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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단체에 왕따당한 ‘국가인권위 1년’

출범 때부터 직원 채용·법안 문제 잡음… 미진한 사건처리에도 비난 잇따라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인권단체에 왕따당한 ‘국가인권위 1년’

인권단체에 왕따당한 ‘국가인권위 1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담센터 게시판.

지난해 11월26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5층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진정서 접수처는 이른 아침부터 한 맺힌 사연을 풀기 위해 찾아온 진정인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인권위원 11명과 인권위 준비기획단 직원 27명, 시민단체 자원봉사자 10명 등으로 첫 업무에 들어간 인권위 관계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날 하루 접수된 진정은 모두 122건, 전화상담도 160건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1월25일 인권위가 설립 1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을지로1가 금세기 빌딩에 새살림을 차렸고, 직원 수도 215명으로 늘었다. 흥겨워야 할 생일을 맞이했건만, 인권위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최근 청와대와 갈등이 빚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권위 설립을 위해 함께 싸웠던 인권단체로부터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의 갈등은 11월11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국제인권기구회의에 참가한 김창국 인권위원장의 출장에서 비롯됐다. 청와대는 허가를 받지 않고 출장을 갔다는 이유로 김창국 인권위원장 등 인권위 직원들에게 경고조치를 취했다. 이에 인권위가 독립성을 내세우며 반발했고, 청와대와 행정자치부는 인권위가 정부에 소속된 조직이라며 드러내놓고 다시 망신을 줬다.

인권위가 청와대에 반발한 것은 독립성 확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측면이 강하다. 독립성 문제는 인권위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정부에 소속된 기관이 다른 정부기관을 견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서울지검 특별조사실에서 조천훈씨가 사망한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고 있을 즈음 청와대는 인권위에 현 정부의 인권 관련 치적과 관련된 내용을 발표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또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 인권위가 미군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했을 때도 시기를 조금 미뤄달라고 부탁해왔다고 한다. 국가기관으로서의 인권위의 위치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인권 옹호자 아닌 심판관 노릇”



인권단체에 왕따당한 ‘국가인권위 1년’

8월28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윤모씨가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사한 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을 벌이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들(위). 진정 접수 첫날인 지난해 11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유시춘 상담위원(맨 오른쪽)과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인권위와 인권단체의 갈등은 인권위 출범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법무부의 견제로 특별검사제가 빠지고 조사대상·방법을 제한하는 규정이 국가인권위원회법(이하 인권위법)에 명문화되는 등 인권단체가 당초에 요구한 법안보다 인권위법이 크게 후퇴하자 인권단체들의 의견은 둘로 갈렸다. 인권위법을 부족하나마 승인해야 한다는 쪽과 법안을 거부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뉜 것. 그런데 인권위법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인사들이 주로 인권위에 들어가 있고, 그 반대 입장에 있던 사람들은 밖에서 인권위를 비난하고 있는 다소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위 출범 과정에서 인권단체들이 배제됐고, 직원 채용 과정에서 특정 인사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혜택을 봤다고 주장한다. 김창국 위원장이 선임되면서 인권위 출범을 반대한 인사들이 인권위의 중심이 됐고 직원 채용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인권운동가는 “인권위에 들어가지 못해서 인권위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프라이버시 차원에서 당사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지 채용 과정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류은숙씨는 “인권위가 빠르게 관료화하고 있다”며 “생색내기용 사업에만 몰두하는 등 인권의 ‘옹호자’가 아닌 ‘심판관’ 노릇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인권위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현재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만 글을 쓸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롯해 주민등록번호를 밝히기 어려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이런 조치는 취할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8월12일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가 인권위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한 직후에 설치된 전자 출입차단 장치도 비슷한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남을 비방하는 글이 상습적으로 올라와 게시판을 실명제로 바꿨고, 출입문 통제장치는 단식 농성 이전에 이미 계획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인권단체들은 또 진정 사건이 제대로 접수 처리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인권위가 10월 말까지 접수한 진정은 모두 2971건으로 그중 1131건이 각하됐고 98건이 기각됐다. 수사의뢰 고발 권고 조정 합의 등을 통한 사건종결 건수는 30건, 현재 처리중인 사건은 모두 1702건이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인권위의 설립 목적 중 하나가 실효성 있는 구제활동이라고 볼 때, 인권위가 지난 1년 동안 제대로 한 일은 거의 없다”면서 “인권실천시민연대를 통해 진정을 제기한 교도소 사망사건의 경우 인권위측과 진정인이 전화 통화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은 매우 다양하다. 물론 증거를 찾거나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인권위 관계자는 “각하율이 90%에 육박하는 것은 인권위법상 조사를 할 수 없거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진정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강명득 인권침해조사국장은 “검찰 등에서 구타를 당했다고 진정인이 진정을 해와도 증거가 남아 있지 않거나 관계기관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 조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인권위가 진정 사건 처리에 보다 공격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 국가기관이면서도 다른 국가기관을 견제할 수밖에 없는, 인권기관이면서도 의욕이나 의지를 조금 꺾고 법에 의한 해석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애매한 위치 때문이다. 인권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격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일부 수긍하지만, 인권위는 인권단체들처럼 의욕만으로 일을 처리해갈 수는 없다”면서 “인권위는 호랑이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개처럼 짖는 방식으로 인권침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인권단체의 주장처럼 인권위가 1년 동안 ‘놀고 먹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조천훈씨 사망사건과 관련, 인권위는 도드라진 성과를 올렸다. 검찰의 물고문 추정 발표와 특별조사실에 몽둥이가 있었다는 발표도 인권위가 먼저 폭로할 것을 우려한 검찰이 서둘러 발표했다는 게 인권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직권조사에 나선 인권위 조사관들이 특별조사실에서 몽둥이를 발견하자 인권위 브리핑 이전에 검찰이 먼저 관련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 밖에 테러방지법의 국회 통과 저지 노력과 국제형사재판소 가입 권고 등도 인권위의 치적으로 꼽힌다.

지난 1년 동안의 인권위 활동이 역사상 유례없는 기관의 전례없는 활동임을 고려할 때 인권단체들의 비판은 갓 돌을 맞이한 인권위에 너무나 가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끊임없이 제기되는 비판에도 인권위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인권단체가 인권위를 소 닭 보듯 하고 있지만, 인권단체들의 비판에는 애정이 담겨 있다. 인권위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매를 든 것이다. 최근 청와대와의 갈등에서 인권단체들은 인권위의 편을 들어주고 있지 않은가. 인권위는 폐쇄성을 걷어내고 외부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으로 출범 2년차를 시작해야 한다.” 인권위가 귀담아들어야 할 한 시민운동가의 말이다.





주간동아 362호 (p50~52)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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