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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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이볜 대도박에 대륙 열받았다

총통선거 전세회복 위해 ‘대만독립 국민투표’제안하고 中 군사기밀까지 공개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3-12-31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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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대만-대륙(중국) 문제를 ‘양안(兩岸)문제’라 한다. 2004년 3월20일로 예정된 대만 총통선거를 앞두고 양안문제가 시끄러워지고 있다. 재선을 노리는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은 “대만해협 양안(一邊)에는 각각 독립된 국가(一國)가 있다”며 ‘일변일국(一邊一國)’을 주장해왔다. 천총통은 2002년 8월3일 일본에서 열린 ‘29차 세계 대만 동향회(同鄕會) 총회’에 보낸 화상 메시지에서 대만독립을 주장하는 일변일국을 처음 언급했다.

    독립을 지향한다고 해서 대만이 대륙(중국)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만은 대륙과 똑같이 중국 대륙 전체를 영토로 생각해왔는데, 이 생각을 버리고 대만 섬을 영토로 한 나라로 바꾸자는 게 대만독립 주장의 요체다. 이러한 천총통의 노선을 간접 지원하는 이가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다. 현재 대만의 국호는 중화민국인데, 대만독립을 바라는 사람들은 국호를 대만으로 바꾸자고 주장해왔다. 리 전 총통이 2003년 9월6일 중화민국을 대만으로 바꾸자며 연 ‘대만정명(正名)’ 집회에는 무려 15만여명이 참여해 대성황을 이뤘다.

    국민투표안 실패했지만 지지율 급등

    일변일국에 대항하는 대륙의 논리는 ‘일국양제(一國兩制)’다. 일국양제는 중국이라는 한 나라(一國)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병존(兩制)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1997년과 99년 중국은 이 논리에 입각해 홍콩과 마카오를 돌려받은 뒤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해줌으로써, 대만에 대해 “중국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들어와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자본주의 체제로 살아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해왔다. 이에 당시 대만 총통이던 리덩후이는 일국양제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대륙의 공격을 우려해 대만독립까지는 ‘내놓고’ 거론하지 못했다.

    하지만 야당인 까닭에 ‘언론자유가 있던’ 민진당의 천수이볜은 2000년 총통선거 때 대만독립을 주장해 50년간의 국민당 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당선됐다. 천수이볜의 당선에는 대만독립 주장과 더불어 ‘절대 여당’이던 국민당의 분열도 크게 작용했다. 국민당에서는 롄잔(連戰)을 총통 후보로 결정했는데, 롄잔의 라이벌인 쑹추위(宋楚瑜)가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리총통은 자기 당 후보인 롄잔이 아니라 탈당한 쑹추위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여당 성향의 표가 갈리면서 소수당 후보인 천수이볜은 2위를 기록한 쑹추위를 2%포인트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총통 도전에 실패한 쑹추위는 그후 친민당(親民黨)을 만들었는데, 국민당과 친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은 입법원(국회) 선거에서 여당인 민진당을 압도해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었다. 대만은 경상남·북도를 더한 면적과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국민당 독재에 항거해온 천수이볜을 지지해준 것은 고웅(高雄)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의 대만인들이었다. 반면 타이베이(臺北)를 중심으로 한 중부와 북부지방의 주민들은 국민당을 약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단결력은 강하나 소외받던 세력이 집권했으니, 보수세력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정치 대립이 극심해졌고 그 과정에서 구 정권 시절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대만은 극심한 정치격변을 겪었다.

    이와 더불어 천총통 시절 대만은 경제 추락을 겪었다. 한국이 IMF 경제위기를 맞을 때도 끄떡 않던 대만 경제가 계속 나빠져 2001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완전 고용을 자랑하던 대만은 실업률이 7%까지 높아지며 한국처럼 청년 실업문제로 홍역을 앓게 되었다.

    그러자 한 차례 실패를 한 보수세력이 뭉쳤다. 2004년 선거를 앞두고 롄잔을 총통 후보로 추대하고 쑹추위는 롄잔이 이길 경우 부총통이나 행정원장(국무총리)을 맡아 함께 대만을 이끈다는 보수대연합을 결성한 것. 이러한 발표 직후 롄잔에 대한 지지율은 천수이볜보다 15%포인트나 높아졌다. 이로써 재집권이 불투명해지자 천총통이 대만독립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들고 나왔다.

    2000년 대만 총통선거 직전 대륙은 천수이볜 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대만이 독립을 선포하면 공격할 것이라는 뜻으로 동지나해 쪽으로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는데, 이 위협이 오히려 천수이볜에 대한 지지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총통에 당선된 천수이볜은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그는 “대륙이 공격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조건 하에, ‘대만 역시 독립선포와 대만으로의 국호 변경 등 다섯 가지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4불1몰유(四不一沒有)’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로써 대만독립론은 잠복기에 들어갔는데, 재선이 불투명해지자 천총통이 다시 이를 부활시켜버린 것.

    2003년 7월15일 천총통은 정부 대변인을 통해 대만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메가톤급 발언을 했다. 보수대연합 세력이 한순간에 코너로 몰렸다. 당황한 보수세력은 “대만은 사실상 독립국가인데 왜 독립을 놓고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가. 국민투표법에 독립문제를 놓고 투표할 수 있다고 돼 있는가” 등을 거론하며 반론을 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 가운데 민진당이 ‘국민투표로 대만독립을 물을 수 있다’는 법안을 제출하자, 국민-친민당은 ‘국민투표로 대만독립을 물을 수 없다’는 또 다른 법안을 제출했다.

    발끈한 대륙, 대만 간첩단 검거 ‘맞불’

    갑론을박 끝에 2003년 11월27일 대만 입법원은 ‘국호와 영토를 변경하는 것은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다’는 내용의 국민-친민당의 국민투표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민진당 안건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높은 점을 의식해 ‘국가가 위협에 처했을 때는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애매모호한 단서조항을 덧붙였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대만독립을 묻는 국민투표 제안으로 천총통과 롄잔에 대한 지지율은 오차 범위(5%) 이내로 좁혀졌다.

    천총통은 입법원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았다. 4년간의 통치를 통해 독립을 선언하면 대만을 공격하겠다는 대륙의 위협이 ‘뻥’이라고 판단한 그는, “대륙이 480기의 미사일로 대만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4불1몰유 독트린 폐기를 선언했다. 대만을 겨냥한 대륙의 미사일이 480기라는 것은 군사기밀에 해당하는데, 최고 지도자가 이를 공개하면서 간접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대만은 1987년 이후 ‘대만판 햇볕정책’을 구사해 수많은 기업들이 대륙에 투자해왔다. 현재 대만은 약 1000억 달러를 투자한 최대의 대륙 투자국가다. ‘상하이 거리에서는 발에 차이는 게 대만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가 되었다. 이로써 대만 경제가 껍데기만 남게 되자, 오히려 대만 경제가 대륙에 예속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때문에 천총통은 과도한 대륙 투자는 오히려 대만을 대륙에 예속시킨다며 ‘계급용인(戒急用忍·너무 서둘지 말고 참을성을 갖자)’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조의 천총통이 대륙의 군사기밀인 480기 미사일 위협론을 거론하자, 그렇지 않아도 천총통을 눈엣가시로 보던 대륙이 발끈했다. 2003년 12월24일 대륙 정부는 국가안전부로 하여금 대만인 사업가 24명이 포함된 대만 간첩단 43명을 검거했다고 발표케 했다. 그러나 다수의 대만 사업가를 검거하면 양안문제뿐만 아니라 대륙의 경제까지도 위축된다. 실제 실업률이 20%에 육박하는 대륙으로서는 대만의 투자 위축이 가져올 파장을 경계해야 한다.

    때문에 간첩 검거 발표 다음날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는 대만의 주요 사업가 150명을 조어대로 초청해 “우리의 무력(미사일)은 대만독립을 저지하려는 것이지, 대만 국민을 공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경제 교류를 강화해 대만과 통일하려고 한다”는 ‘이경촉통(以經促通)’ 전략을 발표했다. 천총통이 대만 기업인들에게 ‘계급용인’을 거론한 데 반해 후진타오는 똑같은 대만 기업인을 놓고 ‘이경촉통’으로 구슬린 것이다.

    바야흐로 대륙과 대만은 대만 기업인을 놓고 줄다리기를 펼치고 있다. 이 줄다리기의 승패가 갈리는 순간 대만독립 문제는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2004년 3월20일로 예정된 대만 총통선거는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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