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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영화 홍보 전쟁 ‘피 말려’

배우들 TV 출연·이벤트 시사는 기본 … 김혜수 헤어누드설·귀신 출현설 등 입소문까지 총동원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여름 영화 홍보 전쟁 ‘피 말려’

여름 영화 홍보 전쟁 ‘피 말려’

헤어누드 노출 소동이 벌어졌던 ‘얼굴없는 미녀’의 시사회장.

‘보인다 vs 안 보인다’ ‘앗! 김혜수 헤어누드 삭제 파문 영상물등급위원회 시정조치 내려’ ‘김혜수, 남자모델과 쇼킹 누드 포스터’.

8월6일 개봉한 김혜수 주연 영화 ‘얼굴없는 미녀’의 기자시사회 다음날 쏟아진 기사의 제목들이다. 스포츠신문들은 약속이나 한 듯-사실 약속을 했다-김혜수의 헤어누드 노출에 관한 논란을 다뤘다.

특히 한 신문의 인터넷판은 김혜수의 헤어누드를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지우도록 요구해 제작사 아이필름 측이 ‘부랴부랴’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했다는 기사를 내 ‘사전 검열’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영등위는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사전심의제도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세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첫 번째, 김혜수의 관점이다. ‘글래머 미인’으로 불리는 김혜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베드신에 유달리 민감했다. ‘바람난 가족’에 출연하기로 했다가 포기한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다. 결과적으론 문소리가 주연한 ‘바람난 가족’을 누구도 ‘에로물’이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보적인 시각에서 국내외 비평가들한테 호평을 받았다.

‘바람난 가족’ 대신 드라마 ‘장희빈’을 선택했던 김혜수는 배우로서 이제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역을 맡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언제까지 ‘YMCA 야구단’ 같은 영화에서처럼 투박한 블라우스로 목까지 꽁꽁 가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혜수는 장희빈을 찍다 말고 영화 ‘로드무비’의 김인식 감독이란 말에 곧바로 “할게!”라고 외쳤던 것이다.



시사회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김혜수는 준비한 듯 “베드신 찍느라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다”고 대답했다. 간담회에서 베드신에 대한 질문은 길지 않았지만, 다음날 스포츠신문을 비롯한 모든 인터뷰 제목은 그녀의 노출에 맞춰졌다. 김혜수는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결국 일주일 뒤쯤 한 인터뷰에서 “에로영화처럼 포장되어 속상하다”고 털어놓았다.

스포츠신문은 주요한 홍보의 장

여름 영화 홍보 전쟁 ‘피 말려’

영화 ‘얼굴없는 미녀’의 한 장면.

두 번째, 관객의 관점에서 보면 김인식 감독의 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단한 호기심을 갖게 됐다. 스포츠신문의 1면을 김혜수가 장식한 날 ‘얼굴없는 미녀’의 인터넷 성인예고편에는 접속이 폭주해 누적 건수로 43만건이라는 영화 사상 최대의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흥행의 바로미터인 예매율은 오르지 않았다. 네티즌들은 ‘노출’을 확인하고 실망했을지 모른다.

세 번째, 홍보사와 제작자의 관점이다. ‘얼굴없는 미녀’를 홍보하는 아이필름의 홍보 담당자는 “영등위 삭제 요청을 받은 바 없으며, 섹스 신을 찍을 때 여배우가 하는 ‘공사’ 흔적을 지우기 위해 화면상에서 어둡게 처리했다고 기자에게 말했을 뿐”이라면서도 “기사 보도에 대해 항의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이슈에 대한 기대감은 있다”고 덧붙였다.

한 스포츠신문 기자는 “시사회가 끝난 뒤 스포츠신문 영화 담당 기자들 사이에서 김혜수가 1면에 오를 것 같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스포츠신문에서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김혜수와 매니저는 무척 꺼려했지만, 흥행이 달려 있기 때문에 서로 양해가 되었다”고 말했다.

홍보사와 제작자들은 배우들의 눈치도 많이 보지만 한 사람의 관객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신문들이 일제히 1면을 할애해준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일이다. 한 홍보회사 직원은 “솔직히 그 기사로 최소한 수만명은 더 오지 않겠냐”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영화홍보사의 대표격인 ‘올댓시네마’의 채윤희 대표는 “올 여름처럼 비슷비슷한 한국영화들이 많이 쏟아져나와 경쟁이 심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뭔가 독특한 소재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름 영화 홍보 전쟁 ‘피 말려’

명동성당에서 열렸던 ‘신부수업’ 시사회.

사실 여배우의 치부 노출이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 대표되는 남녀 배우의 섹스신 ‘실연’ 논란은 영화 홍보업계에서 ‘불감청고소원’이지만 늘 좋은 효과만 가져오지 않았다.

90년대 말 레오 카락스 감독의 ‘폴라 엑스’는 주연 배우들의 실제 섹스 장면으로 큰 화제를 모았는데, 당시 극장에 근무했던 김진영씨는 “예술영화가 에로물로 홍보돼서 관객들이 의자를 발로 차는 등 격분(?)했다”고 말했다. 또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도 실연 논란을 빚으면서 인터넷에서 포르노처럼 유포되는 바람에 수입에 타격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공포영화 홍보에는 ‘촬영현장에 귀신 출현!’이 빠지지 않는다. 이승철의 뮤직비디오에서 처음 시작된 진짜 귀신 등장 관련 기사는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처럼 약발이 떨어지긴 했어도 해마다 등장한다.

올해의 업그레이드로는 ‘알 포인트’가 촬영된 캄보디아에서 ‘스틸사진작가가 소녀의 사진을 찍었는데 사라졌다’든가, ‘령’의 ‘스틸작가 곁에 줄곧 귀신이 따라다녀 공포 때문에 그만뒀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분신사바’는 주문을 외며 귀신을 부르는 장면을 촬영하다 정전이 되는 바람에 어린 여배우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품 책의 대출카드 이름난에 김인숙(영화에 등장하는 귀신 이름)이 써 있어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것이 홍보사들의 주장이다. 홍보사 직원들은 “아무래도 영화에 집중하다 보면 그런 이상현상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최근 홍보사들이 무엇보다 총력을 기울이는 부분은 TV에 자주 나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도 최근에는 TV 광고비로만 평균 2억원 넘게 쓴다. 또 주연 배우들을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 위해 홍보사는 혈안이 돼 있다.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가수 좋고, 영화 좋은 결과를 얻는 것도 최근의 트렌드다.

시사회 때 유명인 모시기도 일반화

홍보사 래핑보아의 이선희 실장은 “TV 출연이라면 대개 오락물이다. 코미디 영화의 경우는 관객 동원에 직접 영향을 준다. 그래서 돈을 댄 제작자는 TV 출연을 안 하면 홍보사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도 쪼이다 보니 공포스릴러물 주인공들을 ‘쟁반노래방’에 내보낸 적이 있었는데, 쟁반에 맞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홍보사들이 일반 시사회를 거의 없애다시피 하고 이벤트 시사회를 여는 이유도 매체를 움직이기 위해서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관람 덕으로 ‘서편제’가 100만 관객시대를 열었고, ‘효자동 이발사’가 3당 대표 관람으로 기사 회생했으며, ‘두사부일체’가 박세리 박찬호 관람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다음엔 가수 효리를 끌어오느라 홍보사들이 경쟁을 벌였고, 이병헌과 송혜교 커플도 VIP 대접을 받았다.

여름 영화 홍보 전쟁 ‘피 말려’

서울랜드의 ‘분신사바’ 체험관.

영화 ‘신부수업’은 가톨릭 신부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열었고, 인간 복제를 소재로 한 ‘갓센드’가 국회에서 시사회를 열어 의도적으로 ‘파문’을 만들어낸다. 공포영화들의 이벤트 시사도 경쟁적으로 열리고 있는데, ‘여성 관객들을 위한 호러 시사’ ‘1인 시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분신사바’는 서울랜드에 영화 소품으로 체험관을 만든 기업 공동 이벤트를 도입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홍보 담당자들은 홍보가 TV와 이벤트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헤비 유저’가 대학교 2, 3학년에서 중학생 정도로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성인물의 경우 다양하지만 ‘유치한’ 이벤트보다는 차라리 선정성을 강조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설명한다.

개봉 날, 홍보 담당자들은 직접 극장을 돌며 관객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어느 대목에서 웃고 비명을 지르는지 모니터를 한다. 래핑보아의 이선희 실장처럼 “개봉 전 인터넷 조사 등을 통해 관객수를 거의 정확하게 예상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올댓시네마의 채윤희 대표 같은 이는 “관객들의 마음은 점점 알기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똑같이 홍보를 통해 수십, 수백만 관객의 발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극장에서 떨어질 때까지 머리를 짜내고 발로 뛰며 논란과 파문을 불러일으키려고 하겠지만….

결국 김인식 감독의 ‘얼굴없는 미녀’는 에로물이 아니다. 심지어 난해한 스타일을 과시하는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김혜수의 ‘얼굴없는 미녀’는 에로물로 기억된다. 이것이 영화 ‘홍보의 힘’이다.



주간동아 448호 (p70~7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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