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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세운 여행 계획인데…”

인터넷 여행사기 기승 피해자 속출 … 동일 수법 반복 속수무책, 보상도 미비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어떻게 세운 여행 계획인데…”

“어떻게 세운 여행 계획인데…”

여행객들을 울리는 인터넷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휴가철 여행객으로 붐비는 인천공항 풍경.

5월3일 결혼식을 앞두고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떠날 생각에 단꿈에 빠져 있던 양모씨는 최근 자신이 예약한 K여행사가 문을 닫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급하게 여행사 홈페이지에 접속했지만 바로 며칠 전까지 운영되던 사이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여행사 사무실 전화뿐 아니라 사장의 휴대전화, 집 전화까지 모두 끊긴 상태. 여행대금 480만원을 완납한 양씨가 경찰서에서 확인한 것은 여행사 대표가 예약자들의 돈을 챙겨 호주로 ‘날랐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가 양씨 외에도 23명이나 더 있으며 완납한 여행대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터넷을 이용한 여행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부분 파격적인 조건으로 여행객을 모집한 뒤 계약금과 여행대금을 챙겨 잠적하는 방식이다. 사기꾼들은 더 많은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다른 여행사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 기간 좋은 조건에 여행객 모집

2월28일 K여행사 대표 김모씨가 잠적함으로써 발생한 이번 사기사건의 피해자는 현재 밝혀진 것만 24명, 피해액은 총 1억810만원에 이른다. 아직 여행사가 폐업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피해자들까지 고려하면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커질 전망이다.

K여행사의 신혼여행 상품을 예약했던 정모씨는 “여행대금을 완납하면 20% 할인해준다는 김씨의 말만 믿고 전액 입금했다”며 “부족한 결혼자금을 아끼고 아껴 계획한 신혼여행인데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기분이 착잡하다”고 허탈해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대부분은 ‘몰디브 유명 리조트 전속 여행사’라는 K여행사의 광고와 입소문을 믿고 여행비를 선납한 신혼부부들. 이들은 “2년 이상 안정적으로 여행사를 운영해온 김씨가 사기를 치고 잠적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김씨는 2월28일 여행사 사업자 등록을 말소하고도 3월 초까지 피해자들과 통화하며 여행대금을 입금받을 정도로 치밀한 ‘사기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년간의 여행사 운영은 제대로 된 ‘한 건’을 위한 준비작업이었던 셈이다.

사실 이런 유형의 사기사건은 지금껏 수없이 되풀이돼왔다. 지난해 한 여행사는 현금 5만5000원만 내고 유료회원이 되면 ‘방콕, 마닐라, 싱가포르 왕복 항공권 무료 제공, 패키지 상품 가격 할인, 여행경비 후불제’ 등 각종 혜택을 준다는 파격적 이벤트를 벌여 회원 수를 한 달 반 사이에 6000명 이상 늘린 뒤 회원 가입비와 여행대금 40여억원을 챙겨 달아났다.

또 인터넷을 통해 ‘100만원을 일시불로 내면 5년간 다섯 차례 제주도 여행을 시켜주고 원금도 전액 돌려준다’고 광고, 92명으로부터 1억원에 달하는 회비를 받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문제는 동일한 수법의 사기사건이 반복되고 있지만 당국이 적절한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사기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상책도 미비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보호원 등에는 여행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이하 관광공사)에 따르면 2002년 접수된 관광 불편 신고 552건 중 가장 많이 지적된 사항도 여행사 관련 부문. 모두 117건으로 계약조건 불이행 47%, 안내서비스 불량 20.5%, 부당요금 징수 10.2% 등이었다. 피해자들은 여행사가 여행객의 계약금이나 여행대금 전부를 사기 치는 것뿐 아니라 여행 내용, 비용 등을 일상적으로 속인다고 믿고 있다. 여행사기에 대한 제대로 된 단속과 피해자 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떻게 세운 여행 계획인데…”

K여행사 사건 피해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 (cafe.daum.net/maldives1). 신혼여행을 준비하다 사기를 당한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가득 올라와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기 피해가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로 누구나 쉽게 여행사를 차릴 수 있는 현행 법제도를 지적한다.

한국관광협회에 따르면 3월7일 현재 전국의 여행사는 국내여행업 3984개, 국외여행업 3540개, 일반여행업 797개 등 총 8321곳.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1988년 각각 867개, 265개, 122개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난 15년 동안 여행업계가 양적으로 얼마나 팽창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여행사들은 안정적인 영업기반을 갖지 못한 영세업체들이다. 지난 2년 동안 여행사 2000여곳이 문을 닫고 1662곳이 새 간판을 걸었을 정도다. 1987년 여행사 설립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뒤부터 여행사들은 수시로 간판을 바꿔 달고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며 여행객을 모집하고 있다.

정부는 영세업체 난립으로 소비자 피해가 늘어나자 모든 여행사의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했지만 피해액에 비해 보상액수가 현저히 적어 정작 사고가 났을 경우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K여행사 사건의 경우에도 사장 김씨가 가입한 보증보험 액수는 3000만원에 불과하다. 영세 여행사들 중에는 이마저도 가입하지 않은 채 모객 행위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여행사에 대한 제재 조치는 거의 전무한 상황. 여행사가 일정 변경, 무자격자 인솔 등 불건전 영업을 했을 경우의 제재 수단도 경고, 과징금 부과, 영업정지 등에 불과하다. 자본납입금 변칙 납부나 부실 운영 부분은 현재 사실상 규제책이 전혀 없는 무법지대다. 여행사에 대한 등록 및 지도감독권을 갖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행정력 부족 등을 이유로 지도감독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행업계의 근본적인 구조조정과 강력한 행정단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여행사 대표는 “여행사의 난립은 필연적으로 덤핑 경쟁을 가져오기 때문에 사실 여행사 경영자들도 업계가 정리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관할 관청의 행정지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여행사 간의 지나친 가격경쟁은 결국 여행사 부도, 여행사기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여행사 설립요건 강화, 덤핑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행정처벌 강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377호 (p52~53)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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