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수 검찰총장(오른쪽)과 안대희 중수부장의 ‘검찰 바로세우기’ 노력이 정치권에 대재앙을 몰고 왔다.
정무팀 보고서 작성 … 결과는 실망
물론 보고서 작성 작업은 극도의 보안 속에서 이뤄졌다. 이런 사실이 밖으로 새나갔을 경우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검찰 수사가 청와대의 ‘기획’에 의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무팀이 ‘마니 폴리테’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검찰 수사로 전 정권 및 현 정권의 권력 핵심 관계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었던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무팀이 특히 관심을 가진 대목은 ‘마니 폴리테’ 이후 이탈리아 상황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무팀으로서는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마니 폴리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정치가 출현했다는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 정무팀 관계자는 “보수세력과 재벌의 연합정권이라는 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정권이 탄생한 것도 ‘마니 폴리테’의 영향으로 분석돼 허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정무수석실은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검찰 수사가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최 전 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의혹은 노대통령의 ‘재신임 의사 표명’의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검찰 수사가 정말 이탈리아의 ‘마니 폴리테’와 비견될 수 있을 정도인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현재의 정치권 수사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대중 정권 시절의 검찰 수사와 ‘다르다’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다르다’는 반드시 ‘보다 잘한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현재 검찰 수사가 김대중 정권 시절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현 정권 실세가 연루된 사건 수사에서도 ‘축소 은폐’ 의혹이 일고 있지 않기 때문. 특히 송광수 검찰총장과 전국의 특수수사를 총지휘하는 안대희 대검 중앙수사부장(이하 중수부장)의 ‘성역 없는 수사’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통합신당 이상수 의원과 최 전 비서관에 대해 소환을 통보하는 등 SK 비자금 사건을 정면돌파하려는 검찰 수뇌부의 의지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손을 대려고 하기 때문. 잘 알려진 대로 노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후배인 최 전 비서관은 1984년 노무현 변호사의 사무장으로 노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이후 20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노대통령을 보좌해온 인물. 이의원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자금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사 가운데 한 사람.
최돈웅, 이상수,안상영,안희정,한광옥(왼쪽부터)
“기자들 휴대전화 조회 검찰권 남용”
김대중 정권에서 검찰총장을 역임한 한 인사는 “특수수사는 원래 큰 줄기만 치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안부장은 끝장을 보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검찰 안팎에서 현재의 특수수사를 과거와 구별해서 ‘신특수’라고 한다는데,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것.
정치권에서는 또 안부장의 ‘언론 플레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안부장 자신이 관련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정치인 관련 수사정보를 흘려 이를 일거에 잠재운다는 의심이다. 특히 10월7일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과 이의원, 최 전 비서관 등에 대한 소환 통보 사실을 밝힐 때와 8월11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긴급체포할 때의 상황이 너무나 비슷하다고 입을 모은다.
10월7일은 검찰의 ‘탈법적인’ 취재원 색출 문제가 불거져 파문이 확대되고 있던 때였다. 전날 ‘한겨레신문’ 보도를 통해 이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 처음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은 “자체 기강 확립 차원에서 직원 휴대전화 내역은 봤으나 기자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은 조회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대검이 출입기자의 휴대전화 착·발신 명세를 조회한 것으로 확인돼 비난이 일었다.
법조계에서는 “이는 검찰권 남용이며 언론자유의 제한 또는 사생활 침해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수사기관의 통화기록 조회는 ‘범죄 수사상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0월8일자 모든 조간신문에는 최의원 등 3명에 대한 소환 통보 사실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이에 따라 대검의 ‘탈법적인’ 취재원 색출 문제도 여론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8월11일 권노갑 전 고문을 현대 비자금 수수 혐의로 긴급체포할 때도 대검 중수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었다. 이날 오전 국회 법사위에서 고 정몽헌 회장에 대한 강압수사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 당연히 민주당에서는 “검찰이 강압수사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권 전 고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안상영 부산시장 수뢰 의혹 사건을 대검에서 부산지검으로 이첩한 것도 뒷말을 낳았다. 안시장은 2001년 5, 6월경 부산고속버스터미널 이전 사업 등과 관련, 행정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J기업 박모 회장으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대검은 안시장의 수뢰 의혹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물증과 진술을 확보해놓고도 갑자기 이 사건을 부산지검으로 이첩했다.
이와 관련, 검찰 안팎에서는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사전조치 아니었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의원 등이 SK 비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마당에 대검이 안시장 수뢰 의혹 사건을 계속 맡게 되면 여야 형평성을 고려해 각각 2명씩 형식상 짜맞추기한 것 아니냐는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의원은 영수증 처리를 적법하게 하지 않은 점만 문제 되고 있는 반면 최의원의 경우 “죄질이 다르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의원은 기껏 정치자금법 위반이 되지만 최의원의 경우 특정범죄 가중 처벌법상 알선수재죄에 해당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이의원은 “SK측으로부터 대선 자금을 받기는 했지만 모두 영수증 처리를 했다”는 입장인 반면 최의원은 “SK측으로부터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들은 “검찰 수사에 흠집내려는 정치권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서울지검 한 간부는 “한때 집권당 대표였던 민주당 정대철 의원에 대해 ‘굿모닝게이트’ 연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까지 발부한 상황이기 때문에 검찰이 정치권 전체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현재 검찰은 정치권 흠집내기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적어도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 사건 재수사와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사건과 현대 비자금, SK 비자금 사건 등의 수사를 통해 검찰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각종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축소 수사’ 의혹이 제기됐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검찰의 이런 수사 의지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선고는 검찰에겐 또 다른 부담이다. 검찰이 의욕적으로 수사해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를 구속했던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 사건의 경우 법원이 9월8일 한 전 대표에 대해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한 전 대표가 나라종금측으로부터 받은 1억1000만원 가운데 8000만원을 정치자금으로 판단했기 때문. 당장 한 전 대표측에서는 “검찰이 여론을 의식,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물론 한 전 대표에 대한 판결은 1심의 판단에 불과하다. 2심에서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검찰 수사로 기소된 인사들에 대한 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현재의 검찰 수사에 대한 판단도 이들 사건에 대한 재판이 끝난 이후로 미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