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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에 ‘民生’은 없다

  • 조승현 / 방송대 교수·법학

국정감사에 ‘民生’은 없다

국정감사에 ‘民生’은 없다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을 계기로 부활된 국정감사(이하 국감)는 이후 국민들에게 속 시원한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이벤트였고, 이를 통해 많은 스타급 국회의원이 배출되는 스타의 등용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국감을 보고 있노라면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국회 본청에서 진행되는 상임위원회의 경우 교섭단체당 한두 명만이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허다하고, 위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찾을 길이 없다.

위원들의 질의 횟수나 강도도 예년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그 내용도 수준 이하인 경우가 많다. 국감에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이 오히려 국회의원을 질타하고 국회의원에게 삿대질까지 하는 장면에 이르면 웃어야 할지, 통탄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총선 승리 위한 선전의 장 … 당리당략 판쳐

당동벌이(黨同伐異)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후한서 당동전(黨同傳)에 나오는 말로, 국민의 복지와 국익에 대한 생각은 간데없고 당리당략만을 중시해 대세를 그르치는 것을 지적한 말이다. 국감에 임하는 각 정당의 목표는 하나로 모아져 있다.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가 그것이다. 그 목표를 위해서 각 정당 소속의원들은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한나라당은 대통령 흠집내기를 통한 반사이익으로, 민주당과 자민련은 신지역주의로, 통합신당은 내용 없는 개혁 이미지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려 한다는 게 관전자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국감은 오로지 그 목표를 위한 선전의 장일 뿐이다.

한반도 전쟁위기, 경제위기, 교육문제, 농촌 해체, 에너지 문제 등 정말 민생과 관련한 사안은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대안도 없으며, 열심히 공부하고 떠들어봐야 득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온 듯하다. 앞장서 정책 대안을 내놓기보다 정부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가 꼬투리를 잡겠다는 태세다.

격앙된 목소리로 질문을 퍼붓지만, 그게 말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나중 문제인 듯하다. 아예 국감장을 나서 어디론가 가버린 의원들도 많았다. 언론도 이를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여당임을 자임한 통합신당은 심정적 여당이지만 여당으로서의 제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국민들에게 정치개혁 주도세력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여당에서 야당으로 자리바꿈한 민주당은 정체성 혼란을 겪는 듯하다. 며칠 전까지 내세웠던 당론마저 뒤집어가며 정부 정책에 시비를 걸고 있다. 집안도 수습 하고 지역당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장도 해야 하니 얼마나 바쁘겠는가!

민주당은 그렇다 치고 한나라당은 어떤가? 권력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명분으로 국정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대통령 친·인척들의 사사로운 거래에 시시콜콜 매달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법원에서 불법으로 판단한 안기부 예산 전용 혐의와 같은 국기문란 사건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허탈한 국감에도 충실하고 우수한 의원들도 있었다. 현안에 대해 따져 묻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건만 언론이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아 모를 뿐 적지 않은 의원들이 국감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산학협동연구시스템의 문제, 기상이변에 대한 대책,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전략문제를 지적한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김영춘·오영식 의원, 보건정책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지적한 보건복지위원회의 김홍신 의원 등이 가뭄의 단비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2003년 국감은 증인들이 국회의원에게 삿대질하며 나무랄 정도로 형편없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듯하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란 말이 있다. 여씨춘추에 나오는 말로 시세의 변천도 모르고 낡은 생각만 고집하며 이를 고치지 않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말이다.

아직도 우리 정당들은 지역주의와 하향식 공천, 그리고 당대표나 실세의 전권에 휘둘리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당론이 잘못됐다고 해도 이를 지적하기가 쉽지 않다. 다수 의원들은 눈치만 볼 뿐, 소수가 당을 쥐락펴락한다. 그곳엔 국익이 아닌 사리사욕만이 있을 뿐이다. 당리당략에 충실한 국감으로 내년 총선에서 이길 것이라 생각할 테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음을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405호 (p100~100)

조승현 / 방송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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