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4

2003.07.24

천연물로 질병 잡기 … 25년 세월 ‘올인’

여성과학계의 대모 김영중 교수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07-18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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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물로 질병 잡기 … 25년 세월 ‘올인’
    ”어렵고 힘든 일은 여성임을 내세워 기피하고 쉽고 편한 일만 하려 한다면 누가 같이 일하고 싶겠습니까.”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웅비장(2001년), 과학기술부 여성과학자상(2002년), 로레알 여성생명과학상(2003년) 등 최근 몇 년간 여성 과학자에게 주는 최고 영예의 상을 모두 휩쓴 서울대 약학과 김영중 교수(57). ‘한국 여성 과학계의 대모’라는 별칭답게 그는 외모에서부터 강단과 위엄이 넘쳐 보였다. 왜소해 보이는 체구의 어디에서 그런 열정과 힘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과학계의 왜곡된 현실과 여성 문제를 이야기하는 3시간여 동안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한 번도 잦아들지 않았다.

    간장 질환 치료물질 발견 등 상당한 성과

    많은 약대 동기생들이 약사 생활을 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동안 그는 연구실을 지키며 질병 퇴치를 위해 한평생을 보냈다. “밥 안 굶고 연구할 수만 있으면 됐지, 무엇이 더 필요하냐”며 미소 짓는 김교수. 그가 국내 과학계, 특히 천연물 연구와 관련해 이뤄놓은 성과는 그 무엇과 견주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1919년에 개발돼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하루 1억 알이 소비되는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이 주원료고, 항암제 탁솔은 주목나무 껍질에서 추출된 천연물입니다. 흔해빠진 은행나무 잎이 세계적인 혈액순환제의 원료가 되는 등 유명한 의약품들의 주원료는 대부분이 천연물이죠. 80년대 이후 개발된 항암제 중 약 60%가 식물자원에서 추출한 천연물이 주성분인 반면 합성의약품들은 부작용이 많아 사용률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과학계가 김교수의 업적에 주목하는 것은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25년 전 이미 그가 천연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는 점과 끈질긴 연구 끝에 국내 자생식물자원에서 신의약품 개발에 도움이 되는 후보 물질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 때문. 그는 지난해 40대 남성 사망 원인 1위인 간장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천연물질을 발견한 데 이어 올 2월에는 치매, 뇌졸중, 간질 등의 원인이 되는 뇌신경세포의 사멸을 억제하는 생약 복합조성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뜻밖의 사실은 김교수의 천연물 연구에 단초를 제공한 것이 바로 ‘한약’이라는 점.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의사와 약사가 ‘비과학적’이라고 외면한 한약이 김교수의 눈에는 천연물의 보고(寶庫)로 보였다.

    “먼저 고문헌부터 뒤졌죠. 어떤 약초를 달여 먹고 환자의 병세가 호전됐다면 분명 그 약초에 함유된 특정 천연물이 인체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자의 몫은 식물자원에서 특정 천연물을 추출해 그 천연물의 존재(화학구조)와 작용기전을 밝혀내는 것이죠. 그동안 비기(秘技)로만 여겨졌던 것을 실제 과학으로 증명해 보이는 작업입니다. 세계 유수 제약회사들은 이런 연구에 매년 10억 달러(1조2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만큼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약초를 캐는 것부터 천연물을 추출해 화학구조와 작용기전을 밝히는 모든 과정을 김교수는 혼자 진행했다. 이런 연구는 보통 3~4개 학과 전공자가 함께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게 사실. 그런데 김교수는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석사학위는 생화학으로(미 인디애나대), 박사학위는 영양과학(미 일리노이대)으로 받고 1978년 서울대 약대 교수(생약 전공)에 보임됐다. 천연물 연구에 필요한 기본조건을 모두 갖춘 셈.

    천연물로 질병 잡기 … 25년 세월 ‘올인’

    후학들에게 천연물 분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영중 교수(앞줄 가운데).

    교수로 부임한 뒤에도 5년 동안 남편을 국내에 남겨두고 방학 때마다 생명공학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당시 미국 왕복 항공료는 260만원(대기업 초임 45만원). 가계에 엄청난 부담이 됐지만 그는 무급으로 연구소 일을 도우며 방학 때마다 미국행에 나섰다. 한 학기 중 넉 달은 교수 생활을 하고 나머지 두 달은 연구원 생활을 하는 이중생활이 계속됐다.

    “그 당시 국내에는 세포배양 기술 등 세포생물학이나 분자생물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전무했고 미국 일부 대학에서만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죠. 보통 천연물의 경우 한 개체에서 극미량밖에 추출되지 않기 때문에 작용기전을 알기 위한 동물실험이 불가능했습니다. 세포에 질병유발물질이나 독성물질을 투입해 배양하고, 거기에 극미량의 천연물을 투여해 경과를 알아보는 첨단생명공학 기술(BT)이 절실히 필요했던 거죠.” 그는 말 그대로 ‘악착같이’ 배워서 첨단생명과학 기술인 BT를 천연물 연구에 접목했다. 이로써 국내 자생식물로부터 기능성 의약품의 소재를 개발하거나 신의약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론이 완성된 셈. 그의 신기술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알려졌다. 최근 3년 동안 이와 관련해 국제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김교수의 논문만 40여편에 달하고,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미국국립보건원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다.

    1만평의 약초원도 조성 ‘연구 박차’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난관도 적지 않았다. “미국에서 공부는 마쳤지만 국내에 관련 연구자재나 시설이 전혀 없어 연구시약을 비롯해 플라스틱 비커 하나까지 모두 가방에 담아왔는데, 내 신분과 물품 사용처를 밝혔는 데도 세관원이 무균시약 뚜껑을 여는 바람에 끝내 모두 버린 적도 있었죠. 통사정을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공항 바닥에 주저앉아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김교수는 이런 해프닝에 대해 “남성 중심의 나라에 똑똑한 여자로 태어난 비애”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똑똑한 여자’로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식물자원이 미래 고부가가치산업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1996년 경기 고양시에 1만평의 약초원을 조성하고 식물추출물, 천연화합물은행도 함께 설립했다. 현재 약초원에는 국내 자생 약용식물 700여종이 자라고 있으며 천연화합물은행에는 국내 자생식물에서 뽑아낸 순수화합물 200여종이 확보돼 있다.

    1만평 규모의 약초원을 조성하는 일 역시 쓸모없는 국유지를 찾아다니고 사유지를 국유지와 바꾸는 등 땅을 확보하는 일부터 공사, 예산 확보, 약초 심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김교수의 손을 거쳤다. 그래서 약초원에 대한 김교수의 애정은 남다르다.

    “방학 때 미국에 나갈 때는 ‘바람났다’는 소리를 듣고, 약초원 조성할 때는 ‘복부인’이라는 말을 들었죠. 이 모두 왜곡된 여성관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아냥거림’에 무너졌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겠죠. 인생은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나는 것 아닙니까.”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라.’ 한 여성 과학도가 국제적인 과학자로 우뚝 서기까지 등대 역할을 해줬던 좌우명은 바로 ‘겸손’이다.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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