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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30년 … 그래도 난 청년작가이고 싶다”

첫 시집 낸 소설가 박범신씨 “10년 전 절필선언 아득 … 오늘의 문학적 축복은 30대의 선물”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등단 30년 … 그래도 난 청년작가이고 싶다”

“등단 30년 … 그래도 난 청년작가이고 싶다”
크면 나쁘고/ 작으면 좋은 것들이 있다 세상엔/ 가령 네 집이 그래/ 너는 세상에서 제일 크고 높은 집을 꿈꾸지만/ 세상에서 제일 크고 높은 집을 네가 가져봐/ 이쪽 배추에서 저쪽 돌미나리로 이사도 못 가고/ 홀로 죽을 때 누가 있어/ 허물어지는 네 집의 서까래들을/ 붙들어주겠니(문학동네 1999년 여름호)

1993년 12월, 작가로 데뷔한 지 20년째가 되던 해 소설가 박범신(57)은 돌연 붓을 꺾었다. 글쓰기와의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하던 날, 신문연재 중단을 선언하고 용인 근교의 산골로 들어가 서툰 농사꾼이 됐다. 진실보다 테크닉에 의존하는 자신의 소설 쓰기에 절망하고, 기만적인 삶이 관성처럼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갈등하던 나날을 그는 그렇게 마감했다.

장편소설·산문집 한꺼번에 펴내

3년여의 은둔기에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습작을 쓰던 문학청년으로 돌아가 시를 썼다. 3월 말 선보일 첫 시집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는 지난 10년을 곰삭인 끝에 나온 진액이다. 첫 시집 외에도 그는 장편소설 ‘더러운 책상’, 산문집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올해가 1973년 단편 ‘여름의 잔해’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지 꼭 30년이 되는 해인 만큼 출간은 자연스럽게 등단 30년 자축연이 됐다.

“세 권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은 우연일 뿐이데…. 사실 시집은 우리 애들(명지대 문예창작과) 때문에 내게 됐어요. 어느 날 학생들이 찾아와서 30주년을 기념해 저희들이 책을 내겠다기에 뭐 그런 짓을 하느냐고 했는데 그 핑계로 술 한잔 먹으려 한다는 말에 마음이 약해졌거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뜻은 고맙지만 아니더라고. 청년작가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대신 내가 시집을 내서 너희들과 술 먹을 핑계를 만들어주마 했죠.”



지금까지 27종의 장편소설, 11권의 소설집, 9권의 산문집(콩트집, 희곡 포함) 등 수많은 작품을 낸 그지만 시집 이야기만 나오면 어쩔 줄 몰라 한다. 마치 문학에 대한 순정으로 가득했던 스물일곱 청년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2000년 가을 창작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를 펴내면서 서문에 ‘영원히 청년작가로 살고 싶다’고 썼거든요. 그때부터 자칭 청년작가가 됐죠. 영원한 미완의 작가, 그러나 30년 동안 문학을 향한 순정을 간직하며 살아왔다는 의미기도 해요. 지난 세월 쌓은 문학적 기득권을 언제라도 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포돼 있죠.”

그가 10년 넘게 몸담고 있는 명지대 문예창작과 연구실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열린 창으로 새 학기의 분주함이 빚어낸 소음이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어느덧 서리 내린 머리에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가 넉넉해 보였다. 10년 전 절필선언이 아득하기만 했다.

“80년대에 나를 소진했다는 평은 옳다고 봐요. 당시 쓴 소설들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분명 소모한 측면이 있지요. 그때는 내 안의 어떤 것들이 너무 다급해서 허겁지겁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빨리 사랑받고 싶었고, 삶에 대한 나의 앙갚음 같은 것이 있었죠. 젊은 날의 소외에서 튕겨져 나간 것들을 그렇게 소모적으로라도 보상(소설 쓰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강고하게 내 문학을 끌고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해요. 오늘의 축복은 30대의 선물입니다.”

박범신은 1978년 첫 창작집 ‘토끼와 잠수함’을 낼 때까지만 해도 리얼리즘계열의 참여작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1979년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과 ‘풀잎처럼 눕다’가 잇따라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대중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여세를 몰아 80년대에 그는 ‘겨울강 하늬바람’ ‘숲은 잠들지 않는다’ ‘불의 나라’ ‘물의 나라’ ‘잠들면 타인’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장편과 중·단편선집, 콩트집, 수필집, 희곡을 썼다.

“세계사에서 ‘박범신 문학선집’을 낸다기에 당시 썼던 소설들을 다시 읽어봤는데 어떤 부분은 치기만만하고 유치하고 닭살이 돋더라고요. 하지만 젊은 날이나 지금이나 나대로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절필선언 이후 나의 소설 쓰기가 변했다, 단순히 말하면 (대중성에 영합한)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소설로 갔다는 식의 평가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70년대에는 ‘풀잎처럼 눕다’가 바로 내 모습이었고, 2000년 발표한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에서는 다시 ‘토끼와 잠수함’ 시절로 돌아갔어요. 소설 쓰는 사람은 소재나 형식에 있어서 죽을 때까지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세계를 보는 눈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 길은 인간주의, 문학순정주의, 문학지상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에 대해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동덕여대)는 “이 소설집은 도저히 같은 작가가 썼다고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고 평했다. 3년의 침묵 이후 드디어 작가 박범신이 그동안 자신이 온축해오던 문학적 재능과 기법을 의욕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했다는 찬사와 기대를 표명했다.

“등단 30년 … 그래도 난 청년작가이고 싶다”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7~8년 됐죠. 최근 쓴 소설(흰 소가 끄는 수레, 침묵의 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외등)들은 대중문학이라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본격문학이냐 대중문학이냐 하는 편가르기가 잘못된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연애소설이라고 해서 연애 얘기만 있는 소설이 어디 있어요? 그들이 놓여 있는 사회가 반영돼 있는 것이고, 그래서 모든 연애소설은 동시에 사회소설이기도 하죠.”

젊은 시절 그는 ‘문학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단 한 번의 팔매질로 잡고 싶은 성취욕에 불탔다(94년 ‘풀잎처럼 눕다’ 재출간에 부친 작가의 말). 그 경계가 주는 불안한 자극이 때로는 상처가 되었고, 때로는 그의 문학을 강고하게 했다. 그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90년대 중반까지도 대중작가라는 평가에 괴로워했다”고. 돌이켜보면 이 청년작가는 환갑을 바라보도록 세상을 참 모르고 살았다. 소설 쓰는 것말고는 성취해본 게 없단다.

“30대에는 가슴에 맺힌 말들이 너무 많았죠. 사흘 동안 책상을 떠나지 않은 적도 있다니까. 자리를 뜨면 소설의 리듬이 깨지니까 책상 밑에 오줌통을 두고 썼죠. 아내가 밥을 먹으라고 하면 화를 냈어요. 나중에는 죽을 가져다 놓더군요. 후루룩 마시라고.”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작가는 아내(황정원)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내가 제게 취미도 없는 사람이라고 흉을 보면 저는 소설 주인공의 취미생활 챙겨주기도 바쁜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타박했고, 돈 걱정을 하면 내 주인공 지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하기에도 머리가 빠진다고 했죠. 아내는 밤새워 원고 쓰는 저를 두고 먼저 자러 가서 미안하다 했지만, 밤마다 ‘이쁜’ 여주인공과 노는 제가 오히려 미안해요. 장편소설은 촘촘한 논리의 그물 같아요. 그래서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죠. 때로는 인물들이 작가에게 반항을 합니다. 자살하게 해서 빨리 끝내려 하면 왜 내가 죽어야 하느냐고 따지죠. 평생 그렇게 살았어요.”

그는 소설 쓰는 일을 ‘어둠 속에 산다’고 표현했다. 아무리 성공한 작가라 해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철저히 자신과 싸운다. 잘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일러주는 사람도 없이 오로지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한다. 그래도 박범신은 죽을 때까지 작가일 것이다. “쓸 게 너무 많아요. 기운이 딸려서 문제지. ‘더러운 책상’이 열여덟에서 스물두 살 때까지의 이야기인데, 올해 기회가 있으면 스물둘부터 스물일곱 살까지의 이야기를 쓰려 해요. 소설은 자기 깎아 먹기 같은 것이죠.”





주간동아 377호 (p70~71)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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