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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일회용 눈물, 일회용 인간

  • 이 원 규 / 시인·생명평화 탁발순례단 총괄팀장

일회용 눈물, 일회용 인간

일회용 눈물,  일회용 인간
지난 3월1일부터 걷기 시작해 113일 동안 3000리 길을 걸었다.

지리산과 제주도, 부산을 지나 거제도 포로수용소까지 왔다. 돌아보면 참으로 먼길이지만 언제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곳을 걷고 있다. 어디나 시골은 아이 울음소리마저 끊어진 ‘유령의 마을’이요, 어디나 도시는 욕망 과잉으로 폭발하기 직전의 ‘낯선 행성’이다.

순례자가 순례자로만 남을 때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방인일 뿐이다. 그렇다. 나는 아직 경계인도 아닌 이방인이요, 방외인이다. 왜 이리도 세상이 낯선가. 오래 걸을수록 21세기의 화두인 생명평화의 꿈은 자꾸만 어긋나고 일회용 컵, 일회용 나무젓가락, 일회용 칫솔, 일회용 커피, 일회용 샴푸에 걸려 휘청거린다.

세상은 어느새 온통 일회용으로 바뀌어 있다. 이는 단지 쓰레기 양산 등의 환경오염 문제가 아니다. 문명사적인 문제다. 속도주의와 편의주의적인 발상과 행위에만 매달리는 우리 삶의 철학적인 문제다.

‘유령의 마을’ ‘낯선 행성’ 실체 확인에 발걸음 휘청



빨리 먹고, 빨리 싸고, 빨리 일하고, 빨리 쉽게 돈버는 것이 세상의 모든 이념과 가치에 우선한다. 공동선(共同善)은 이미 도덕 교과서처럼 헌책방에서도 구해보기 어렵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두들 앞만 보고 가는 길에 “같이 가자, 함께 가자” 어설프게 딴죽이라도 걸면 멈칫 노려보고 째려보고 급기야는 비수를 들이댄다.

농촌이나 도시나 함께 망해가면서도 도농 공동체의 길은 멀기만 하다. 농촌은 공동화(空洞化)로 망하고, 도시는 과밀화로 망해가면서도 서로의 살길인 쌍방향 교신은 아직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면 10년, 아니 5년 안에 농촌은 끝장이 난다. 농촌이 끝장나면 도미노처럼 도시도 끝장난다.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모두들 일회용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적한 시골길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적한 아름다움마저 위장된 꽃길이다. 온통 벚꽃으로 치장된 가로수와 그 아래 꽃길도 고객을 기다리는 ‘관광용’일 뿐이다. 재배된 꽃들을 뿌리째 비닐 포트에 담아 심었다가 꽃이 지기가 무섭게 뽑아버린다. 행여 씨를 부렸다 하더라도 유채꽃이건 코스모스건 꽃이 지면 가차없이 베어버린다.

꽃이 피는 과정과 씨앗을 맺는 과정은 모조리 생략되고 오로지 꽃이 피어 있는 동안의 아름다움만 탐하는 삶이 농촌과 농업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악의 꽃’인 도시야 말해 무엇하랴.

마침내 꽃도 일회용의 꽃으로 전락했으니 그러는 사이 인간마저 스스로 일회용으로 전락했다. 친구와 애인과 아내와 가족이 모두 일회용 컵이 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날마다 쓰고 버리는 일회용 칫솔이 되었으니 약속이나 서약 같은 것들은 모두 짜증나는 구차한 것이 되고 있다.

일회용 인간들이 유령처럼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예수도 교회에서 일회용이요, 부처도 법당에서 일회용이다. 정치도 일회용이요, 대통령도 일회용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도 일회용일 뿐, 둘러보면 이념도 전쟁도 모두가 일회용일 뿐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들 누군가의 일회용이 되지 않기를 꿈꾸고 있다. 제발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로부터 일회용 인간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늘 그러하며 그리 되리라 다짐하면서도 자신은 또 누군가를 일회용 컵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일회용 친구, 일회용 애인, 일회용 아내, 일회용 가족들이 걸어간다. 누군가를 일회용으로 여기는 동안 자신도 이미 일회용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일회용 인간들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너무나 바쁘게 걸어가고 있다.

학교에 가서 시험용 공부를 하고, 직장에 가서 성과급 일을 하고, 일회용 밥을 먹고, 일회용 회식을 하고, 일회용 섹스를 하고, 일회용 기도와 명상을 하고, 일회용 잠을 잔다.

모두들 일회용으로 단절된 위험하고 살벌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백척간두 진일보의 길을 자처하며 일회용 칼에 온몸이 난자당하며 가고 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삶이 일회용이니 죽음 또한 일회용이 아니겠는가. 대도시의 쓰레기매립장이나 소각장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리라. 그곳에서 마침내 영원한 삶을 만나리니 영원한 죽음 또한 깨우치게 되리라.

그대 눈속에 일회용 눈물이 가득하다. 어찌하랴. 내게는 그대의 눈물을 닦아줄 일회용 티슈가 없다. 다만 언제라도 함께 울어줄 준비가 되어 있을 뿐.



주간동아 441호 (p96~96)

이 원 규 / 시인·생명평화 탁발순례단 총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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