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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장희빈’에 그려진 궁중 생활사

궁녀들, 승은은 멀고 삶은 고달퍼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궁녀들, 승은은 멀고 삶은 고달퍼

궁녀들, 승은은 멀고 삶은 고달퍼

‘장희빈’의 촬영 장면.조선시대에는 500여명의 후궁과 궁녀들이 궁 안에 상주하고 있었다.

요즘 KBS의 사극 ‘장희빈’은 경희궁과 한국민속촌 등을 오가며 야외촬영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사극치고도 유난히 밤 촬영과 야외 촬영이 많은 편인데, 하필 첫 추위가 닥치는 바람에 연기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희궁에서 하루 종일 촬영이 진행된 11월21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왁자지껄 몰려다니고 있는 경희궁 숭정전 뒤, 한 외진 전각에서 김혜수를 비롯한 출연진들이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막 승은을 입고 ‘장대인’에서 ‘마마님’으로 격상된 장옥정을 제외하면 출연진들은 대부분 내시, 궁녀, 호위병사 등 엑스트라들이다.

파카를 껴입은 스태프들에 비해 손과 목 등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궁녀 역 엑스트라들의 맨살은 매서운 바람에 퍼렇게 얼어 있었다. 주역들이 같은 장면을 찍고 또 찍는 동안, 엑스트라들은 춥다는 시늉도 못하고 바람 속에 꼿꼿하게 서 있어야 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500여명 대부분 궁중 살림 맡아

궁녀들, 승은은 멀고 삶은 고달퍼

선정성 논란을 일으켰던 숙종과 장옥정의 혼욕 장면

조선시대의 실제 궁녀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이 부분이 궁금하다면 ‘장희빈’을 한번 눈여겨보기 바란다. ‘장희빈’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영국 PD와 김선영 작가는 ‘궁중 생활사를 실제에 가깝도록 정교하게 복원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그리고 이 장담처럼 ‘장희빈’에는 궁중 생활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비록 언론은 ‘입술로 감 핥기’나 ‘숙종과 장옥정의 혼욕 장면’ 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말이다. 실제로 지난주에 방송된 장옥정이 숙종에게 승은을 입는 장면도 흥미로웠다.

“당시 왕의 눈에 든 궁녀들은 왕과 합방하기 전에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우선 내시부 상궁들이 궁녀의 손·발톱을 깎았는데 이는 왕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 후에 목욕을 시키고 흰 명주천을 이부자리 위에 깔았습니다. 목욕 장면에 대해 말이 많은데 실제로 궁중 사람들이 TV 화면에 등장한 것처럼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피부병을 온천욕으로 고쳤던 세조가 직접 남긴 목욕에 대한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김선영 작가의 말이다. 그는 ‘당시에는 음양의 이치가 곧 과학이자 철학, 의학이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무턱대고 ‘에로물’로 치부되는 바람에 집필에 애로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신명호 박사가 쓴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할, 궁중문화’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궁에는 대략 500여명의 궁녀와 140여명의 내시가 상주하고 있었다. 왕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겠다는 높은 이상과는 달리 궁녀들 앞에 놓인 현실은 고달펐다. 이들의 손끝에서 궁중의 모든 살림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궁녀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일부 궁녀들을 궁 밖으로 내보내 혼인시켜 주었다 한다.

외로움에 지친 궁녀들은 승은을 입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거나 아니면 궁녀간 동성애에 빠지기도 했다. ‘장희빈’에서 중점적으로 묘사할 부분이다. 이미 방영 초기에 옥정과 다른 궁녀의 동성애 장면이 방영되어 적잖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김작가는 ‘궁녀간 동성애는 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흔한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세종실록’에 보면 세자빈이 궁녀와 동성애 사건을 일으켜 세종이 친히 며느리를 문초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물론 동성애는 들키면 사형에 처해지는 중죄였죠.” 장옥정이 궁녀와 동성애 관계였다는 설정은 물론 작가의 상상이지만, 그리 무리한 가정은 아니라는 것.

궁녀들, 승은은 멀고 삶은 고달퍼

장옥정 역을 맡은 탤런트 김혜수.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극 속 숙종의 모습이다. 숙종은 칼싸움, 활쏘기 등 각종 무예에 능하고 밤이면 궁을 벗어나 미행을 나가는 활달한 왕으로 그려진다. ‘장희빈’에서 옥정은 궁녀가 되기 전, 밤거리에서 치한들에게 곤경을 당할 뻔하다 숙종과 처음 마주친다. 숙종은 치한을 물리치고 옥정을 구하는데 이처럼 현대물에나 있을 법한 설정이 300년 전에도 가능했을까?

“인현왕후의 오라비가 쓴 ‘단암만록’이라는 책을 보면 숙종이 미행을 자주 나갔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다만 문헌에는 ‘미행을 나갔다’는 식으로만 기록되어 있지 미행을 나가 무엇을 했느냐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죠. 숙종과 옥정의 만남은 이 같은 공백을 작가적 상상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또 조선시대 왕들은 자리에 앉아 정사만 논한 것이 아니라 활쏘기 등 무술 연마도 했습니다. 활쏘기의 명인이었던 태조 이성계를 잇는다는 뜻이었는데 세조, 숙종, 정조 등이 명사수였다고 합니다.”

김작가는 ‘앞으로도 궁중 생활사를 통해 적잖은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면, 이번 주에 방송되는 숙종과 인현왕후의 가례 장면도 기존 사극과는 다를 것이라고. 왕후로 간택된 소녀는 혼례를 올리기 전 몇 달 동안 궁 옆의 별궁에 들어가 왕실의 법도를 익힌다. 세자빈이나 왕비로 간택된 10대 초반의 소녀들은 이때를 마지막으로 친정과 이별한다. ‘한중록’을 보면 별궁으로 들어가던 날, 슬프고 무서운 마음에 종일 울었다는 혜경궁 홍씨의 회고가 나온다.

‘동성애’는 흔한 사건 실록에 기록

김작가는 ‘궁중에 사는 사람들은 지위를 막론하고 고독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극을 쓰면서 실감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사를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싶다는 것. 앞으로도 세자가 태어날 때 금줄 치는 법과 왕실의 백일잔치,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는 친잠례, 서너 살이 된 세자의 친구들인 ‘배동이’ 들이 궁중에 들어오는 장면 등이 등장할 것이라고.

그러나 ‘장희빈’에 묘사된 방중술에 대해서는 학계의 이견도 있다. 27일 방송분에서 장옥정은 하체를 단련하기 위해 무릎으로 팥을 줍거나 배꼽 위에 얼음을 떨어뜨리는 등 파격적 방중술을 보여준다. 궁녀들의 방중술에 대해 김작가는 “중국 의학서로 당시 조선 의원들이 많이 썼던 ‘황제매경’에 나오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선의학사를 전공한 신동원 박사(한국과학기술원 초빙교수)는 “‘황제매경’은 중국의 이론서이며 그 같은 방법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작가가 필요한 부분을 취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과장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학자들은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갈 수 없지만 이 상상력이 너무 앞서 나가도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 같은 이견 때문에 앞으로 이 극이 보여줄 궁중 생활사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극의 전개에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해도 역사적으로 보여줄 만한 가치가 있는 생활사라면 극에서 최대한 보여줄 겁니다. 궁중의 의식주나 화장문화 등이 극의 질감을 달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이영국 PD의 설명이다. 왕과 왕비, 궁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생활인이었던 궁중 사람들의 삶이 TV 화면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자못 궁금해진다.





주간동아 362호 (p96~97)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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