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7

2003.06.05

사람을 진정 그리워하고 싶다

  • 정찬주 / 소설가

    입력2003-05-29 1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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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진정 그리워하고 싶다
    오랜만에 여행하고 돌아와 산중 처소를 둘러보고 있다. 쟁기질한 밭에 뿌린 씨앗들을 맨 먼저 점검해본다. 씨앗에서 싹이 트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도 가슴을 졸이게 한다. 콩은 드문드문 힘겹게 싹을 틔우고 있고, 들깨 싹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나 없는 사이에 새들이 날아와 크게 회식을 한 듯하다. 그러나 새들이 그리 밉지는 않다. 지난번에 뿌리고 남은 들깨 씨가 있으니까. 창고에는 농협에서 산 비료 일곱 포대가 별일 없다는 듯 포개져 있다.

    여행은 때로 나를 비춰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산중에 묻혀 있다 보면 나라는 존재를 잊게 되는데, 여행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 자리한 남국선원이라는 절이다. 그곳 선원의 선원장 혜국 스님을 뵙고 돌아왔다.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는 수행자의 모습을 보면 양서 몇 권을 읽은 것보다 울림이 더 오래간다.

    그리움에 목마른 사람만이 ‘생명 경외감’ 깊어

    스님이 그곳에 선방을 짓게 된 것은 성철 스님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스님은 절터를 잡으려고 제주도 일주도로를 돌다가 서귀포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한라산 중턱에 눈길을 멈추었다. 그곳은 팔려고 내놓은 지 2년이 된 목장이었다. 스님은 주인이 달라는 값보다 더 주고 그 땅을 샀다. 절이 들어설 땅이므로 소중하게 인연을 맺고 싶어서였다.

    그곳 선방은 안거(安居)가 있는 선방과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무문관(無門關) 선방으로 나뉜다. 무문관 선방에는 하루 한 끼만 출입구를 통해 들여보낸다. 들여보낸 식기가 나오지 않으면 삼매에 들었거나 육신에 이상이 생겼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한다.



    치열한 무문관 선방도 새소리와 꽃향기는 막을 수 없나보다. 새소리를 들으며, 혹은 꽃향기를 맡으며 가는 세월을 짐작한다고 하니 말이다. 머슴새가 삐이삐이 울면 1월이고, 밀화부리와 꾀꼬리가 울면 5월이란다. 목련꽃은 4월에, 찔레꽃은 5월에 향기를 보낸다. 무문관 독방에 ‘갇혀’ 있다 보면 무엇보다도 사람이 가장 그리우리라.

    깨치지 못하여 불(佛)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체험하는 일만으로도 무문관 수행은 덜 여문 정신을 크게 성숙시키지 않을까 싶다. 혜국 스님이 들려주었던 태백산 도솔암의 장좌불와 고행은 내 산중 처소에서의 가벼운 삶을 부끄럽게 한다. 장좌불와란 눕지 않고 정진하는 고행을 말한다. 스님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람의 그림자를 볼까 말까 한 깊은 산중의 도솔암에서 무려 2년7개월 동안 장좌불와 수행을 했다고 한다. 그 기간에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끝없이 밀려드는 잠과 사람에 대한 무한대의 그리움이었다고.

    스님이 들려준 멧돼지 얘기가 가슴을 적셨다. 하루는 먹을 콩과 바꾸려고 약초를 캐어 산길을 내려가는데 멧돼지가 쇠줄로 된 덫에 걸려 있더라는 것. 그래서 암자로 다시 올라가 도끼를 가져와 쇠줄을 끊어 살려주었다. 그 뒤 어느 날 산길에서 멧돼지 무리와 맞닥뜨려, 이제 죽었구나 싶어 삿갓을 벗어던지고 눈을 감으려는 순간 지난날 구해준 멧돼지가 무리를 이끌고 산 위로 뛰어가는 바람에 살았다고 한다.

    다람쥐 이야기도 잊혀지지 않는다. 다람쥐가 양배추를 야금야금 먹어치워 양배추 밭 주위에 그물을 쳐두었는데도 다람쥐가 들어와 스님을 실망시켰다. 그래서 스님은 다람쥐 세 마리를 잡아 목과 머리에 먹물을 칠하고는 영주장을 보러 가는 길에 바랑에 넣고 데리고 가다 암자에서 100리쯤 떨어진 춘양에서 놓아주었다.

    그런데 장을 보고 암자에 들어서는데 머리에 먹물이 찍힌 다람쥐들이 스님을 반기더라는 것. 스님은 다람쥐에게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사과하고 이후 암자에서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리움에 목이 타본 이만이 생명을 소중하게 여길 것 같다. 말 못하는 다람쥐에게 사과할 만큼 생명에 대한 경외가 깊을 것 같다. 산중에 살면서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내 산중 처소를 단 몇 달만이라도 무문관 선방으로 정해 수행하고 싶다. 나는 괴팍해지는 것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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