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누가 켈리 박사를 죽음으로 몰았나

뉴스 제보자로 지목한 인물 찾기에 국민 관심 고조 … 블레어 총리 등 3명 용의선상 올라

  • 파리=박제균 특파원 phark@donga.com

누가 켈리 박사를 죽음으로 몰았나

지금 영국에서는 국방부 자문역이었던 데이비드 켈리 박사(59)를 죽인 ‘살인자’를 찾는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켈리 박사는 영국 정부가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보유 의혹을 과장했다고 보도한 BBC 방송의 취재원으로 지목됐던 인물. 그는 2003년 7월15일 하원 외교위원회에 출두해 BBC와의 접촉 경위 등을 추궁당한 뒤 17일 잠적했다가 다음날 변사체로 발견됐다. 1991에서 98년까지 이라크 무기 사찰단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생물학무기 추적에 관한 한 세계적인 전문가였다.

영국 경찰이 19일 밝힌 그의 사인은 자살. 경찰은 런던 서부지역에서 발견된 켈리 박사의 사체 주변에서 칼 한 자루와 진통제 코프락시몰을 찾아냈다. 경찰 관계자는 “켈리 박사의 사인은 왼쪽 손목 상처로 인한 과다 출혈”이라며 “그가 흉기(칼)로 손목을 그은 것 같다”고 말했다. 코프락시몰은 과다 복용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진통제다.

그의 사망은 영국 정가를 강타했다. 무엇보다 이라크 전쟁 승리에 들떠 미국과 아시아로 ‘화려한 외출’에 나선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치명타를 날렸다. 17일 미국을 방문한 블레어 총리는 영국 지도자로는 75년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이후 처음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했다. 또 윈스턴 처칠 이후 처음 미국 의회가 수여하는 ‘의회 금메달’도 받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푸들’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면서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데 대한 미국의 보답이다.

청문회 참석 … 충격 그리고 자살

의기양양해진 블레어가 켈리 박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그 순간 블레어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블레어 총리가 사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블레어와 동행한 영국 기자들은 18일 일본 하코네에서 열린 영-일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신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느냐” “켈리 박사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임할 생각은 없느냐”고 몰아붙였다. 화가 난 블레어는 할 말을 잃은 채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다음날 블레어 총리와 같은 노동당 소속 글랜다 잭슨 의원은 “켈리 박사 사망사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 정부가 감당하기 어렵다. 블레어 총리는 중대 결심을 하고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블레어의 사임을 촉구했다.

국방부 자문역 한 사람의 사망, 그것도 자살에 의한 사망이 왜 총리의 사임까지 거론할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가. 시계를 지난해 9월로 돌려보자.

당시 미국과 함께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던 영국 정부는 이라크 WMD 정보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이라크가 45분 이내에 생화학무기를 실전 배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올 5월 BBC 라디오는 이 대목이 조작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블레어의 핵심 측근인 앨러스테어 캠벨 공보수석 보좌관이 이 내용을 삽입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캠벨 보좌관은 블레어 총리의 ‘스핀 닥터(Spin Doctor)’로 유명한 인물이다. ‘스핀 닥터’란 정보를 비틀어 교묘하게 언론 플레이를 하는 ‘스핀’의 대가를 말한다.

그때부터 블레어 정부와 BBC 방송의 ‘전쟁’이 시작됐다. 캠벨 보좌관을 비롯한 블레어 정부 수뇌부는 BBC 방송의 보도가 오보라고 주장했고, BBC는 국방부 출입기자인 앤드루 길리건이 사실에 입각해 보도했다고 맞섰다. 길리건 기자는 보도에서 자신의 취재원을 ‘익명의 정부 관계자’라고 밝혔다.

결국 국방부는 그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찾아냈다. 그가 바로 켈리 박사. 켈리 박사는 국방부에 떠밀려 7월15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내가 길리건 기자와 접촉한 것은 사실이나 나는 그 보도의 취재원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으로 곤경에 처한 쪽은 길리건 기자와 BBC. 길리건 기자는 7월17일 같은 청문회에 불려 나와 모진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반전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바로 켈리의 심리상태다. 켈리 박사는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자신을 ‘쓰레기(chaff)’나 정부의 ‘희생양(fall guy)’으로 묘사하는 데 대해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켈리 박사의 아내인 제니스는 그가 자살한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청문회 때문에 매우 분노했으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켈리의 자살로 상황은 뒤바뀌었다. 영국 내에서 켈리 박사 동정론이 일면서 블레어 정부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게 아니냐는 정부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셌다. 켈리 박사 사망 직후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의 54~59%가 블레어의 총리직 수행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으며, 35% 가량은 그가 사임해야 한다고 답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영국 파운드화가 0.5%나 출렁거렸다. 그때부터 논란의 초점은 누가 켈리 박사를 취재원으로 지목하고, 청문회에까지 나가도록 했느냐로 바뀌었다. 그가 바로 켈리를 죽음으로 몰아간 살인자가 되는 셈.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7월21일 제프 훈 국방장관이 켈리 박사를 공개하는 전략을 직접 승인했으며, 이 과정에서 국방부와 총리실이 수차례 대책을 숙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22일 성명을 내고 “국방부 자문역이었던 켈리 박사가 먼저 관련 부서에 자신이 취재원이라고 실토해 훈 장관이 개입하게 됐다”며 발을 뺐다.

특별조사단 발족 진상 규명 나서

누가 켈리 박사를 죽음으로 몰았나
같은 날 ‘인디펜던트’지는 국방부 소식통을 인용, 국방부로 하여금 켈리 박사의 신원을 밝히도록 한 곳은 총리실이라고 보도했다. 국방부와 총리실 사이에 ‘떠넘기기’가 시작된 것이다. 총리실의 캠벨 보좌관측도 즉각 “국방부에서 알아서 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급기야 블레어 총리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중국을 방문중이던 블레어 총리는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켈리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누가 그랬을까?

우선은 훈 장관, 캠벨 보좌관, 블레어 총리 세 사람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영국 내에서는 셋 중의 두 사람, 아니면 세 사람의 공모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진실 규명 여부는 브라이언 허튼 판사가 지휘할 특별조사단의 손에 달려 있다.

켈리 박사의 자살로 곤경에서 벗어난 BBC 역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BBC는 당초 길리건 기자의 보도는 사실과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켈리 박사가 자살한 이후 길리건의 보도가 다소 과장됐다고 시인하며 그에게 퇴사를 권고했다.

정치와 언론의 뒤틀린 관계가 켈리 박사의 자살을 불러왔다는 자성론도 나온다. 영국 언론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정치인에 대한 공격이 극심해졌고, 반대로 정치인 쪽에서는 ‘스핀’을 보호막으로 내세워왔다는 것. 영국 정치의 정점인 블레어 총리부터가 ‘스핀의 귀재’로 통한다. 일간지 가디언은 “켈리 박사의 사망은 물어뜯는 언론과 스핀하는 정치가 빚어낸 참극”이라고 개탄했다.



주간동아 396호 (p54~55)

파리=박제균 특파원 phark@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324

제 1324호

2022.01.21

‘30%대 박스권’ 이재명, 당선 안정권 가능할까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