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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왜곡’ 美방송 “Sorry”

김주호씨-WB11와 법정 밖서 합의 … “뉴욕 한인들 권익신장 중요한 계기 될 것”

  • 홍권희/ 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konihong@donga.com

‘개고기 왜곡’ 美방송 “Sorry”

‘개고기 왜곡’ 美방송 “Sorry”

뉴욕 한인타운. 이번 개고기 사건 승리를 두고 한인사회는 “미주 한인들의 권익신장을 위한 새 이정표를 마련했다”며 환영했다. 아래는 WB11과 김주호씨측의 공동합의문.

”개운합니다. 이젠 아이들도 마음 편히 학교에 갈 수 있게 됐고요.”

‘뉴욕 개고기’ 사건으로 1년 2개월 동안 같은 동네 미국인들의 눈총을 받으며 살아온 김주호(43), 로슬린 김씨(39) 부부는 요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서 북서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워츠보로에서 ‘김씨 농장’을 운영하는 김씨가 사건에 휘말린 것은 2001년 11월. 농장을 찾아온 한인에게 코요테(북미에 사는 개과 동물) 고기를 판매한 지 며칠 후 뉴욕의 공중파 방송인 워너브러더스(WB11)의 조사보도 담당 여기자 폴리 크라이스만 일행의 기습 취재를 받게 됐다. 이들은 김씨에게 개고기를 파는 것이 아니냐면서 몰래카메라로 찍어놓은 장면을 내보였다.

김씨 부부는 개고기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WB11은 한인의 개고기 식용 실태를 폭로하듯이 이 화면을 내보냈다. 기사 제목은 ‘개가 사람을 문다’였다. 12월까지 네 차례 나간 이 방송의 파장은 컸다. 프랑스의 제2방송인 TF2는 코미디 프로에서 한국 학생들이 학교에 도시락으로 개를 싸 간다는 내용의 우스개 이야기를 방송하기도 했다. 2002년 2월 미국 NBC 투나잇쇼 진행자 제이 레노가 “그 한국인(김동성 선수)은 (금메달을 오노에게 빼앗긴 뒤) 화가 나서 집에 가서 개를 걷어차고 잡아먹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WB11 보도의 여파였다.

미국 내에서는 한국인들을 겨냥한 동물보호단체 등의 시위가 잇따랐다. 반한 시위가 열리는 곳은 태극기가 성조기와 함께 나부끼는 맨해튼 파크애비뉴의 무역협회 빌딩 앞. 이 빌딩에 입주해 있는 외환은행의 한 간부는 “2002년에만 네 차례의 시위가 있었는데 피켓을 든 시위대들이 그냥 서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사람 앞으로 피켓을 들이밀면서 ‘개를 먹지 말라’고 야유하듯 말해 기분이 몹시 상했다”고 말했다.



막강한 TV와 소송 주변에선 말려

이 같은 사태에 대해 뉴욕 한인 사회의 의견도 둘로 갈라졌다. ‘개고기를 팔지도 먹지도 않았는데 미국 TV에서 인종차별적 보도를 했으므로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는 단결 호소 그룹이 하나, ‘미국에 와서까지 한국식으로 하면 어떻게 하느냐, 개고기를 팔았든 팔지 않았든 간에 한인들을 욕먹게 하는 행동은 그만 하라’는 반성 촉구 그룹이 또 하나였다.

미국에 이민 온 지 18년째인 김씨는 190에이커(약 23만평) 규모의 농장에서 토종닭 돼지 등을 키우고 델라웨어 강에서 장어를 잡아다 판다. 무 상추 깻잎 등을 가꿔 한국인 등 아시아인들이 운영하는 마켓에 공급하기도 한다. 문제가 됐던 코요테는 이따금 잡기도 하고 시장에서 사다가 되팔기도 하는 것. 물론 김씨는 코요테를 잡거나 판매할 수 있는 허가증을 취득했다. 야생동물에 대한 관리가 엄격한 나라에서 허가증 없이 동물을 잡거나 팔다가는 본전도 못 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개고기 파동’이 자신 때문인 것처럼 여겨져 다른 한인들 보기도 민망했고 이웃의 미국인들과 어울리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땀 흘려 일하는 자신이 이유 없이 욕을 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송을 하려 했지만 ‘막강한 TV방송사와 싸워봤자 소용없다’며 주변에서 말렸다.

‘개고기 왜곡’ 美방송 “Sorry”

문제가 된 코요테. 개과의 야생동물이다. 미 NBC 방송 ‘투나잇쇼’의 제이 레노. 김동성과 개고기 관련 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김봉준 변호사(가운데) 일행이 1월7일 뉴욕 맨해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법정 밖 합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왼쪽부터 시계방향)

“9, 12, 13세의 세 자녀가 학교에서까지 창피를 당하고 오는 것을 보고는 소송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인 변호사들과 만나 사건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자 모두들 ‘승산이 없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하지만 선배의 소개로 만난 김봉준 변호사는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TV 보도 내용을 꼼꼼하게 짚어보더니 ‘해보자’고 하더군요.” 김씨의 회상이다.

2002년 4월 이들은 700만 달러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WB11과 크라이스만 기자,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오브 유에스(HSUS)’와 방송에 출연해 김씨 등을 비난한 이 단체의 릭 스웨인 부회장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은 명예훼손, 사기, 민권침해, 무단침입 혐의였다. 뉴저지주에서 ‘김 앤드 어소시에이츠’라는 법무법인을 운영중인 김변호사는 2명의 미국인 변호사와 함께 이 사건에 매달렸다. WB11의 대리인인 워싱턴의 미디어 전문 대형 법무법인 ‘레빈 설리반 앤드 코’는 소송을 기각시키기 위해 한번에 몇 박스씩 반론 자료를 보냈다. 김변호사 일행은 주말 출근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서류더미와 씨름을 해야 했다.

김씨 “이젠 떳떳하게 살 수 있다”

소송의 핵심 중의 하나는 김씨가 ‘집에서 기르는 개(domestic dog)’를 식용으로 팔았느냐 하는 점이었다. 애완견은 아니지만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잡아먹는 것처럼 묘사해서 한인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원고측의 주장이었다. 피고측인 방송사와 담당기자는 김씨의 농장에 ‘집에서 기르는 개’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

작년 늦가을 WB11측은 합의를 요구해왔다. 양측은 문구 하나하나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이어갔다. 법원 판결이 나기 전인 1월3일에 양측은 합의를 했고 원고측은 소송을 취하했다. 김변호사는 7일 기자회견에서 “공동합의문을 ‘사과편지(apology letter)’로, 이번 합의를 ‘한인들의 승리(victory for Koreans)’로 표현해도 좋다는 데 WB11측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합의문에는 ‘WB11과 크라이스만 기자는 김씨 부부가 집에서 기르는 개를 식용으로 팔았다는 쟁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 또한 문제가 된 보도를 해 이 방송을 지켜본 일부 시청자들이 미국 내 한인 사회를 비난하는 일이 생긴 데 대해 미안하다(sorry)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김씨측은 합의한 배상금에 관해 공개하지 않았다. 김씨는 “당초부터 돈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합의 액수에 대해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한인을 포함한 뉴욕시 아시아인 사회의 권익신장에 큰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뉴욕의 한인들 역시 “미주 한인들이 권익신장을 위한 새 이정표를 마련했다”며 환영했다. 중국계인 존 리우 뉴욕시의원은 “이번 합의는 소수계가 미국의 주류 언론사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변호사는 “소송을 시작하면서 동료 변호사들과 ‘한푼도 보상받지 못하더라도 이번 소송을 끝까지 밀고 나가자’고 약속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순수한 마음에서 소송에 임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표현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셈이다.

뉴욕타임스, 뉴스 데이, 더 레코드 등 현지 신문들도 합의 소식을 일제히 기사로 다뤘다. 김씨는 “동네사람들이 신문보도를 보았겠지만 합의문을 자세히 읽어보라는 의미에서 복사본을 동네 학교와 경찰서 등 지역사회에 돌렸다”면서 “이젠 동네 사람들을 만나도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세 자녀는 예전처럼 활짝 웃는 모습으로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었다. 김씨는 “날씨가 풀리면 그동안 도와주신 한인들을 농장으로 초청해 멧돼지 바비큐 파티를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369호 (p52~53)

홍권희/ 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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