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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피맛골의 위기

‘전통의 거리’ 600년 삶 끝나려나

재개발 사업으로 현대식 건물에 자리 내줄 판 … 숱한 서민의 명소 모두 사라질 듯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전통의 거리’ 600년 삶 끝나려나

‘전통의 거리’ 600년 삶 끝나려나

서울 종로구 청진동 피맛골

최영민씨(64·서울 영등포구 신길동)는 매일 아침 피맛골로 ‘출근’한다. ‘함흥집’ 생선구이의 비릿한 맛이 그리워서다. 최씨가 나고 자란 곳은 서울 종로구 청진동. 피맛골이 고향인 셈이다. 최씨의 둘도 없는 친구인 함흥집 주인 김용조씨(62)는 피맛골에서 40여년 동안 고등어를 구워왔다. 김씨의 고향집은 종로구 운니동. 비쭉비쭉 들어선 고층건물이 집터를 빼앗은 지 오래지만 작고한 어머니 대신 고향에 남아 숯 냄새를 맡고 있다는 사실이 늘 고맙고 또 즐겁단다. 가회동에서 태어난 기자가 “고향이 종로”라고 소개하니 최씨와 김씨는 서울토박이 3명이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며 소리내 웃는다.

“매일 겸심(점심의 서울 사투리)은 여기 와서 먹어.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은 비웃겠지만 우리처럼 고향이 눈에 밟히는 사람들도 없을 거야. 교보문고가 들어선 자리에 샘물이 있었거든. 물맛이 지금도 입에 아른거리네그려.”(최영민씨)

주인 김씨가 1960년대부터 스크랩한 신문을 꺼내왔다. 40년 넘게 피맛골을 다룬 신문기사를 꼼꼼히 모아둔 것이다. 신문 쪼가리를 넘기며 피맛골에 얽힌 옛얘기를 늘어놓던 김씨가 느닷없이 한숨을 길게 내쉰다.

“동네 꼴을 보면 개발을 하기는 해야 되는데….”

김씨가 재개발 얘기를 꺼내자 최씨는 얼굴을 붉히며 30년 지기의 말을 가로막았다. 피맛골 땅을 사들인 재벌기업이 피맛골 집들을 헐어내고 첨단 오피스텔을 짓는다는 게 크게 못마땅한 눈치다.



“예끼! 개발은 무슨. 청계천은 되살리면서 청진동은 죽인다는 게 말이 되나. 화려한 곳이 있으면 옛 냄새가 가득한 곳도 있어야지. 나 같은 서울 사람은 피맛골이 사라지면 추석 명절에 갈 곳도 없다고. 그나마 지금까지 살아남아 옛 서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피맛골인데….”

# 아니꼬워 피해 갔던 길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종로는 ‘서울 1번지’라 불려왔다. 그 1번지 뒷골목이 바로 피맛골. 고층건물들에 제 살을 떼어주면서도 아직까지 살아남아 교보문고 앞에서부터 종로6가까지 끊기고 다시 이어지며 역사와 전통을 현재화하고 있는 거리가 피맛골이다. 옛 내음 가득한 양푼에 음식을 꾹꾹 눌러 담아주는 오래된 식당, 문인과 예술가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카페, 얄팍한 지갑이 부담스럽지 않은 고갈빗집…. 피맛골엔 수십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 1번지 명소들이 켜켜이 들어서 있다.

‘전통의 거리’ 600년 삶 끝나려나

1899년 종로와 피맛골(왼쪽).“피맛골을 제발 살려주세요” 1인 시위에 나선 이범진 할아버지(70).

피맛골이란 이름의 유래는 ‘피해 가는 길’이라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비롯된다.

“쉬이~ 물렀거라. 대사헌 영감 행차시다.”

조선의 종로는 민중들이 쉽게 오갈 수 없는 번거롭고 자존심 상하는 길이었다. 벼슬아치들이 말이나 교자를 타고 거드름을 피우며 종로통에 ‘행차’하면 민초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고관대작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양반네들의 거드름이 아니꼬웠던 평민들은 대로 대신 겨우 말 한 필이 지날 수 있는 좁디 좁은 ‘피맛길’을 선택했고, 그렇게 피맛길은 힘없고 헐벗은 민초들의 애환을 품에 안으며 수백년을 이어져왔다.

# 비릿한 젓국 냄새

8월28일 교보문고 앞. 햄버거 가게 오른쪽으로 난 작은 골목길에서 퍼져나온 비릿한 젓국 냄새가 오가는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그나마 옛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는 종로1, 2가 피맛골 입구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열차집. 한국전쟁 직후 문을 열어 지금까지 장사를 해오고 있다. 열차집 주인장 윤해숭씨(65)는 녹두를 갈아 만든 반죽을 돼지기름으로 부쳐내는 빈대떡이 일품이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열차집에서 시작해 ‘불판’으로 유명한 ‘서린낙지’까지 이어지는 첫번째 골목엔 버석버석한 생선구이가 일품인 ‘대림’, 종로토박이 김용조씨가 2대째 잇고 있는 ‘함흥집’, 족발을 파는 ‘삼성집’이 터를 잡고 있다.

‘전통의 거리’ 600년 삶 끝나려나

‘손맛’ 하나로 서울 제일의 지리를 내온 ‘부산뽈때기’ 최순자 할머니.

낙지에 밥을 볶아 내오는 ‘조방낙지’가 두 번째 골목의 첫 집. 부산 조선방직 공장 근처에 있던 조방낙지의 종로 분점격인 ‘조방낙지’는 올해로 서울에 진출한 지 19년째다. 이 집은 맵지 않은 낙지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귀남씨가 운영하는 예술인·문인들의 집합소 ‘시인통신(詩人通信)’을 지나면 세 번째 골목을 만난다.

세 번째 골목에선 54년 전통의 중국요릿집 ‘신승관’이 행인을 맞는다. 복탕수육에 이가도주를 걸치고 나왔다는 80대 어르신은 40년 단골집이라고 신승관을 소개했다.

넷째 골목은 조금 멀다. 삐딱하게 서 오만하게 종로를 내려보는 삼성타워 옆 종로통을 거쳐가야 한다. 피맛골을 빠져나와 종로통을 걷는 것은 고역이다.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피맛골에선 오가는 사람이 부딪치면 친구가 된다 한다. 그러나 종로통에서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라도 닿을라치면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게 인지상정.

인사동에서 시작되는 네 번째 골목 ‘서 피맛골’은 젊은이들의 해방구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공짜 고갈비 안주에 1000원짜리 막걸리를 팔던 집들이 즐비했으나 언제부턴가 학사주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대학생 민도성군(19)은 “옛날 냄새가 흠씬 풍기는 피맛골이 좋다”고 했다. 피맛골의 유래를 묻자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다. “취하고 깨고 취하고 깨다가 ‘피맛’ 날 때까지 술 마시는 곳 아닌가요?”

남아 있는 마지막 옛길은 단성사 맞은편에서 시작되는 다섯 번째 골목 ‘동 피맛골’. ‘동 피맛골’엔 감자탕집 아굿집 고갈비를 파는 서민식당이 똬리를 틀고 있다.

# 할아버지의 눈물 “피맛골을 제발…”

신작로와 새로 들어선 고층건물 탓에 누더기가 된 피맛골 다섯 골목 중 그나마 옛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은 첫번째 골목부터 세 번째 골목까지다. 최영민씨의 고향 청진동이 바로 그 골목들을 품고 있다. 최씨가 개발이 필요하다는 30년 친구의 말에 분통을 터뜨린 것은 피맛골 한가운데에 대형 오피스텔이 건설된다는 얘기를 듣고 기가 차서다. 개발도 좋지만 서울의 옛모습을 조금은 남겨둬야 한다는 게 최씨의 생각이다.

“내가 토박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높은 빌딩은 다른 곳에 가도 볼 수 있지만 피맛골을 다른 곳에 만들 수는 없잖아. 높은 건물을 짓고 싶은 사람들은 강남이나 여의도로 가라 그래.”

피맛골이 최씨의 고향이라면 ‘부산뽈때기’ 최순자 할머니(63)에게 피맛골은 삶 그 자체다. 7월31일까지 가게를 비워달라는 명도장을 받은 최할머니는 나무탁자 가득히 뚝배기를 펼쳐놓고 대구를 다듬고 있었다.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손맛’ 하나로 장안 제일의 ‘지리’를 내온 최할머니는 ‘눈에 흙이 들어와도’ 1번지를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장사를 못해도 좋으니 종로에서 계속 살게만 해달라”는 게 최할머니의 애원이다.

“1번지가 조타 케서 종로에 왔는데 이젠 1번지가 더럽다고 나가라니 젊은이도 생각해 보그래이. 그런 세상이 어디 있노. 내는 죽으면 죽었지 1번지는 못 떠난데이. 1번지가 없으면 서울도 없는 기라.”

최할머니 가게에 이웃한 한정식집 ‘한정’의 이범진 할아버지(70)는 피맛골 입구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할아버지는 철거 용역 깡패가 들어오면 맨 앞에 서서 막을 거란다. 그는 젊은 친구들이 나서면 흠씬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며 “설마 노인네를 건드리겠느냐”고 했다. 지주가 땅을 팔면서 권리금까지 가로채 피맛골 세입자들 중에서도 특히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이 할아버지의 아들 영종씨는 “노인네가 ‘투쟁’이라고 씌어진 조끼를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했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아버지의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국물 맛이나 보고 가라”며 다시 찾아오라 했던 ‘부산뽈때기’ 최순자 할머니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 우리를 쫓아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부산뽈때기’ ‘한정’ ‘시인통신’ ‘조방낙지’ ‘성영사’ ‘이강순실비집’ 등이 자리잡고 있는 피맛골 두 번째 골목엔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의 초현대식 건물이 세워질 예정이다. ㈜르메이에르가 기존 상가 및 주택을 헐어내고 올리는 건물엔 상가와 스포츠센터 오피스텔이 들어설 거란다. 세입자 관리를 맡고 있는 GF산업개발측은 “땅을 구입한 뒤 세입자들에게 월세를 조금만 받아왔기 때문에 보상은 완전히 끝났다”며 “세입자들을 내보내는 대로 공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르메이에르의 ‘배후’엔 국내 굴지의 대기업 현대자동차가 있다. 사실 청진동 부지는 현대자동차가 사옥을 건립하기 위해 6년 전부터 꾸준히 땅을 매입해온 곳이다. 2000년 ‘왕자의 난’을 거치고 양재동 사옥을 마련하는 등 상황이 바뀌면서 현대자동차가 김모씨 등을 내세워 1926억원을 들여 땅을 매입했고, 이들이 사실상 현대차를 ‘대신해’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 등이 시행사로 내세운 ㈜르메이에르는 지난 정권 시절 ‘느닷없이’ 주목받기 시작한 회사다.

자본의 논리와 재개발 수익으로는 다시 채울 수 없는, 수백년 동안 피맛골에 켜켜이 새겨진 삶의 희로애락을 우리는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한쪽에선 개발시대의 과오를 바로잡는다며 청계천 복원 사업이 이뤄지고, 다른 한쪽에선 재개발 수익을 노린 대기업이 한입에 ‘600년 문화’를 집어삼키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현재 피맛골에선 단골인 문인·예술인을 중심으로 재개발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세입자들도 대책위를 구성해 피맛골을 보존키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피맛골을 제발 살려달라”는 상인과 문인·예술인들의 호소는 수천억원으로 무장한 ‘숨은 대기업’에 비해 너무나도 약해 보인다.

‘전통의 거리’ 600년 삶 끝나려나




주간동아 401호 (p66~68)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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