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2004.01.08

로펌은 국회의원 양성소?

총선 출마 거론 변호사 무려 140여명 … 우리당은 민변 소속, 한나라당은 전관 출신 많아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3-12-31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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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펌은 국회의원 양성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노무현 정권의 주요 인재풀이다. 2003년 11월9일 열린우리당 참여를 선언하는 민변 변호사들.

    2002년 대통령선거의 특징은 여야 주요 대선후보가 법조인이었다는 점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 여기에 이한동 하나로국민연합 후보까지 모두 3명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출마했다. 예선에서 노후보와 겨뤘던 이인제 의원도 법조인 출신.

    정치권의 법조인(변호사) 강세 현상은 일과성 현상에 머물지 않을 것 같다. 물론 5공시절 ‘육법당’(육사와 법조인 출신이 정치권에 많이 진출한 점을 비꼰 용어)이라는 비아냥이 나돌 정도로 변호사들의 정계진출이 활발했으나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것.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중앙위원인 임종인 변호사는 “상향식 공천이 제도화되는 이번 총선부터 변호사 강세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정당 공천으로 출마하려면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나와 지역구 경선부터 치러야 하는데 불확실한 공천을 바라보고 멀쩡한 직장에 사표를 내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변호사는 사표 쓸 필요가 없는 직종이다. 사법시험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평생 보장된 라이선스를 누리는 직종인 까닭에 정치권으로 옮겨오기가 비교적 쉽다는 것.

    현재 17대 총선 출마설이 나도는 변호사는 전국적으로 140여명. 현행 227개 선거구 가운데 3분의 2에 가까운 선거구에서 변호사가 후보로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가장 많은 37명이 출마를 준비 중이며, 현역의원을 포함해 16명의 변호사들이 출사표를 던진 경남이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지평·덕수 현 정권과 정서적으로 밀접

    로펌은 국회의원 양성소?

    이원영 변호사,윤영규 변호사,권영세 변호사,조윤선 변호사(왼쪽부터)

    그런데 출마를 준비 중인 변호사들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몇 가지 다른 특징을 보인다. 우선 이번 총선에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소속 변호사들의 진출이 두드러진다. 이미 우리당에 터를 잡은 민변 초기 인물인 이상수 천정배 의원의 뒤를 이어 임종인(경기 안산 상록) 이원영(경기 광명갑) 최재천(서울 성동) 윤영규(서울 마포을) 임영화(서울 성북을) 장철우(전남 고흥) 등 상당수 민변 변호사들이 우리당 공천을 노리고 있다.



    우리당 공천 희망자 가운데 변호사 출신이 많다면 한나라당 공천으로 총선을 준비 중인 변호사들 가운데는 ‘전관’출신이 많다. 안홍렬(서울 성북을), 강민구(서울 금천) 변호사 등 정계입문 얼마 전까지 법조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현직 출신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법조인 출신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도 변호사 출신보다 판사나 검사로 이름을 날린 뒤 정계에 발을 내디딘 이들이 많은데, 한 변호사는 “이른바 ‘전관’출신 변호사들이 상대적으로 더 보수성향이 강한데 이 때문에 이들은 한나라당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의 정계입문이 본격화되면서 정치인을 배출하는 로펌(법무법인)도 적지 않다. 대표적 법무법인으로 해마루합동법률을 꼽을 수가 있는데, 해마루 출신 간판급 정치인이 바로 노대통령이다. 지금은 이곳을 떠났지만 노대통령은 1990년대 중반까지 천정배 변호사와 함께 해마루의 간판 변호사로 활약했다. 노대통령의 뒤를 이어 천정배 의원이 재선의원 고지에 올랐고 이번 총선에서는 임종인 변호사가 출사표를 던졌다.

    로펌 구성원들이 현정권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친(親)노무현계’로 분류되는 로펌으로는 법무법인지평을 꼽을 수 있다. 지평의 대표변호사로 활약하던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사정비서관에 발탁된 양인석 변호사가 지평 출신 변호사. 한때 지평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던 윤영규 변호사도 서울 마포을에서 터를 닦고 있다.

    이번 총선에 직접 후보를 내지는 않지만 민변의 어른인 이돈명 변호사와 현 민변 회장인 최병모 변호사가 있는 법무법인덕수도 현정권과 정서적으로 가까운 로펌. 또 대북송금 특별검사를 지낸 송두환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한결, 이용철 변호사(민정2비서관)와 최은순 변호사(국민제안비서관)를 청와대 비서관으로 ‘파견’한 법무법인새길, 이정우 변호사의 출마 여부가 관심인 법무법인정평 등도 법조계에서는 현정권의 인재풀로 분류되는 로펌들이다.

    한나라당의 인재풀로 꼽히는 법무법인으로는 김찬진 변호사가 고문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바른법률을 들 수 있다. 김변호사가 15대 국회 때 전국구의원을 지낸 데 이어, 이곳 소속 권영세 변호사가 이번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다.

    이밖에 소속 변호사들이 국회에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가 몸담았던 법무법인광장도 한나라당과 정서적으로 멀지 않은 로펌이다.

    예산과 법 지식 활용 ‘최고 강점’

    김&장, 세종, 태평양 등 대형 로펌의 경우 과거 선거에서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켜왔다. 하지만 지난 대선을 앞두고 김&장 소속 조윤선 변호사가 한나라당 선대본부의 대변인을 맡아 활약한 데서 알 수 있듯 대형 로펌의 경우 친(親)노동계 성향으로 분류됐던 노무현 캠프보다는 친(親)기업 성향이 두드러진 이회창 캠프를 선호했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 의견이다.

    변호사들의 정계진출에 대해 내부의 의견은 어떨까. 윤영규 변호사는 “과거 로마제국에서는 원로원 의원이 되거나 집정관 등 국가지도자가 되기 전 반드시 회계감사관과 법무관을 지내게 했다. ‘예산’과 ‘법률’을 제대로 이해해야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예산과 법률에 대한 지식은 국회의원에게 꼭 필요한 지식인데, 변호사들은 이 부분에 강점이 있다”며 “국회의원의 변호사 비율이 너무 높은 것도 문제지만 변호사만큼 전문성을 갖춘 직종이 드문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론도 없지 않다. 이건욱 변호사(법무법인대지)는 “정치적 성향을 떠나 변호사의 주 수입원은 기업이다. 시국사건을 많이 맡는 변호사도 많든 적든 기업관련 소송으로 돈을 번다. 결국 시국사건으로 이름을 알린 뒤 이를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하는데 이런 현상이 법조계 발전에 바람직한 일인지는 곱씹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정 이래 가장 많은 변호사들이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는 17대 총선. 과연 변호사들은 어떤 성적을 올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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