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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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성차별’ 법 바꾼 택시기사

43살 곽순택씨 2년간 ‘나 홀로 소송’서 승리 … 성형수술비 차등 지급 개정안 입법예고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01-16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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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터 성차별’ 법 바꾼 택시기사

    최근 1차 성형수술을 받은 곽순택씨(위). 2000년 강도사건 전 곽씨의 모습.

    ”사회생활에서 얼굴 흉터로 받는 정신적 고통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크므로 장해등급이나 보상비도 여자가 몇 배로 더 많아야 한다.”

    누가 보아도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지난 40년 동안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 시행령 제31조에 명시된 이 조항을 근거로 산업재해 환자에 대한 장해등급 지정과 보상이 이뤄져왔다. 그러나 노동부는 1월5일 산업재해로 외모에 흉터가 남은 경우 장해등급을 남녀 모두 7급으로 적용, 같은 금액을 보상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 입법예고했다. 1964년부터 시작된 ‘흉터 성차별’이 40여년 만에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이 같은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바꾼 주인공은 지난 2년 동안 국가를 상대로 ‘나 홀로 소송’을 벌인 부산의 법인택시 기사 곽순택씨(43)였다.

    평범한 기사였던 곽씨가 외롭고 힘든 싸움에 뛰어든 것은 2000년 6월10일 부산 동서고가로에서 강도를 만나 얼굴 전체에 75cm의 상처를 입으면서부터. 사건 후 응급처치를 받은 그는 현행 법규에 얼굴 성형수술에 대한 보상 규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의 입장은 “택시기사는 얼굴로 먹고사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응급치료비 외에는 보상이 불가능하다”는 것. 즉 찢어진 상처를 꿰매는 치료비는 줄 수 있어도, 성형비는 줄 수 없다는 논리였다.

    2001년 3월 초 소송에 나선 곽씨는 변호사 사무실을 세 군데나 돌아다녔지만 “전례가 없으니 소송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할 수 없이 그는 ‘나 홀로 소송’을 선택했다. 1t 트럭 한 대분의 자료와 재판 일정 때문에 생업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두 달 만인 4월30일 부산지법은 곽씨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문의 내용은 “택시운전은 다수의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이므로 노동력 회복을 위해서도 성형수술이 필요한 만큼 수술비 전액을 지급하라”는 것. 하지만 복지공단은 항소와 상고를 거듭, 대법원 상고심에서 “심리할 가치도 없는 소송(심리기각)”이라는 판사의 꾸지람을 듣고서야 소송이 끝났다.

    다수의 사람 상대 서비스직 인정

    그러나 곽씨의 싸움은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노동부로부터 산업재해 장해등급 12등급에 400여만원의 보상금을 받은 그는 우연히 산재법 관련 서적을 들춰보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과 같은 장해라도 여성은 장해등급 7등급으로 2600만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던 것.

    곽씨는 소송을 다시 하려고 했지만 앞선 소송으로 파산 직전에 이르러 여력이 없었다. 대신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장문의 진정서를 보냈다.

    “여성의 외모를 남성의 외모보다 중시하는, 법 제정 당시의 사회통념이 반영된 장해등급 판정기준에 의해 오히려 현재의 남성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권위는 2002년 11월 곽씨의 진정을 받아들여 노동부 장관에게 ‘국민의 평등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관련 조항의 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권고문을 통해 “외모에 뚜렷한 흉터가 남은 경우 여성과 남성의 장해등급을 달리하는 것은 의학적 타당성이 없고 법제정기인 1960년대의 사회통념을 현대사회에 반영하고 있어 무리가 있다는 점,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주는 상처는 남녀 모두에게 고통과 피해를 준다는 점을 감안해 차등지급 규정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노동부는 이 같은 권고를 받아들여 올 1월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수술을 하고 나면 손님을 바로 쳐다볼 수 있겠지요.” 잘못된 법을 향한 한 택시기사의 ‘작지만 위대한 도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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