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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설 통해 뿌리 찾기 계속할래요”

유미리씨, 한·일 양국서 ‘8월의 저편’ 동시 출간 … 해방 전후 현대사 정면으로 다뤄

  • 박원재 기자/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소설 통해 뿌리 찾기 계속할래요”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씨(36)가 외조부의 삶을 모티브로 한 소설 ‘8월의 저편’(일본 제목 ‘8月の果て’)을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이달 중 동시 출간한다. 한일 두 나라가 월드컵 축구 공동개최로 설레던 2002년 4월 동아일보와 일본 아사히신문(석간)에 동시 연재를 시작한 이후 2년5개월간 씨름한 끝에 내놓은 결과다.

내용은 간명하다. 4명의 박수무당이 외조부의 혼을 불러내는 굿을 벌이고, 손녀인 유미리가 외조부와의 교신을 시작한다. 외조부의 넋이 무녀에게 씌워져 무녀의 입을 통해 음성이 흘러나온다. 일제 식민지시대와 해방 공간, 6·25 전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한(恨)을 품은 채 세상을 등진 인물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드러난다. 얽히고설킨 개인 간의 인연에 피지배 민족의 아픔이 더해지면서 현세의 인간들은 눈시울을 붉힌다.

작가의 외조부가 주인공으로 등장

작가는 외조부(극중 인물 이우철)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4대에 걸친 애증의 가족사를 격동의 현대사와 교직해가며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유씨의 외조부 양임득씨(1912~80)는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조선신궁 육상대회 5000m에서 최고기록을 세운 장거리 육상선수로 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생과 동갑내기 친구.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40년 올림픽이 열리지 못하자 육상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이주했다.

작가는 ‘8월의 저편’을 신문에 연재하는 동안에도 일주일에 두 번, 오르막 산길을 코스에 넣어 30km씩 뛰었다고 한다. “소설 쓸 시간도 넉넉지 않았을 텐데 왜 뛰었느냐”고 ‘우문(愚問)’을 던졌더니 “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등장인물이 눈물을 흘리면서 달리고 또 달리는데, 작가가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유씨는 2002년 동아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서 4시간54분22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첫 풀코스 도전에서 일군 기록으로는 손색이 없는 성적표. 그는 “외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덕인 것 같다”며 “작가가 된 뒤로 외할아버지의 일생을 통해 당시의 한국 역사와 한국 민중의 한을 다루는 작품을 쓰는 것은 나의 오랜 숙제였다”고 말했다.

외조부가 지어준 이름 ‘미리’는 소설의 주요 배경인 밀양의 옛 이름 ‘미리벌’에서 따온 것. 그는 “외할아버지는 나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소설의 화두까지 건네신 셈”이라고 말했다.

사(私)소설적 경향을 띤 지금까지의 작품과 달리 ‘8월의 저편’에는 정신대, 창씨개명, 항일운동, 중일전쟁 등 역사적 사실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부서진 가족’을 보여주는 데 골몰했던 작가는 이 작품에서 해방 전후의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관심의 영역을 한민족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넓혔다.

“고층 건물의 옥상에서 아래를 보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형체만 있을 뿐 이들의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역사도 개개인의 삶들이 ‘전체’로만 뭉뚱그려져 표현될 뿐 구체적인 이야기가 묻혀지고 만다는 점에선 비슷하지 않을까요. 개인과 가족의 사연을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역사를 그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유씨는 기력을 되찾은 다음엔 아버지 쪽 집안의 얘기를 소재로 작품을 써 ‘소설을 통한 뿌리 찾기’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05년 동아서울국제마라톤에도 출전하고 싶지만 출전 기준 기록이 앞당겨져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겸손해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유씨는 가족문제를 다룬 ‘물고기의 축제’(1992)로 기시다 구니오(岸田國士) 희곡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으며, 97년 ‘가족시네마’로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받았다. ‘8월의 저편’은 일본의 대형출판사인 신초(新潮)사와 한국의 동아일보사가 동시 출간한다. 한국판은 상·하 2권(각권 450쪽 내외)으로 가격은 각각 9000원.



주간동아 449호 (p65~65)

박원재 기자/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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