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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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바이오 제품 경쟁력 충분”

해조류서 추출 VNP 생산 벤트리 이행우 사장 … “천연 소재·기능성 식품 고부가가치로 키워야”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03-02-27 17: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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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산 바이오 제품 경쟁력 충분”

    천연물 소재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이행우 사장.

    한국산 바이오 물질이 국내 기업에 의해 외국으로 팔려나간다. 그것도 물질 1kg당 350달러라는 비싼 값으로. 대부분의 우리나라 고분자구조 물질이 1kg당 2만∼4만원에 팔려나가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부가가치다. 선진 외국의 시장에서는 원료물질이 1kg당 평균 100달러 정도는 나가야 시장지배력과 수익률 보장 등 그 물질의 ‘비즈니스 포인트’가 있다고 보는 게 관례다.

    코스닥 등록 바이오벤처 벤트리가 개발한 VNP라는 물질이 바로 그 ‘비즈니스 포인트’가 있는 상품. 국내산 해조류 추출물인 VNP는 현재 미국과 대만 시장을 근간으로 해 세계시장으로 무대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2월23일 저녁 미국에서 귀국한 벤트리의 이행우 사장(47)을 만났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인터뷰에 응한 이사장은 피곤한 기색은커녕 밝은 표정이었다. 미국에서의 사업이 잘 풀리고 있는 듯했다.

    ‘VNP 시리즈’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

    “미국의 백인 주류사회, 그것도 하이소사이어티 집단과의 사업계약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저는 올해 해외시장에서 100억원, 국내시장에서 200억원의 매출을 올려서 벤트리의 성장·흑자 기조가 정착하는 원년이 되도록 하겠다고 공표했거든요. 지금 이 추세대로라면 경영목표를 초과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올해로 창업 7년째인 벤트리는 지난해 신물질 VNP를 이용한 성기능 개선제 ‘섹스스 맥시마’ 등을 국내에 선보인 후, 각종 ‘VNP 시리즈’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외국시장 공략에 나섰다.

    벤트리측 발표에 따르면 현재 다국적 바이오기업 바이오씨(Biosea)사와 캐나다 유통업체 ONC사를 통해 해외시장 진출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 최대의 건강식품 회사인 ONC사는 벤트리로부터 수입한 VNP 물질을 이용한 건강보조식품을 생산, 북미와 유럽지역에 판매할 계획이고 바이오씨사는 벤트리와 VNP 물질뿐만 아니라 완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 중국 및 동남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는 것. 최근에는 일본의 대형 종합상사와도 VNP·완제품 수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벤트리의 해외시장 개척은 우리나라 바이오벤처로서는 매우 드문 성공 사례다. 국내에서도 정착하기가 쉽지 않은 국산 바이오산업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한 이행우 사장의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BT산업의 주류는 인간의 DNA를 응용하는 유전자공학과 신약(의약품) 분야인데 선진국들은 이미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육성해 자기들끼리 판을 만들어놨어요. 때문에 현재의 우리 수준으로 이 판을 깨고 들어가기가 힘든 게 현실입니다. 다만 유전자공학이나 신약제제 분야는 안정성이나 부작용 등을 따져 상품시장으로 진입하기까지는 향후 20∼30년간의 시간이 걸립니다. 바로 이 틈새 시간대에는 천연물 의학이나 건강기능성 식품군 등이 하나의 새로운 의학, 이른바 대안의학으로 부상한다는 게 선진국 바이오 종사자들의 평가입니다. 미국의 지난해 천연약초 등을 이용한 건강보조식품 시장규모가 무려 72조원에 이른다는 것도 이를 증명하죠. 아무튼 우리 회사 제품이 바로 천연물에서 추출한 기능성 식품인데, 심혈관계 질환에 좋은 임상 효과를 보여 그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산 바이오 제품 경쟁력 충분”

    벤트리 연구소의 실험실. 제주 근해 청정지역의 해조류에서 추출한 천연물질인 VNP.(왼쪽부터)

    이사장의 이러한 안목은 수년간 외국에서 쌓아온 그의 경력에서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다. 1980년 고려대 화학과를 나온 그는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86년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오와대에서 화학 분야 이학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자연스레 바이오산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귀국한 뒤 1997년 벤처기업인 벤트리를 창립하고 처음 내놓은 것은 김서림 방제 제품 같은 고기능성 생활용품 분야와 피부미용에 좋다는 참나무 목초액 등 기능성 퍼스널 케어 분야. VNP 물질을 선보이기 이전에 시험 삼아 내놓은 이들 제품은 지금도 잘 팔리고 있다 한다.

    덧붙여 이사장은 천연물 소재나 기능성 식품(Functional Food) 같은 틈새 바이오 분야에서는 한국이 상당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통해 적은 투자비용으로도 얼마든지 고부가가치의 새로운 산업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

    “한국은 각종 해양식물이나 약초를 이용한 임상 경험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어요. 이런 분야는 물질의 한 가지 성분에만 매달려 연구를 해오는 서양인들한테는 매우 낯선 분야인 반면 동양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것들이죠. 문제는 일찌감치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별도의 법을 마련해 시장을 조성하고 정부 주도로 천연소재들에 대한 연구를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관련 분야의 지원책이 전무하다는 점이에요. 국내 법규상으로 바이오기술로 개발된 천연소재가 식품도 아니고 의약품도 아닌 어정쩡한 대접을 받고 있거든요.”

    틈새 BT산업 국가적 지원을

    이 때문에 지난 5년에 걸쳐 벤트리가 자체 개발한 VNP 물질은 지난해 출시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단다. VNP의 성기능 개선 효과와 관련한 국내 임상실험 과정에서 연구자들 사이에서 마찰이 있었던 것. 이사장은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무척 절제했다.

    “국내 자본에 의해 생산된 우리 물질이 자칫 왕따 신세가 될 뻔했지만 미국과 대만, 일본 사람들이 오히려 VNP 물질의 효능에 놀라워하고 있어요. 그들이 바보라서 우리 물질을 비싼 값에 사서 자기 나라에서 판매하려 하겠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선진 외국의 학자들은 한국의 기능성 식품 임상실험 결과에 대해 별로 믿으려 들지 않아요. 일본의 경우만 해도 교토의대 심장혈관외과 마시시 고메다 교수팀이 별도로 VNP 시리즈를 심혈관질환 치료 기능으로 임상실험해본 결과 그 효과를 인정해 일본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게 됐어요. 이 논문은 곧 공식 발표될 예정입니다.”

    이사장은 이 논문 때문에 “일본의 대형 제약회사에서도 VNP를 심혈관질환 개선 건강기능식품 및 치료제로 개발하는 데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건강기능식품 및 천연물 신약으로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사장이 이끄는 벤트리사는 나노 입자 결정체로 만든 천연 바이오세라믹으로 양식 진주의 핵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내는 등 탁월한 연구 실적을 내고 있다.

    이사장은 이제 “우리도 한국 BT산업의 도약을 위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술과 상품 개발에 기업과 정부가 공동으로 나설 때”라고 말했다. 기업은 기업끼리 기술을 서로 공유해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며, 정부는 선진국 기업들이 놓치고 있는 틈새 분야를 개척하는 바이오 벤처업체를 우선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변의 성공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 듯해요. 외국의 유명 브랜드가 들어와 우리 시장을 점유하는 것은 관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이웃의 성공에는 불신의 눈초리로 냉담하게 반응할 때가 많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성공의 의미는 우리와 사뭇 달라요. 그들은 서로 협력하고 배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함께 성공을 이루어내죠.”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유난히 힘이 실리는 것은 초창기 바이오벤처인으로서 겪은 그의 ‘고통’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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