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5

2003.03.13

바늘과 실로 행복 엮는 ‘뜨개질 형제’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03-05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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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늘과 실로 행복 엮는  ‘뜨개질 형제’
    지하철 4호선 명동역 4번 출구. ‘대를 이어 뜨개질하는 남자’라는 광고판이 행인의 시선을 끈다. 안내표시를 따라 ‘뜨개질하는 남자’가 있는 수예점을 찾아가보면 정말 30대 남자 두 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수준급의 실력파인 정문호(36·왼쪽), 현호(33)씨 형제가 바로 그들이다.

    정씨 형제는 뜨개질을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국의 내로라하는 각종 문화센터의 사범과 대학 시간강사까지 배출한 손뜨개질계의 큰 스승이자 수예가. 이들의 작품은 소품이라도 가격이 수십만원대를 호가한다.

    대바늘 뜨기와 코바늘 뜨기의 믹싱, 목부터 어깨, 소매 몸통을 한 번에 뜨는 원스톱 뜨기 등 시중 교본에도 없는 독창적인 뜨개질 솜씨가 소문이 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수강생들이 모여들고 있다.

    “솥뚜껑만한 손으로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고 웃는 사람이 많지만 뜨개질은 제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자 인생 그 자체입니다.”

    우람한 덩치의 문호씨가 이토록 뜨개질을 극찬하는 이면에는 말 못할 사연이 있다. 1989년 부산 동아대 4학년 시절 잘나가던 야구선수였던 문호씨는 서울 형 집에 다녀오다 기차에서 떨어져 왼쪽다리를 30cm 정도 잘라내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5년여 동안 만화와 무협지에 빠져 세월을 낭비하던 문호씨가 뜨개질의 묘미에 빠지게 된 것은 95년 어머니가 운영하던 수예점에서 심심풀이 삼아 뜨개질을 시작하면서부터. 야구공 대신 실과 대바늘이 투박한 손에 쥐어졌지만 프랑스 유학파 수예가인 어머니(이정자·63)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만든 가방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정도였다.



    동생 현호씨도 97년 IMF 외환위기 때 다니던 인테리어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형의 뒤를 이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옆에서 뜨개질 놀이를 하며 컸던 현호씨는 형보다 더 빨리 뜨개질이 늘었다. 주로 옷을 만드는 형 문호씨와 달리 소품에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는 현호씨는 아기자기한 코바늘 뜨기에 능하다.

    “올해 말쯤 수예 백화점을 내고 손뜨개질로 만든 고급 니트웨어 브랜드를 개발할 예정입니다.” 정씨 형제의 뜨개질 욕심은 끝이 없다. 뜨개질 형제의 수예점 이름은 ‘물망초(www.cobanul. co.k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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