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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PPA 사태’ 제2의 불량만두 사건인가

의혹 무성해도 사실 확인 한 건도 없어 … 복지부 뻥튀기에 언론 호들갑 ‘식약청만 희생양’?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PPA 사태’ 제2의 불량만두 사건인가

‘PPA 사태’ 제2의 불량만두 사건인가

판매와 제조가 금지된 PPA 성분 함유 감기약들

무지한 언론과 정치권, 정치 관료들이 빚어낸 블랙코미디이자 음모일 뿐입니다.”

여름휴가가 절정에 달했던 8월 첫 주,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사임을 불러온 ‘PPA(페닐프로판올아민) 함유 감기약 사태’를 지켜본 한 의약계 원로는 이를 ‘제2의 불량만두 사건’에 비유했다.

만두 제조업자의 자살까지 불러온 불량만두 파동에서 정작 ‘불량만두’는 발견되지 않은 것처럼, 7월31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의 PPA 함유 감기약의 제조, 판매 금지 발표와 관련해 언론과 정치권,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에서 제기한 온갖 의혹과 비판의 내용 중 사실로 확인된 것은 단 한 건도 없기 때문. 정치권과 복지부가 근거 없는 여론의 비판을 맹목적으로 수용해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우리 식약청과 의료진이 전 세계가 수십년 동안 아무런 의심 없이 먹어오던 PPA 감기약이 실제 뇌졸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음을 세계 최초로 증명했다는 ‘사실’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모처럼 칭찬받을 일을 했다”며 서둘러 국내 PPA 함유 의약품에 대한 판매, 제조 중단 조치를 발표했던 식약청은 이유도 모른 채 호된 꾸중을 당한 셈.

식약청, PPA 대처 알고 보니 ‘적절’

이와 관련 최근 여당인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보도를 뻥튀기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 관료(복지부)들의 말만 믿고 식약청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반성이 제기되고 있다. 피해 당사자인 식약청 내부에서는 판매 중지 발표 이후 3일 동안 실시된 복지부의 ‘벼락치기’ 감사와 여당 의원들의 ‘식약청 때리기’가 김근태 복지부 장관에게 향할지도 모르는 비판 여론을 심창구 식약청장으로 돌리기 위한 ‘준비된’ 포석으로 이해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언론과 정치권, 복지부에서 제기한 의혹은 과연 무엇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의혹의 대부분이 자료를 잘못 보거나 사실 관계 자체가 틀린 것이지만, 요약해보면 크게 식약청이 PPA의 뇌졸중 발현 가능성을 알면서도 판매와 제조 정지를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의혹과 이 과정에서 제약업체의 로비를 받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이 핵심이다.

우선 제조와 판매의 고의 지연 부분. 언론과 정치권은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2000년 11월 이미 PPA의 판매와 제조를 금지했는데 우리 식약청은 4년 동안 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국내 PPA 생산 제약사들의 로비를 받고 쉬쉬하다 올 8월에야 뒤늦게 판매 금지에 나섰다”며 식약청을 공박했다.

의약품의 약효와 부작용이 그 나라의 환경과 인종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런 의혹에는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의료 종속의 현실이 투영돼 있다. 지난 4년 동안의 식약청 행적을 따라가 보면 허물보다는 칭찬할 것이 훨씬 많음을 금방 알 수 있다.

PPA는 50년대 영국에서 콧물감기 및 비염 치료제로 처음 개발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사용돼온 대표적인 감기약으로, 우리나라의 종합감기약과 콧물감기약에는 이 성분이 대부분 들어가 있다. PPA가 문제 되기 시작한 때는 80년대 초반 미국에서 PPA가 식욕억제제로 사용되면서부터. 다이어트를 위해 PPA를 다량 복용한 여성에게서 출혈성 뇌졸중 사례가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예일대학 의대는 미국제약협회의 예산지원으로 94년부터 4년 7개월간 관련 연구를 실시했고, ‘18살에서 49살까지의 여성이 식욕억제제로 PPA를 사용할 경우 출혈성 뇌졸중을 일으키는 독립적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FDA의 ‘이상한’ 처분이었다. 예일대학 의대의 연구가 PPA를 다량 복용하는 식욕억제제에 대한 것일 뿐 감기약에 대한 연구는 아니었는데도 결과 발표 1년이 훨씬 지난 2000년 11월 미국 내 모든 PPA 함유 제품의 판매 중지를 각 제약사에 요청했던 것. 당시 하버드대학 의대와 워싱턴대학 의대는 예일대학의 연구가 PPA를 소량 복용하는 감기약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PPA 함유 전체 약물에 대한 FDA의 판매금지 조치를 공개적으로(미 CNN) 비판했다. PPA 개발국인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도 FDA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PPA 판매를 막지 않고 있다.

사실 식약청도 FDA의 판매중지 결정이 있었던 2000년 11월 국내 모든 PPA 함유 의약품에 대해서 ‘잠정적으로’ 판매, 제조를 중지할 것을 제약사에 지시했다. 하지만 식약청은 다음해인 2001년 7월 하루 최대 복용량이 100mg이 넘어가는 PPA 함유 식욕억제제에 대해서만 판매, 제조를 금지키로 방향을 선회했다.

‘2년 7개월’ 걸린 조사 ‘3일’ 만에 감사

바로 이 대목이 제약사의 로비 의혹을 받는 지점. 하지만 식약청의 당시 결정은 의약품 관련 자문을 맡은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이하 중앙약심)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국내 유수의 의대 및 약대 교수진으로 구성된 중앙약심은 “FDA의 연구만으로는 PPA를 감기약으로 사용할 때 뇌졸중 위험성이 증가한다는 데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예일대학 의대의 연구결과는 존중하되, FDA에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감기약에 대한 부분은 국내 모니터링을 실시하도록 자문한 것.

식약청은 곧바로 국내 최초의 의약품 이상반응 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일단 의약품 이상반응 연구는 의약품을 판매하는 제약업체가 해당 약품의 안전성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제약업계의 예산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했고 환자 선정, 역학조사 전문가의 자문 통계를 받는 데 5개월이 필요했다. 드디어 2002년 3월8일 책임연구자로 서울대 의대 신경과 윤병우 교수가 선정됐고, 전국 9개 대학 의대 교수와 서울대병원 등 32개 병원이 이 연구사업에 동참해 2년 7개월 뒤인 2004년 6월25일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의약품 부작용 연구인데도 2년 4개월 만에 결과를 내놓았다. 미국 예일대학 연구가 4년 7개월이 걸린 것에 비하면 상당히 단축된 셈이다. 대상환자 수만 940명으로 예일대학(700명)보다 30% 이상 많았는데도 결과가 더 빨리 나왔다는 것은 국내 연구진이 그만큼 열의를 갖고 연구에 임했다는 얘기도 된다.

‘PPA 사태’ 제2의 불량만두 사건인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6일 PPA 함유 감기약의 판매 중지와 관련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구팀이 내린 결론은 “감기약에 함유된 PPA의 복용이 출혈성 뇌졸중의 위험성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며 이는 30살 이상의 모든 연령에서 공통된 현상으로, 특히 여성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난다”였다. 제약업체의 로비가 있었다면 나오기 힘든 초강경 연구결과였으며, 이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한 제약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가 로비를 했다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겠냐”며 “로비설은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라고 비웃었다. 연구진은 최종 보고서에서 “이 연구가 정부의 의료보건정책 결정을 위한 과학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수년에 걸쳐 임상연구를 계획하여 실행하고 그 결과를 제시했는데, 이는 선진된 의사 결정 과정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미국이나 일본이 하면 그대로 따라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우리 정부가 자체 조사결과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정책 결정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이야기였다. 식약청과 연구진은 세계 최초의 이 성과물을 올 연말 세계보건기구(WHO)에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언론과 복지부는 오히려 이 연구결과에 대한 발표 지연을 물고늘어졌다. 연구결과 보고서가 식약청에 도착한 때는 6월25일인데 왜 7월31일에야 PPA 사용중지 결정을 내렸느냐면서 제약업체의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식약청의 설명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연구결과가 나오자 청내의 독성연구원과 의약품평가부, 그리고 자문기관인 중앙약심에 보고서를 검토하도록 했다. 민간에 의뢰한 보고서에 대해 식약청과 다른 전문가들이 검토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는 것이다. 독성연구원과 의약품평가부가 검토하는 데 보름의 기간이 걸렸고, 중앙약심을 소집하려 했으나 각 대학이 방학에 들어가 대부분이 교수들인 자문위원을 한데 모으는 데만 또 보름이 걸렸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복지부는 감사결과 보도자료를 통해 식약청의 직원들에게 “담당업무를 소흘히 했다”며 “‘근무태만’으로 처벌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복지부는 단 3일간의 감사(실제로는 이틀)를 통해 제약업체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식약청 연구용역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PPA 사태’ 제2의 불량만두 사건인가

PPA 성분 함유 감기약들은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일반 의약품이었다.

A제약사 김모 이사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의약품의 부작용 모니터링 연구는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제약협회가 돈을 내는 게 당연한데 복지부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며 “우리가 로비를 했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겠느냐”고 되물었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발표 보름 전 우리에게 생산, 판매 정지에 대한 정보를 흘려줬다고 하는데, 감기약 비수기인 여름에 미리 판매 정지 정보를 입수했다 해도 재고품 정리는 불가능하다”며 “사실 우리는 억울하고, 복지부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감사를 통해 복지부가 내놓은 대책은 ‘식약청과 중앙약심은 못 믿겠으니 복지부 산하 의약품안전정책심의위원회를 새로 만들겠다’는 것과 ‘식약청 차장 자리에 복지부 관료를 내려보내 식약청의 업무를 감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는 “우리가 복지부 관료들에게 이용만 당했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의약품안전정책심의위원회는 ‘옥상옥’일 뿐이고, 식약청 차장 자리는 원래 복지부 관료들의 승진 자리 몫이었는데 학자 출신(서울대 제약학과 교수)의 심창구 청장이 식약청 직원을 내부 승진시키자 복지부가 이번 기회를 통해 이를 되찾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해 심청장이 부임하면서 식약청은 내부적으로 복지부와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의료선진국이 식약청을 따로 두고 전문집단에 정책집행권뿐만 아니라 정책입안 기능까지 주고 있는 까닭. 그런데 복지부는 이번 기회를 통해 식약청의 분리 움직임을 저지하고 자신들의 승진 자리를 보장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을 만했다. 평소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던 복지부가 요란스럽게 벼락치기 감사를 벌이고 기자회견을 한 데는 다 그만한 정치적 복선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

복지부 관료들은 식약청의 ‘독립’ 움직임을 저지하는 데 식약청 직원들이 언론 메커니즘을 제대로 모른다는 점과 김근태 장관이 아직 복지부 업무를 파악하지 못한 점을 철저히 이용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PPA 파동이 이렇게 크게 불거진 것은 식약청이 조간신문 휴무일인 토요일(7월31일)에 PPA 판매 중지 보도자료를 내면서부터였다. 월요일 출근한 김장관이 신문과 방송의 보도내용을 보고 “어떻게 이런 일을 장관이 모를 수 있느냐”고 역정을 낸 것. 식약청에서는 복지부 관료들이 이를 기회로 식약청에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웠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식약청이 보도자료를 토요일에 내고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을 “타성과 안일함에 젖은 식약청 공무원의 판단 미숙으로 일어난 문제”라고 규정지었기 때문이다.

보도자료도 복지부에 우선 보고 확인돼

그러나 ‘주간동아’ 확인 결과 식약청의 잘못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보도자료의 경우 7월31일 평소대로 전자문서로 복지부에 보고했으나, 전산장애로 행정자치부를 거쳐 복지부로 가지 못했다. 또 PPA 판매 중지와 같은 의약품에 대한 결정사항은 보건복지부령상 사전보고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식약청 관계자들은 복지부 관료들의 이런 ‘음모’는 차기 대권주자인 김장관을 여론의 비난에서 보호하려는 여권이 복지부 관료들의 ‘식약청 때리기’에 힘을 실어주면서 증폭됐다고 말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PPA 파동이 일어난 직후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식약청장을 희생양으로 삼자는 이야기가 실제로 나왔으며, 식약청에 잘못이 없음을 의원들 대부분은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더욱이 김장관을 끌어내리려는 측에서는 언론의 맹공이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결국 심청장은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후 언론과 복지부, 정치권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조용해졌다. 식약청에 대한 ‘마녀사냥’은 그렇게 해서 종결된 것이다.

“뭐,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의약품에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된 기회를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우리 일을 해야죠.”

맞지 않아도 될 매를 맞고, 일주일을 잠 한숨 자지 못한 식약청 전문직들의 푸념 속에서 정치권 및 관료들에 대한 깊은 불신을 느낄 수 있다.



주간동아 449호 (p44~46)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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