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2004.01.08

“우린 삶의 질 향상 공동체로 간다”

마포두레생협 차분히 활동 반경 키워 … 동네부엌·차병원 이어 의료생협도 준비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12-31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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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삶의 질 향상 공동체로 간다”

    마포두레생협을 찾은 주부들. 마포두레생협 조합원 7명이 출자해 만든 유기농산물 반찬가게 ‘동네부엌’. ‘믿을 수 있는 카센터’를 표방하고 나선 새로운 형태의 생협 ‘성미산차병원’(왼쪽부터).

    미국 워싱턴 주의 젖소가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된다는 보도가 나와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2003년 12월2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마포두레생활협동조합(이하 마포생협)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매장에서 몇몇 주부들이 유기농산물을 고르고 있었다.

    “이곳의 유기농산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지요. 1년째 이곳에서 농산물을 가져다 먹는데 가족들의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물론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아토피 때문에 10년 동안 항생제를 먹어온 남편이 이곳 농산물을 먹은 뒤부터 약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좋아졌습니다.”(노미나씨·마포구 성산동)

    2001년 설립된 마포생협은 조합원 수가 600가구에 이르는, 생협 가운데서도 움직임이 활발한 곳이다. 특히 마포생협은 ‘성미산 배수지 건설 반대투쟁’ 과정을 겪으며 엄청나게 성장했다. 2001년 서울시가 마포구 성미산에 배수지를 건설하겠다고 밝힌 뒤 조합원을 중심으로 수많은 지역민들이 ‘환경보호’를 내세워 배수지 건설 반대투쟁에 나섰고, 결국 서울시는 지난 10월 건설계획 유보 결정을 내렸다.

    이 반대투쟁 기간에 조합원들의 결속력은 더욱 좋아졌고, 그 결과 최근 몇 가지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조합원들이 만든 유기농 반찬가게인 ‘동네부엌’과 국내 최초의 조합형 자동차정비업체인 ‘차병원’이 들어섰고, 2004년 개교 예정인 도심형 대안학교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단순히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교육, 환경 등 여러 분야로 활동 폭을 넓히고 있는 것.

    600여 가구 참여 끈끈한 결속력



    1년 전부터 시작한 온라인 반찬가게 매장을 오프라인으로 넓힌 ‘동네부엌’은 마포생협 조합원 8명이 공동 출자해 2003년 11월17일 문을 열었다. ‘유기농, 친환경, 무공해’를 기치로 내건 이 가게는 서너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유동 인구도 거의 없는 곳에 자리잡았지만 시작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음식 장만하기 힘든 직장인 조합원들의 지원이 열렬하다.

    대표 운영자 박미현씨(39)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생협에서 유기농 채소를 사와도 냉장고에 두고 썩히는 경우가 많았다”며 “바쁜 그들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밥을 차려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반응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회원 가입 뒤 한 달에 7만원(2인 기준)을 내면 일주일에 세 번(월, 수, 금), 두 가지 반찬을 찾아갈 수 있다. 회원이 아닌 일반인도 반찬을 구입할 수 있는 ‘열린 가게’다. 반찬 가격은 일반 가게보다 1.5배쯤 비싸지만 반응이 좋아 공급이 달릴 정도.

    온라인 반찬가게는 직장생활을 하는 마포생협 조합원들이 반찬을 공동으로 만들어 품앗이 형태로 나눠먹자는 취지에서 2002년 초 생겨났다. 일주일에 두 번, 전업주부 중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반찬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비좁은 가정집 부엌에서 많은 양의 반찬을 만들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좀더 자주 이용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게 된 것.

    박씨는 “가게를 준비할 때도 공동체의 장점을 살려 조합원들이 로고, 그림, 시설 등을 나눠 작업했다”며 “앞으로 반찬 메뉴를 표준화하는 작업 등을 마무리하고 타 지역의 생협에도 경험을 전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포생협 구교선 상무는 “덜 바쁘게 살면서 유기농산물로 각자 해 먹는 것도 좋겠지만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도 보기 좋지 않느냐”며 자랑했다.

    조합형 자동차정비업소 ‘차병원’은 그 독특한 실험정신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2003년 11월1일 문을 연 ‘차병원’은 출자금을 낸 120명의 조합원이 주인이다. 조합원이 만들고, 이용하고, 운영하는 생활협동조합. 이곳 조합원 역시 대부분 마포생협 조합원이다.

    차량 1대당 1계좌(10만원)의 출자금을 내고 가입하면 회원이 되고, 회원은 가격과 정비기술, 서비스 등에서 특혜를 받는다. 대표 운영을 맡은 진상돈 상무이사(41)와 정비기술자 2명이 병원 주치의처럼 조합원의 차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준다.

    “조합원에게는 일상적 차량 관리요령도 알려주고 사고가 날 경우 전화 한 통화로 견인과 수리까지 해줍니다. 정비 가격을 공개하며, 부품은 순정품만 사용합니다. 기존 정비업소들이 소비자들에게 심어준 불신을 완전히 걷고 믿음을 주려는 게 1차적 목표입니다.”

    ‘차병원’은 ‘성미산 투쟁’ 현장에서 벌목을 막기 위해 천막을 치고 밤샘농성하던 조합원들이 대화 도중 “안심하고 자동차를 맡길 수 있는 정비업소를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은 게 시작이었다. 공동체 정신의 산물인 셈이다. 차병원은 수익의 10%는 지역사회에 환원하며, 각종 동호회나 봉사활동을 통해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랑방도 계획 중이다.

    진상무는 “이익보다 조합의 공동체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도 “대표 운영자로서 조합원 공동의 이익과 상업성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래서 수도권 내 자가운전자들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개방하며, 또 ‘차병원’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관심도 높아 조합원과 일반인 고객이 절반씩 차지한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 ‘허브’ 역할

    마포생협의 뿌리는 1994년 시작된 공동육아어린이집이다. 따라서 조합원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무엇보다 크다. 현재 마포구 성산·망원·합정·연남·서교동 등에서 참나무어린이집 등 공동육아조합 3곳과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 2곳 등 5곳이 운영되며, 2004년 9월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가칭)가 문을 열 채비를 한다.

    대안학교는 지역주민들이 대안교육잡지 ‘민들레’ 8월호에 교사모집 공고를 내고, 교사 20여명이 9월17일 교사 모임을 꾸리면서 본격적인 설립준비에 들어갔다. 이후 10월18일 주민추진위원회를 결성, 교사들과 설립에 관한 구체적인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주창복 성미산 학교 주민추진위원회 시설재정팀장은 “곧 교사 모임이 교사추진위원회로 바뀌면서 구체적인 학교의 윤곽을 확정할 계획이다”며 “2004년 3, 4월쯤 학교 시설의 건축, 교재 작성, 교사 교육실습, 학생 선발 등 구체적인 일들이 이뤄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 대안학교는 산골이나 지방에 있는 대부분의 대안학교와 달리 도시형 대안학교인 점이 특이하다. 지역사회와는 무관하게 지역 속의 섬처럼 고립된 일반 학교와 달리,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지역의 생활과 문화, 역사를 호흡하는 지역 속의 학교로 만드는 게 목표다.

    마포생협은 다양한 지역활동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2003년엔 성미산 살리기 운동이 그 중심에 있었고, 산악회와 아토피 공부모임, 숲속 음악회 등 다양한 동아리활동도 이뤄진다. 2001년 세운 40여평의 ‘우리마을 꿈터’가 그런 모임과 활동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택견, 요가, 글쓰기, 영어공부 등을 하며, 주민밴드 ‘마포스’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새해 마포생협의 반경은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현재 의료생협도 준비 중이며,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노인공동체도 논의 중이다. 구교선 상무는 “생협은 단지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조직에 머물지 않는, 좀더 나은 삶을 위한 생활공동체다”며 “교육 문화 등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고 말했다. 소수의 조합원들이 만드는 공동체 활동으로 마포 서부지역의 겨울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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