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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茶道 분야 무형문화재 김의정

음악 꿈 접고… 茶 향한 일편단심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茶道 분야 무형문화재 김의정

茶道 분야 무형문화재 김의정
가야국 김수로왕이 왕비와 함께 지리산 칠불암에 등장한다. 왕비는 인도의 허황옥 공주. 두 사람의 행차는 이곳에서 3년째 수련중인 7명의 왕자들을 만나기 위한 것. 그러나 국왕 내외의 방문임에도 수도중인 왕자들에 대한 면회는 허락되지 않는다.

“마마, 차(茶)를 올릴까 하옵니다.”

수로왕 내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왕자들을 만날 수도 없는데 아무리 향기로운 차라고 한들 무슨 위안이 되겠는가. 그때 왕자들이 수도 끝에 모두 성불(成佛)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제야 수로왕 내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차 한 잔을 마신다.

국내 최초로 ‘가야다례’ 재현

11월7일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 펼쳐진 가야다례(伽倻茶禮) 재현 행사에는 차를 사랑하는 차인(茶人)들뿐만 아니라 각국 대사 부인 등 귀빈들이 줄을 이었다.



이날 붉은빛과 노란색이 절묘하게 배합된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화려한 장신구까지 갖춘 수로왕비 허황옥으로 분장한 중년부인은 이날 행사를 총지휘한 김의정 명원문화재단 이사장(61)이었다. 김이사장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27호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다도(茶道) 분야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인물. 김이사장은 이날 국내 최초로 가야다례를 재현함으로써 한국 다도 2000년 역사의 기원을 찾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야시대의 차에 대한 문헌상 기록이라고는 ‘조선불교통사’에 나와 있는 다음 구절밖에는 없다.

茶道 분야 무형문화재 김의정

김의정 명원문화재단 이사장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선생이었던 센리휴의 15대 후손인 센소시쓰 박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한·일 차(茶) 교류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해 백월산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세상에는 수로왕비인 허씨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라고 전한다(金海白月山有 竹露茶 世傳首露王妃許氏自印度 持來之茶種).’

일반적으로 우리 차의 역사는 일본에 비해 아주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다도가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반면, 한국의 차문화는 명맥을 잇는 것조차 힘겨운 형편이다. 그러나 가야 지방으로 눈길을 돌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현재의 김해 땅 곳곳에 차문화의 흔적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김이사장의 말이다. “현재 김해시 진례면에는 찻골(茶洞)이 있고, 상동면에는 ‘차를 모종한 골짜기’를 뜻하는 ‘다시곡(茶蒔谷)’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김해 동쪽에 있는 계곡인 금강지(金崗趾)의 옛 지명은 다전리(茶田里)구요. 이런 것들만 보더라도 가야 지역에서 차문화가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여태까지 이런 사실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지요.”

김이사장은 쌍용그룹의 창업자인 성곡(省谷) 김성곤 회장의 둘째 딸. 김석원 쌍용 회장을 비롯해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김석동 전 굿모닝증권 회장 등이 모두 그의 남동생이다.

김이사장이 운영하는 문화재단 이름인 ‘명원(茗園)’은 성곡의 부인인 고 김미희 여사의 아호. 김여사는 우리 다도 역사상 처음으로 1980년 생활다례, 궁중다례, 사원(寺院)다례 등의 시연회를 열어 우리 차문화를 일반인들에게 보급하기 시작한 인물이다. 김여사는 다도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보관문화훈장을 추서받기도 했다.



김이사장과 다도의 만남은 그야말로 숙명 그 자체였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어머니 김여사의 손에 이끌려 차 전문가가 있는 곳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 열 살 무렵 김이사장은 어머니 김여사와 일본 오카야마의 대부호가 마련한 다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일본인 중 한 명이 김여사에게 “한국에도 다도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때 분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김이사장은 5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때부터 김여사는 한국의 전통 다도를 찾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차 전문가들을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김이사장 역시 한국 다도를 몸으로 익히고 배웠다. 어머니 김여사는 ‘다도 명인 김의정’을 있게 한 알파요 오메가인 셈이다.

명문가의 둘째 딸로 ‘곱게’ 자라난 김이사장의 꿈이 처음부터 차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화여대 음대에 진학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의 꿈은 세계적 거장들의 음악을 비평하는 음악평론가였다. 그러나 차에 대한 어머니의 일편단심은 김의정의 미래마저도 바꿔놓았다.

음대 진학을 앞두고 입시 준비와 피아노 레슨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학창 시절에도 김의정은 한국 다도 복원에 나선 어머니의 손발이 되어야 했다. 당시 궁중다례를 증언해줄 유일한 생존 인물로 꼽히던 조선의 마지막 상궁 김모, 성모씨를 모셔다가 다례를 재현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고 궁중에서 있었던 각종 배례(拜禮)를 일일이 기록하는 어머니 앞에서 동작을 시현해야 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한창 꿈 많은 시절에 매일같이 어머니와 함께 다기를 씻고 정리하고, 또 씻고 정리하고…. 지겨웠던 적도 많았죠. 그런데 이제는 찻사발에 행여 흠이라도 갈까봐 반지며 목걸이까지 모두 빼내버렸으니….”

특히 이날 가야다례 재현 행사에는 백발의 한 일본인이 끝까지 참관해 눈길을 끌었다. 이 일본인은 일본 다도의 시조로 꼽히는 센리휴(天利休, 1522∼1591)의 15대 손자뻘인 센소시쓰(千宗室)씨. 센리휴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선생이었다. 그러나 조선 정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할복하라는 명령을 받고 목숨을 끊었던 비운의 인물. 그의 15대 후손인 센소시쓰씨는 일본 내에서는 지금도 천황에 버금가는 국민적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고. 현 아키히토 천황의 사촌여동생을 며느리로 맞아 황실과 사돈 관계를 맺기도 했다. 센소시쓰씨는 이날 가야다례 재현 행사에서 “차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을 유독 강조했다.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다기뿐만 아니라 목각이 필요하며 서화와 꽃도 필요합니다. 병풍도 필요하고 음악도 필요하죠. 한마디로 다도는 종합예술이에요.”

차향이 은은하게 나는 따끈한 차 한 잔이 그리워지는 계절. 다도 명인 김의정의 차 인생 이야기는 화롯불 정담처럼 그칠 줄을 모른다.



주간동아 360호 (p72~73)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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