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2004.01.08

兩黨 대결 뽑아든 盧 “나를 따르라”

대통령과 한나라 싸움 ‘총선 로드맵’ 윤곽 … DJ-민주당 분리, 변화와 개혁 승부수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12-31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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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兩黨 대결 뽑아든 盧 “나를 따르라”
    ‘선거는 구도가 중요하다’, ‘큰 흐름이 대세를 결정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경험칙이다.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라는 말을 해 설화(舌禍)를 일으킨 12월24일, 청와대 오찬 모임에서도 노대통령은 이 경험칙을 얘기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서갑원 전 대통령 정무비서관의 기억이다.

    “선거는 구도도 중요하고 바람도 중요하지만,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싸움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결국 차별성으로 인해 바람이 불 것이다.”

    노대통령은 이어 이런 말도 했다. “여러분이 고생길로 나서는데 내 지지도가 낮아 혹시 피해를 줄까 걱정이다. 손해보지 않게 나도 최선을 다하겠다.”

    이날 모임은 전장터로 떠나는 9명의 비서관, 행정관 출신 참모들에게 “곰탕 한 그릇 줄 테니 먹고 힘내라”는 의미로 노대통령이 만든 자리. 빈손으로 보내는 미안함 때문인지 이날 따라 노대통령의 립 서비스는 정도를 넘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한 참석자는 “조금 오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이날 발언에는 감춰진 복선이 너무 선명했다. 민주당 조직국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의 발언 속에는 노대통령의 총선 로드맵이 그대로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적인 자리의 발언을 언론에 흘려 코드가 맞는 지지자들에게 총선 방향타를 제시한 게 숨은 의도”라고 분석했다. 실상 이날 발언은 덮어두었다면 외부에 알려지기 어려웠다. 그러나 발언은 오찬이 끝나자마자 여과 없이 언론에 소개됐다. 누군가 논란이 되더라도 쟁점화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의도적으로 언론 플레이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유권자에 확실한 메시지 전달”

    노대통령은 이날 “총선 전면에 직접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대통령의 전면 등장은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인사들의 바람이다. 현재 원내 3당인 우리당은 노대통령이 전면에 등장해야 여당 프리미엄을 활용할 수 있다. 노대통령이 나서면 친노(親盧)세력을 결집할 수 있고, 이는 민주당과 우리당 사이에서 고민하는 반(反)한나라당 세력들을 확실하게 견인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우리당 고위 당직자 K씨는 “협소한 이념적 스펙트럼과 비전 제시 실패 등으로 우리당은 자력으로 뜨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했지만 노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유권자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줬다”고 덧붙였다. 부산 출신 한 386 인사는 “선거는 구도라는 인식에 따라 노대통령이 극적으로 우리당 선거를 진두지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몇 차례 참모들에게 속내를 드러냈다”고 전했다.

    兩黨 대결 뽑아든 盧 “나를 따르라”

    김혁규 전 경남지사, 강금실 법무부 장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원(왼쪽부터).

    노대통령은 17대 총선을 ‘한나라당 대 우리당’이라는 양당구도로 몰고 갈 계획이다. ‘선거는 곧 구도’란 경험칙에 따른 전략이다. 사실 양당구도로 재미를 본 사람은 DJ(김대중 전 대통령)다. DJ는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자민련을 ‘왕따’시키고 ‘민주당 대 한나라당’으로 압축된 총선구도를 설정, 톡톡히 재미를 봤다. 말하자면 노대통령의 양당구도는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것이다. 당시 DJ의 양당전략은 국민회의에서 민주당으로 변신한 당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출발했다. 노대통령의 이번 양당구도 전략도 비슷한 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정치지형으로 보면 우리당이 설 땅은 그리 많지 않다. 호남은 민주당 아성이 견고하고, 서울과 수도권은 민주당과 둘로 나뉘는 분위기다. 영남 공략도 생각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한나라당이 원내1당을 자연스레 차지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결국 방법은 ‘민주당 죽이기’를 통해 구도를 바꾸는 것이다.

    兩黨 대결 뽑아든 盧 “나를 따르라”

    12월15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동아시아 포럼 총회에 참석, 악수를 나누고 있다(위쪽). 2002년 12월13일 경기도 평택 유세에 나선 노무현 민주당 후보.

    아이로니컬한 대목은 DJ가 노대통령의 이런 전략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DJ는 그동안 칩거에 가까운 동교동 생활을 접고 새해 정치적 해석이 가능한 행보를 시작한다. 1월6일, 국민의 정부 당시 참모들을 대거 불러 성대한 팔순잔치를 하는가 하면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의 만남도 계획 중이다. 정치 흐름상 DJ의 선택은 민주당과 우리당의 사활과 직결될 수 있다. 호남 표심은 DJ의 선택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이와 관련, 노대통령의 측근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이번 선거에서 DJ와 민주당만 분리하면 양당구도로 갈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의 지도자가 아닌 국가의 지도자인 DJ가 결국 노대통령과 함께 갈 것”이라고 말했다. 햇볕정책의 계승 등을 놓고 그동안 실무자 차원에서 교감이 있었음을 은연중에 시사했다. 그러나 동교동 사정에 밝은 민주당 한 현역의원은 “분당을 통해 ‘개혁과 저항세력’을 이분법적으로 나눈 노대통령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DJ가 매우 언짢아하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라며 ‘노무현-DJ’ 연대를 부인했다.

    여권의 총선 공략 포인트는 구 정치권의 ‘구악’과 ‘부패’의 부각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초록은 동색’이란 공세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노대통령의 한 386 측근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부패지수는 서로 비슷하다”며 “구악과 개혁 세력의 대결구도가 뜨면 양당은 공히 치명적인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자금과 관련해 검찰이 확보한 정치인들의 비리 백태가 1월 중 공개되면 구악과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식상함이 더할 것이라는 분석인 셈이다. 그 경우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구악’은 국민들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며 개혁을 표방한 우리당이 여론을 선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특검’의 등장은 예상치 못한 부담이다. 특검이 노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를 파헤칠 경우 이 전략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강금실-김혁규-정동영 카드 뜰까

    2000년 총선 때 양당구도를 통해 기선을 제압한 DJ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카메오’를 등장시켰다. 이번 선거도 이런 정치 이벤트가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노대통령 주변에서는 여권 내부의 가용자원을 모두 동원하자는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당 한 관계자의 얘기다.

    “아마도 1월 말 또는 2월 초, 총선용 개각 및 청와대 비서진 개편이 한 번 더 있을 것으로 본다. 그때가 되면 경쟁력 있는 여권 인사들이 상당수 우리당에 동참할 것이다.”

    그가 말하는 후보군에는 김진표 경제부총리, 강금실 법무부 장관,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등 이 포함돼 있다. 특히 우리당 일각에서는 ‘강금실-김혁규-정동영’이라는 삼각편대의 등장을 예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전직 청와대 한 비서관은 “노대통령은 강장관을 씨감자 같은 존재로 보고 있다”며 “배가 고프다고 씨감자를 삶아 먹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검찰개혁이라는 중책을 완수해야 한다는 의미로 ‘총선 징발’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우리당의 마지막 대규모 수혈이 이뤄지는 1월 말, 또는 2월 초를 전후해 노대통령의 입당도 예상된다. 노대통령의 입당을 전후해 소위 시민혁명군의 등장 가능성이 거론된다. 구악과 부패 세력에 반대하는 자발적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노대통령을 에워쌀 것이라는 게 우리당의 전망이다. 이와 관련한 여권 내부의 예측은 매우 날카롭다. 노대통령의 한 386 측근은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개혁에 대한 노대통령의 의지는 거의 절대적이다. 노대통령의 총선 로드맵은 ‘변화와 개혁’이라는 코드가 기본이다. ‘차떼기’ 등으로 기성정치에 실망한 시민들이 노대통령의 이런 로드맵에 찬성할 것이다. ‘1219 리멤버’ 행사장에서 말한 시민혁명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총동원령의 반대편에는 책임총리제가 버틴다. 노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 있는 선거구제 도입을 전제로 분권형 책임총리 자리를 총선 후 1당에 양보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최근 김원기 우리당 의장이 제안한 분권형 책임총리제는 사실상 노대통령의 평소 지론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당 한 관계자는 “책임총리제는 98년 DJP 공동정권의 사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대통령의 일부 권한까지 떼어주며 중대선거구 및 도농복합선거구제를 추진해 지역구도를 타파하려는 노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서갑원 전 비서관은 “노대통령이 정치만 생각하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총선 이후까지 여소야대 상황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게 노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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