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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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명 보내고 北 수복 땐 한국 주도

럼스펠드 방한 대차대조표 … ‘파병 갈증’ 밑지는 장사 때문에 독설 쏟아내(?)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3-11-27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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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천명 보내고 北 수복 땐 한국 주도
    11월18일 제35차 한미안보협의회(SCM)를 끝내고 오산 미 7공군기지를 방문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미군 장병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김정일 정권을 ‘사악한 정권’으로 규정하고, 다음날 알래스카주 엘먼도프 미 공군기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는 “수십 년에 걸친 공포정치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정권교체가 북한을 휩쓸 수 있다”고 발언해 화제가 됐다.

    럼스펠드는 그동안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의 목표점을 북한 내부에서 봉기가 일어나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거나(regime change), 선제공격으로 김정일 정권을 축출하는 것으로 정했었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함으로써 럼스펠드와 코드가 일치함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럼스펠드가 한국을 방문해 김정일을 ‘사악한 자’로 표현했으니, 미국에서는 여전히 대북 선제공격론이 유력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부시 대통령은 럼스펠드의 주장을 밀치고, “대화로 한반도 문제를 풀자”는 파월 국무장관의 온건론을 수용했다.

    한국 주장 수용한 ‘작전계획 5027’

    파월의 온건론은 지난 8월 말 열린 1차 6자회담의 형태로 구체화됐다. 미국과 북한은 1994년 1차 북핵위기 해결을 위해 갈루치와 강석주를 대표로 한 양자회담을 추진해 그해 10월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 비교적 잘 지켜지던 이 합의는 9·11 테러 후 미국의 대북 중유 공급 중단과 북한의 2차 핵위기 유발에 이어 신포지구 경수로 건설이 중단됨으로써 ‘사실상’ 파기됐다.

    미군은 중동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모두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윈-윈 전략). 미군은 작전 개시 43일 만에 후세인을 축출하고 이라크 전역을 장악함으로써 윈-윈 전략을 구사할 능력이 있음을 과시했다. 그러나 미군은 이라크군과의 전쟁에서는 쉽게 승리했으나 이라크 전역을 무대로 한 평정작전과 선무작전에서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러한 경험이 한반도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군과 한국군은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에 대비해 작전계획 5027을 만들어놓고, 매년 조금씩 개정해오고 있다. 1998년 한미연합군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 전쟁은 김정일 정권 소멸을 목표로 한다는 데 합의하고 이를 작전계획 5027에 반영했다. 그러나 각론에서 한·미 양군은 큰 의견 차이를 보였다. 미군은 김정일 정권이 소멸할 경우 ‘미군 주도하에 군정을 한다’고 주장한 데 반해, 한국군은 ‘한국군의 계엄’을 주장했으나, 승자는 미군이었다. 그런데 이라크전을 통해 전쟁보다 전쟁 이후의 작전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 미군은 자기 주장을 접고 한국군 주장을 수용해주었다. 이에 따라 올해 개정된 작전계획 5027에는 북한 지역을 수복하면 한국군은 계엄작전을 펼치고 그 사이 통일부는 북한 과도정부 역할을 한다는 세세한 계획이 추가됐다.

    이러한 변화는 이라크전이 한국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의 협조를 중시하는 ‘동맹파’가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이라크전이 한반도에 끼친 또 다른 영향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이라크전을 통해 미국은 두 개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있어도, 두 개의 전쟁 이후 작전은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라크가 안정될 때까지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포기한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택한 것이 6자회담이다. 이러한 부시 정부의 선회는 1994년 클린턴 정부의 선회를 연상시킨다. 1차 북핵위기가 고조되자 클린턴 정부는 1994년 6월쯤 북한의 핵시설을 정밀 폭격한다는 내용의 작전계획 5026을 세웠다. 북한은 이라크와 달리 강대국인 중국·러시아(구 소련)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중국과 러시아는 접경국가인 북한이 미국의 공격을 받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1971년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 키신저가 미-중 관계를 확립한 뒤 ‘확실한’대립관계로 바뀌었는데, 이 대립관계가 미국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만든 단초로 작용했다. 클린턴 정부는 북한을 공격해 불안을 느낀 중국과 러시아가 다시 동맹관계로 돌아가 공동 대응하면 미국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한국과 일본이 앞장서 도와줘야 하는데, 한·일 두 나라는 경제위기를 의식해 북한에 대한 공격을 반대했다. 이 때문에 클린턴 정부는 북폭을 포기하고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선택했던 것이다. 부시 정부 또한 비슷한 여정을 거쳐 양자가 아닌 6자회담 형식의 대화를 선택했다.

    보이지 않는 한·미 마찰 심화될 듯

    소식통에 따르면 1차 6자회담에서는 ‘5대 1의 구도’가 만들어졌었다고 한다. 문제의 ‘1’은 핵위기를 일으킨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었다고 한다. 회담에서 북한은 불가침 조약 체결→북한의 핵시설 사찰 등으로 이어지는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4단계 방안을 들고 나왔으나, 미국 대표는 빈손으로 나왔다는 것. 따라서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일본·러시아·중국 다섯 나라가 일제히 “왜 빈손으로 왔는가”라며 미국을 성토했다고. 지난 10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보장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6자회담에서 나온 ‘5’의 성토 때문이다.

    최근의 남북 관계는 전례 없이 순항하고 있다. 한국은 올해 국제사회가 북한에 지원한 금액과 물품(차관과 민간 지원분 포함)의 70% 정도를 혼자 부담한 최고의 ‘산타 할아버지’였다. 이는 “김정일 정권 전복을 노리는 미국의 시각은 옳지 않다. 김정일 정권을 존속시키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믿는 세칭 ‘자주파’가 노무현 정부의 주력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국가안보회의(NSC)에 주로 포진해 있는 자주파는 노대통령을 움직여 방한을 앞둔 럼스펠드에게 일찌감치 ‘찬물’을 끼얹는 용기를 보였다.

    럼스펠드가 한국에 도착하기 이틀 전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노대통령은 재건부대 중심으로 3000여명을 이라크에 추가파병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힌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천하의’ 미 국방장관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의 국가원수가 결정한 것을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럼스펠드는 “한국의 결정을 감사히 수용한다”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전혀 감사하지 않았기에 김정일 정권을 ‘사악한 정권’으로 규정하고 “북한에서 극적인 정권교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퍼부은 것이다.

    이라크전 덕분에 노무현 정부는 작전계획 5027을 유리하게 수정하고 6자회담을 이끌어냈으며 북한과의 대화 끈을 강화하는 효과를 얻고, 대신 재건부대를 중심으로 한 3000여명 추가파병 검토라는 카드를 내주었다. 거래로 따지면 아주 잘 한 셈인데 문제는 ‘힘센’ 미국의 속내가 전혀 편치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불만은 주한미군사령부와 함께 한미연합사와 유엔사까지도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겠다는 것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한 전문가는 “한국이 추가파병에 보다 적극적이었더라면 한미 간의 마찰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전투병 위주로 더 많은 병력을 보낸다면 한국 기업들은 더 많은 일감을 따오게 된다. 동맹파는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적극 파병을 주장했지만 노대통령은 대북 관계를 중시하는 자주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동맹파는 약간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윈-윈 게임을 하자고 주장한 반면, 자주파는 희생을 최소화하는 대신 윈-홀드(무승부) 게임을 만들자고 주장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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