속 연 7~8% 성장



도요타 배우기 열풍은 일본 현지에서도 만만치 않다. 서점마다 따로 ‘도요타 코너’가 있을 정도. 관공서, 지방자치단체, 소규모 병원이나 제과점은 물론 그리고 가정까지도 배우고 있다.

91년 버블 붕괴 후 10년간의 장기 불황 속에서도 연평균 7~8%의 고속성장을 지속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98년에는 매출이 10조엔(약 100조원) 벽을 넘어섰다. 2000년 이후 해마다 1조원이 넘는 경상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가 벌어들인 것보다 더 많은 액수다. 자동차 리콜은 포드보다 79%가 적고, 크라이슬러보다는 92%나 적을 만큼 소비자의 신뢰를 받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도요타가 일본을 바꿔놓고 있다”고까지 묘사한다. 도요타 방식이 확산되면서 일본 전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위기의 한국 기업 ‘도요타 열풍’

일본 사쿠라금속에서 TPS 연수를 받고 있는 한국 근로자들.

일본식 장기 불황이 우려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도요타 붐’은 당연하면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촉매제 구실을 한 것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2002년부터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부회장, 이건희 회장 아들인 이재용 상무 등 임직원 1000여명이 도요타 연수를 다녀왔다. 특히 2003년 2월 연수를 다녀온 이재용 상무가 “도요타 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임원들에게 일본 자동차 전문가인 히노 사토시가 쓴 ‘도요타 무한성장의 비밀’을 적극 추천하면서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 전 협력업체 대표 및 공장장 등 실무진들에게까지 TPS 연수가 확대되고 있는 상태다.

가전 부문에서 일찍이 TPS를 도입해 큰 성과를 거뒀던 LG전자도 다시금 도요타 방식에 밀착해 들어가고 있다. 김쌍수 부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도요타 마니아’. 개인 홈페이지에 좋은 글을 남기는 직원에게 ‘도요타 무한성장의 비밀’을 선물로 줄 정도다. 같은 자동차 생산업체인 현대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다. 마케팅, 생산, 조사관계 등 전 부문에서 도요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도요타 방식의 도입은 삼성, LG, 효성중공업 등 대기업은 물론 롯데캐논, 빌트인 주방가전업체인 파세코 등 중견 제조업체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경영학)는 “TPS는 무슨 혁신적 자동화장치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과 ‘의식’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규모가 작은 업체에서 단기간에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경기 안산 반월공단 내 롯데캐논 공장에는 부품 재고가 하나도 없다. 일단 부품이 들어오면 그날 안에 완제품을 출하해야 하기 때문이다. 롯데캐논은 도요타의 멀티생산 방식을 응용한 캐논 일본 본사의 방식을 더욱 발전시켜 지금의 한국형 혁신 시스템을 창안했다. 지난해 3월 이 공장을 찾은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는 “괜히 해외에서 돈 쓰고 다녔다”며 “이 회사의 생산시스템에 경의를 표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파세코도 2002년부터 도요타 방식 도입에 몰입해 1년 만에 공장 생산성을 50%가량 높였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태양금속공업㈜도 도요타 방식을 도입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현대자동차 임원 출신인 전문경영인 황규봉 사장은 2003년 3월 취임과 함께 전면적 생산혁신에 돌입했다. 일본인 TPS 전문 컨설턴트를 초빙, 회사 내 혁신 운동을 지휘하고 임직원 15명에게는 일본 연수 기회도 제공했다. 그 결과 2002년 1000억원이던 매출은 2003년 1200억원으로 높아졌고 올해는 1500억원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의 한국 기업 ‘도요타 열풍’

2003년 9월 도쿄모터쇼에서 선보인 도요타의 1인승 전기자동차.

황 사장은 “TPS의 핵심은 인재 육성이다. 생산 혁신을 통해 잉여인력이 생기면 이들을 ‘리툴링’(retooling) 한다. 이를 잘 수행하면 해고 없이도 일인당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TPS뿐 아니라 생산직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중소기업이 살 길”이라고 설명했다.

89년, 우리나라에 TPS 교육 및 컨설팅 활동을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은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다. 이후 KMAC에서 근무하던 직원, 컨설턴트들이 각자 독립해 나가 현재는 한국표준협회, G-MIC, K-PEC 등의 업체가 해외연수 및 국내 교육, 컨설팅 업무 등을 하고 있다.

실무진까지 TPS 연수 확대

대표적인 일본 해외 연수처는 도요타의 1차 벤더인 ‘기후차체’. KMAC의 경우는 또 다른 도요타 벤더인 ‘사쿠라금속’을 활용한다. KMAC 김주섭 생산혁신본부장은 “몇 년 전만 해도 기후차체, 경삼전기 등 도요타 벤더 업체들의 생산 라인에 3개월간 직접 투입돼 연수를 받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한국에 대한 도요타 측의 ‘경계’가 강화돼 단기 연수만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15년 경력의 TPS 전문 컨설턴트 반봉식씨는 “무조건 해외연수부터 가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면 공장 안에서 뛰어다니다시피 하는 도요타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절대 저럴 수 없다’는 절망감만 느낄 수 있다. 마치 초등학생에게 고교생 수업을 참관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1년 정도 교육과 컨설팅을 받은 뒤 구체적으로 궁금한 점이 무엇인지를 마음에 품고 가야 비로소 수박 겉핥기식 학습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요타 학습에 나선 모든 기업이 기대했던 것만큼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요타 방식 중 우리나라에서 특히 주목받는 것이 ‘일심동체’라는 말이 무색치 않은 원만한 노사관계. 그러나 도요타 방식을 전면 도입했다는 현대자동차에서조차 노사 문제는 여전히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최대 요인이다.

최근 일본 내 도요타 전문 경영학자들과 ‘일본의 10년 불황을 이겨낸 힘-도요타’라는 책을 낸 자동차 전문기자 김태진씨는 “TPS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조직의 한 부속이 아닌 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 본다. 기능적 인간이 아닌 적극적으로 업무 개선점을 찾아내는 능동적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이를 도요타는 ‘전원참가형 경영’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생산시스템을 단순히 하드웨어적인 것만 벤치마킹했을 경우 별다른 소득을 얻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그를 움직이는 사람과 인간존중 정신이다. 30년 동안 지속적인 원가 절감이 가능했던 이유는 마치 생물처럼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스스로 개선하는 조직원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 존중, 반성과 개선이 핵심

김기찬 교수는 “도요타 방식의 핵심은 ‘반성’과 그를 통한 ‘가이젠’이다.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반성하는 직원에게 벌이 아니라 상을 내린다. 예를 들어 도요타에서는 작업 중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생산직 직원이 천장에서 늘어뜨려진 하얀 줄을 잡아당겨 생산라인 전체를 세울 수 있다. 이런 일이 하루에도 20여 차례씩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도요타 직원에게 ‘당신과 회사가 주고받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회사는 내게 비전과 프라이드를 준다. 나는 열정과 헌신을 바친다’는 답이 돌아오더라”며 “노사 관계를 돈과 노동력의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한 아무리 TPS 도입을 부르짖어도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희대 김신 교수(국제경영학)는 “TPS가 완성되려면 본사와 협력업체 간 관계가 기술 개발 및 생산 혁신에 적합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관계가 수직적이다. 관계가 좋지 않으면 중소기업이 개발한 좋은 기술이나 생산 방식도 그냥 사장돼버리고 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봉식 컨설턴트는 “도요타 방식이란 제품 생산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고 고객의 삶을 향상시키려는 철학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리더가 완전히 미쳐야 한다. 사장부터 말단직원까지 체질 자체를 바꿔야 한다. 개혁(改革)이 무엇인가. 한자를 풀이하면 ‘가죽을 벗겨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의 각오 없이는 진정한 개혁을 이룰 수 없다. 혁신은 끝없이 계속되어야 하고, 10년도 짧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04.12.02 462호 (p36~38)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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