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2004.01.08

‘비’를 보면 ‘돈’이 쏟아진다

JYP엔터테인먼트, 스타 ‘비’ 마케팅 대박 … 디지털 콘텐츠·이미지까지 판매 ‘새로운 가치 창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12-31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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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를 보면 ‘돈’이 쏟아진다

    비는 메트로섹슈얼의 전형이다.

    2003년세모에 한 방송사가 주최한 영화상 시상식장에서 가수 ‘비’는 ‘효리’와 듀엣을 이뤄 탱고를 췄다. 효리가 예의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모습을 보여줬다면 비는 시쳇말로 ‘울트라 메가 메트로섹슈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줬다. 비의 댄스가 끝난 뒤 단하의 내로라 하는 배우들은 박수 치는 것을 잊고 순간 멈칫했고, 사회를 보던 안성기와 송윤아도 비가 연출한 묘한 분위기에 잠시 더듬거렸다.

    비가 보여준 메트로섹슈얼은 남녀의 전통적 성역할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나타난 새로운 인간형을 말한다. ‘동아일보’는 비를 이렇게 묘사했다. “비는 전례 없는 독특한 섹시 코드를 보여준다. 그 정체는 마초적인 남성성도 아니고 꽃미남이 주는 센티멘털리즘도 아니다. 핵심은 상반된 두 이미지가 충돌하면서 역설적으로 어울리는 포스트 모던한 결합에 있다. 아이 같은 미소는 ‘여성성’인 반면 그의 근육질 몸매와 격렬한 몸동작은 ‘남성성’이다.”

    비는 요즘 연예계에서 최고의 부가가치를 올리는 남자 가수다. 그는 불법복제가 판치고 스트리밍서비스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한 손으로 꼽기에도 모자라는’ 수량의 음반이 팔리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하나다. 그러나 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가 사이버 세상을 마케팅의 거점으로 끌어안아 다양한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이다. 명문대 졸업생들로 이뤄진 JYP라는 엔터테인먼트의 30대 팀장들은 ‘비’라는 상품으로 ‘메가 스피드’ 시대를 관통하는 ‘첨단 장사법’을 실험하고 있다.

    #남들과 거꾸로 간다

    ‘비’를 보면 ‘돈’이 쏟아진다
    비가 1집을 내놓을 즈음 한국 가요계는 괴기한 이름의 아이돌 스타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국적불명의 알파벳 이니셜이 판치는 가요계에서 우리말로 지어진 ‘컨츄리한’ 이름은 당시로선 모험심 가득한 역발상이었다. 감각에서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하는 JYP엔터테인먼트의 ‘낀세대’(1980년대 종반에서 90년대 초반 학번)들도 위험하다고 여겼을 만큼 비라는 이름은 상업적인 면에서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런 역발상은 보란 듯이 성공했다. 자연현상을 가리키는 평범한 순우리말 명사는 어느덧 20~30대 여성들이 ‘온몸으로 촉촉하게 맞고 싶은’ 대상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으며, 더 나아가 고유명사 ‘비’는 이제 ‘안기고 싶고 깨물어주고 싶은’ 메트로섹슈얼한 어떤 이미지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변모 중이다.

    고루한 발상으로 ‘카피 제품’의 홍수 속에 다시 비슷한 ‘아류’를 내놓았다면 ‘맞고 싶은 비’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남들과 다름’은 공짜로 보고 듣고 읽을 것이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 마케팅의 ABC나 다름없다.

    #포장을 바꿔 다르게 판다

    정보기술의 발전은 확보한 콘텐츠를 다양한 루트를 통해 판매하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를 가능케 했다. ‘포장을 바꿔 다르게 팔기’는 정보산업 시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비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원소스 멀티유즈를 통해 제한된 역량으로 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비는 음반과 함께 디지털콘텐츠를 판매한 최초의 엔터테이너다. 비의 2집을 사면 선물로 쿠폰 하나를 받는다. 디지털콘텐츠 사용권인 쿠폰으로 소비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뮤직비디오와 사진을 보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고, 컬러링 벨소리 노래방 등 모바일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비는 상품권으로도 팔린다. 비의 초상권을 계약한 한 회사가 비의 얼굴이 인쇄된 상품권을 찍어 판매하고 있는 것. 비는 뮤직비디오도 단순히 음반을 더 팔기 위해 찍지 않았다. 그는 뮤직비디오에서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입고 춤을 춘다. 뮤직비디오에 PPL(간접광고)을 도입한 것. 비와 PPL계약을 맺은 의류업체는 비의 이름을 넣은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브랜드’ 라인을 꾸려 짭짤한 수익을 올리며 비와 윈윈(win-win)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비’를 보면 ‘돈’이 쏟아진다

    비는 가수, 배우 두 분야 모두에서 성공하고 싶다고 말한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에 들어서면 묘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 비밀은 음악에 있다. 스타벅스는 매장의 배경음악으로 ‘히어뮤직’이 제작한, 스타벅스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반을 튼다. 재즈 팝 클래식 등 각 장르별로 엄선해 편집된 음악은 매장 분위기의 핵심을 차지한다. 이로 인해 찾는 이들로 하여금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비는 이 같은 감성 마케팅에 가장 알맞은 대상이다. 럭셔리하면서도 친근하고, 완벽한 남자이면서도 여성성이 녹아 있는 비의 이미지가 바로 최고의 상품이라는 얘기다.

    비가 출연한 교촌치킨의 방송광고가 1월 전파를 탄다. 치킨과 비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느껴진다. 그러나 교촌치킨의 광고에는 치킨이나 주방장 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비가 ‘야마카시’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의 광고가 진행된다. 교촌치킨은 비가 가진 아우라를 이용해 치킨이 아니라 비의 이미지를 팔겠다는 감성 마케팅에 나선 것이다. 비를 광고모델로 이용하려는 회사가 줄을 서는 것은 비가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핵심역량 늘리고 고객에게 다가서라

    비는 노래와 춤이라는 핵심역량에, 핵심역량 버금가는 보조역량을 갖추고 있다. 호평을 받은 ‘연기력’이 바로 그것. 비는 가수, 배우 두 분야 모두에서 성공하고 싶어한다. 드라마 출연시 1~2시간밖에 못 자며 노래 춤 연기를 연습했다고 한다. 핵심역량 하나만으로 물건이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 ‘멀티플레이어’는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더블플레이어’는 돼야 한다. JYP엔터테인먼트측은 비의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가 나타나면 언제든 출연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는 CRM(고객관계관리)에도 능하다. 팬과 직접 만나는 자리를 자주 마련하는 등 모든 마케팅이 CRM 기반 위에서 이뤄진다.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마케팅의 기본. 고객에게서 멀어지면 수익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비의 음반은 LG25나 바이더웨이 같은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다. 편의점과 제휴를 맺어 판매망을 다양화함으로써 홍보 효과를 누리는 동시에 그만큼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비의 음반 속에 ‘비의 1일 매니저 되기’ ‘리니지 무료이용권’ 등의 상품이 숨겨져 있는 것도 CRM의 일환이다.

    #최고와 상대하면 최고가 된다

    비가 ‘뜨기’ 전 JYP엔터테인먼트는 내로라 하는 기업들에 비와 관련된 사업제안서를 보냈다. 제안서를 받은 기업들은 ‘요즘은 이런 회사까지 제안서를 보내온다’면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결국 비는 굴지의 업체들과 거래를 텄고, 1등기업들과의 거래는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비가 처음으로 광고에 출연한 업체는 통신업계 1위인 SK텔레콤이었다. 비는 SK텔레콤과 유·무선 콘텐츠 독점계약을 맺었다. 벨소리를 공급하는 작은 회사들과 계약하는 대신 한방에 1등 업체와 ‘빅딜’을 한 것이다. SK텔레콤과 한 배를 탄 비는 최근 번호이동성제도와 관련된 SK텔레콤 광고를 찍었다.

    JYP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한 인터넷포털 ‘다음’은 비의 또 다른 동반자다. 다음은 지난해 유료 서비스를 시작한 ‘댄스댄스’에 비의 춤동작을 담은 댄스플레이어를 선보여 짭짤한 재미를 봤다. 비는 다음에서 곡에 쓰일 가사공모 이벤트와 뮤직비디오 시나리오 공모 이벤트를 벌여 홍보 효과를 누렸고, 다음은 11만명이 참가한 이 행사를 사이트 프로모션 수단으로 적절히 활용했다.

    국내 최대 게임업체로 코스닥시장의 대장주로 불리는 ‘엔씨소프트’도 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비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를 즐겨 한다는 얘기를 하거나 비의 음반에 리니지 무료 이용권이 선물로 들어 있는 것은 비와 엔씨소프트의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비가 중국 진출에 성공하면 비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을 만드는 것도 기초적인 단계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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