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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지하의 공포

대구 지하철은 '불법鐵'

불연성 재질 외면, 승객 비상연락장치 ·비상등 작동 불능 등 안전운행 기준 미달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대구 지하철은 '불법鐵'

대구 지하철은 '불법鐵'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중앙로 역사.

대구 지하철 참사를 지켜본 국민 대부분의 반응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휘발유 2ℓ에 당겨진 라이터 불이 지하철 2대, 객차 12량을 모두 태우고 133명(2월22일 경찰 발표 기준)의 억울한 목숨을 앗아갔다. 부상자도 146명에 이른다.

‘어이가 없다’는 말은 빚어진 결과에 비해 원인이 터무니없을 때 쓰는 표현이다. 그 때문일까. 큰 사고 때마다 반복되는 총체적 안전불감증, 부실, 안전기준 미흡 등의 추상적 진단이 이번 사고 이후에도 어김없이 반복된다.

하지만 사고의 실체가 하나둘 밝혀지면서 이번 참사가 대구 지하철 당국의 불법행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수사를 진행중인 경찰은 방화 용의자 김모씨(56), 전동차 키를 뽑아 들고 달아남으로써 승객을 객차 속에 고립시킨 1080호 전동차 기관사, 화재 발생 상황에서 근무에 태만했던 종합사령실 근무자 등 지하철 운행 사고를 낸 사람들에 대한 사법처리에만 골몰할 뿐, 정작 시설물의 안전성에 대한 구조적 불법 부분에 대해서는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번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방화가 이루어진 지 채 30초도 되지 않아 객차 한 량 전체를 화염에 휩싸이게 한 객차의 내장재. 첫 발화 지점인 1079호 전동차 1호 객차에 탔던 승객들의 말과 녹화된 CCTV 화면을 보면, 방화범 김씨가 불을 지른(9시53분 00초) 후 객차 전체가 검붉은 화염에 싸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4초. 김씨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이영복씨는 “김씨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당기자 바로 불이 바닥에서 검붉게 타올랐다”며 “출입문을 나가 김씨 옷에 붙은 불을 끄고 객차 안을 봤더니 이미 그곳은 불바다였다”고 말했다. 이후 불은 삽시간에 열차 전체로 번져갔고, 맞은편에서 오던 1080호 열차에까지 옮겨 붙었다. 채 7분이 되지 않는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전동차 내부 재질은 KS등급 겨우 만족시킨 ‘난연성’



2000년 3월 제정된 도시철도차량안전기준에 관한 규칙(대통령령) 10조에 따르면 ‘지하철의 차체 및 실내 설비는 불에 타지 않는(불연성) 재질을 사용할 것. 다만, 실내 설비의 성질상 불연성 재질로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불에 타기 어려운(난연성) 재질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내 설비의 성질상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불연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1997년 한진중공업이 제작, 납품한 이 전동차의 객차 내부 재질은 불연성이 아니라 난연성 재질. 그것도 KS규격을 겨우 만족시키는 등급이었다. 특히 바닥에 깔린 폴리염화비닐(PVC)은 불에 닿으면 염소가스를 뿜어내는 유독물질이었다. 염소가스는 한 번만 들이마셔도 쇼크를 불러오는 신경가스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독가스의 일종. 김천대 소방안전과 차시환 교수는 “차량 구입 당시에도 값은 두 배 가량 비싸지만 질 좋은 불연성 제품이 얼마든지 있었고, 이를 사용했다면 이런 피해는 없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79구의 사체가 불에 탄 채 발견된 1080호 5·6호 객차 승객의 경우 출입문이 봉쇄된 상황에서 5호차와 4호차 사이의 통로연결막(주름막)에 불이 붙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당시 출입문이 열려 있던 4호 객차에 탔던 정준호씨(54)는 “5호차에 탄 사람이 4호차로 건너오려 했지만 불길이 워낙 거세 건너오지 못했다”며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증언했다. 이 전동차의 통로연결막은 ‘졸타파린’이라는 재질로 돼 있다. 고무 성분에 약간의 방염처리를 한 것으로, 일단 불이 붙으면 무섭게 타는 성질을 가진 물질이다.

대구 지하철은 '불법鐵'

정전시 축전지로 승객과 기관사 ,승객과 종합사령실을 연결해주는 장치인 비상호출기. 이번 사고 때에는 작동하지 않았다(위). 1080호 지하철 5·6호 승객을 화염에 싸인 객차 내에 가둔 통로연결막. 난연재이지만 가장 먼저 불이 붙었다.

이에 대해 해당 지하철을 구입한 대구지하철건설본부(이하 건설본부)의 반응은 “안전기준에 ‘난연성 재질도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 대외법률사무소 김선욱 변호사는 “건설본부나 대구지하철공사가 만약 승객의 안전보다 우선하는 실내 설비상의 불가피성을 설명하지 못할 경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당시 수출용으로 제작된 외국 지하철의 경우 디자인과 편리함을 만족시키면서 불연성 재질을 사용해 당국이 무죄를 증명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건설본부측은 난연재 사용에 대한 명백한 논리를 가지고 있을까. 건설본부는 “불연성 재질로 할 수 없는 실내 설비상의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런 것은 없고 다만 차량 구입 당시의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본부는 이런 주장이 제기되자 “이 규칙의 상위법인 도시철도법(도시철도차량은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이 정하는 구조 및 장치가 안전운행에 필요한 기준에 적합하지 않으면 운행하지 못한다)의 부칙에 1999년 1월 이후 운행 차량에 대해서만 문제의 안전기준을 적용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어 97년에 제작된 대구 지하철은 이 법과 관계가 없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법제처를 비롯한 재야 법조계는 “절연제의 채택, 통신장비, 비상등 등 안전기준은 사회 통념상 물리적으로 설치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므로 도시철도법상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하여도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나 민사상의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 더욱이 사고 지하철 구매 당시(1997년) 건설본부가 제작한 ‘대구 지하철 1호선 전동차 규격서’에는 이미 대통령령(안전기준에 관한 규칙)과 똑같은 조건이 제시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규격서’에는 ‘차체구조는 불연성 재질 사용을 원칙으로 하지만 불가피할 경우 난연성 구조로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자체 안전기준이 법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

과연 이런 상황을 알고도 건설본부와 차량제작사는 난연성 재질을 고집한 것일까. 사고 지하철을 생산한 로템(2000년 한진중공업 합병)사의 한 관계자는 “사고 지하철이 납품될 당시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3개사가 출혈 저가 낙찰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운행적자가 예상되던 대구 지하철이나 생산원가도 맞추지 못하는 제작사 모두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데 비싼 재료를 쓸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후에도 난연재를 쓰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 되었다는 게 로템 관계자의 전언이다.

대구 지하철은 '불법鐵'

1080호 객차 옆에서 피해자 감식을 벌이고 있는 국과수 유전자 감식반.

문제는 이런 해석대로라면 서울 인천 대구 부산 등 4대 도시의 지하철 전동차도 ‘불법’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 정부가 사고 나흘 만인 2월21일 서울 인천 대구 부산 등 4대 도시 지하철의 내장재를 모두 불연재로 교체키로 한 것도 정부 스스로 난연성 내장재의 불법성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고 전동차의 불법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도시철도차량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제11조(화재 대피를 위한 구조) 2항에 규정된 승객과 운전자 간의 비상연락장치(비상호출기)는 고장난 상태였고, 객차 내 비상등은 아예 작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 장치는 전원이 끊긴 후에도 객차 내 축전지로 작동돼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1079호 열차의 제일 마지막 객차(6호)에 탔던 김이손씨(32·여)는 “앞 객차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고함을 치고 해서 비상연락장치를 누르고 기관사에게 상황을 물었지만 장치는 고장나 있었고, 차량 내 형광등이 모두 꺼졌는데도 비상등은 켜지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종합사령실이 1079호의 화재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도 비상호출기의 고장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화재 당시 1079호 기관사 최모씨는 운전실과 맞붙은 1호차에서 불이 나자 종합사령실에 화재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객차의 불을 끄기 위해 승강장 소화전에서 호스를 꺼내려다 가스를 마시고 쓰러졌다는 설이 유력함). 만약 비상호출기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종합사령실은 1079호의 화재 사실을 좀더 빨리 알고, 1080호의 중앙로 역사 진입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구 지하철의 경우 완전무인운전시스템은 아니지만 기관사가 운전실에 없는 경우 승객의 목소리가 바로 종합사령실로 연결되게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

맞은편에서 들어왔던 1080호의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 열차 3호차에 탔다 기적적으로 살아 나온 황정화씨(37)는 “유독가스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기관사와 교신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며 “누군가 수동으로 문을 열 때쯤에는 객차 내 비상등마저 꺼져버려 암흑천지가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대구 지하철 참사의 총 사망자 133명 중 1080호 열차 승객이 127명을 차지하는 데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승강장을 암흑천지로 만든 불법 전기시설도 한몫했다. 1080호 열차 5·6호 객차에 갇혀 사망한 79명 외에 48명은 거의 대부분이 지하 2층까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지하 3층 승강장이나 올라가는 계단에서 숨졌다. 겨우 출입문을 빠져나온 승객들은 단전이 되면서 암흑천지로 변한 승강장에서 나가는 곳을 찾지 못했다. 소방법상 화재나 긴급 상황시 반드시 켜져야 하는 승강장 비상조명등이 단 한 개도 켜지지 않은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앙로역뿐만 아니라 대구 지하철 각 역의 승강장 비상조명등 모두가 구조적으로 객차 화재 등 비상 상황에도 켜지지 않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구지하철공사 전기팀의 한 관계자는 “대구 지하철의 승강장 비상조명등은 변전소 전기공급 및 변압기 불량 등 배전반에 공급되는 전기장치 1·2호기 모두에 하자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비상등이 켜진다”고 말했다. 즉 현재 전기시스템에서는 지하철 구내가 모두 타버린다 해도 배전반에 공급되는 전기만 이상 없다면 절대 비상조명등이 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공사측은 한술 더 떠 “이런 시스템은 전국 지하철이 다 똑같은 상황”이라며 “현 시스템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국철 일산선과 분당선의 전기설계를 맡은 철도청의 한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화재나 비상상황을 위해 설치된 비상조명등은 배전반이나 분전반과 관계없이 다른 전력시스템을 이용해 비상시에 불이 들어오도록 돼 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지하철 역사의 전력과 지하철의 구동에 사용되는 전력은 완전히 성질이 다른 것인데 화재로 인해 지하철 역사가 정전되면서 지하철 구동전력이 같이 끊겼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다”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사고 당시 1080호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한 후 재시동을 걸어 역사를 빠져나가려 할 때 구동전력이 공급되지 않은 것에 대한 “지하철 역사의 전력이 화재로 끊기면서 전동차 구동전력도 함께 끊겼다”는 공사측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는 논리.

그렇다면 당시 구동전력은 왜 끊긴 것일까. 공사측은 이에 대해 “동시에 끊긴 것 같다” “잘 모르겠다”며 오락가락하는 답변만 할 뿐 정확한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주간동아 374호 (p26~28)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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