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0

2002.11.21

대부업 숨거나 채무자 다치거나

사채업자 20~30%만 등록 예상 창구 한산 … 벌써 고금리 요구 피해자 양산 가능성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2-11-13 12: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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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업 숨거나 채무자 다치거나

    사채업자들은 정부가 정한 연 66%의 이자율을 지키려면 신용불량자들에 대한 대출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 신촌·서대문·마포구 일대 영세상인들을 상대로 사채를 놓고 있는 김인택씨(47·가명)는 요즘 ‘목하 고민중’이다. 10월 말 정부가 대부업 등록제를 시행한 뒤부터의 일이다. 주로 영세상인들을 상대로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까지 ‘일수’를 놓고 있는 김씨가 지난 1년 동안 깔아놓은 돈은 줄잡아 7000만원. 채무자 숫자만도 70여명에 이른다. 5000만원 이상의 자금을 운용하는 대부업자를 상대로 등록 의무를 규정한 대부업법에 따르면 김씨 역시 서울시에 대부업 등록을 하고 연 이자율 66%라는 이자 상한선을 준수해야 한다.

    현재 김씨는 채무자에게 100만원을 100일 동안 빌려주고 액면 금액 120만원짜리 약속어음을 받는다. 채무자들은 이 돈을 하루에 1만2000원씩 100일 동안 갚아 나가게 된다. 채무금액 100만원에 대해서 100일 동안 무는 20만원의 이자를 연이율로 환산하면 대략 73%(월 6%)에 이른다.

    연 66% 이자 상한선 준수해야

    그러나 대부업법 발효 이후 정부가 정한 연 이자율 상한선 66%(월 5.5%)에 맞추기 위해 김씨는 같은 금액을 빌려준 채무자들에게 매일 받는 금액을 1만1800원으로 낮춰야 할 판이다. 게다가 그동안은 채무자가 부담해오던 3만원의 공증비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다. 김씨가 관리하는 채무자가 대략 7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출기간 100일 기준으로는 350만원, 이를 1년으로 환산하면 약 1300만원 가량의 손해를 보는 셈이다.

    1300만원은 일수를 통해 김씨가 1년간 버는 금액의 절반 가까운 수준. 그동안 공사현장을 전전하기도 하고 인테리어업에도 뛰어들어 보았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1년 전부터 사채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씨로서는 수익의 절반을 포기하면서까지 법망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처럼 일수를 놓는 사채업자들은 대략 전체 사채업자의 20%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대부업 등록 대상인 채권금액 5000만원 안팎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움직임이 대부업 등록제 성공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10월27일부터 등록을 받기 시작한 각 지방자치단체 등록 창구는 아직까지 한산하기만 한 형편. ‘1호 등록’을 차지하기 위해 국내 대금업체와 일본계 대금업체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 무색할 정도다. 11월7일 현재 등록업체 수는 444개로 업계에서 추정하는 전체 사채업자의 10%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처럼 등록률이 형편없으리라는 것은 이미 등록 시작 전부터 충분히 예상됐던 상황이다. 얼마 전 한국대부사업자연합회가 회원업체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3000개 회원 중 등록 의사를 밝힌 곳은 208개에 불과했다. 전체의 7%에도 못 미치는 수준. 사채업자 A씨는 “주변 사채업자 10명 중 3∼4명은 영업 중단을, 3∼4명은 등록하지 않고 그냥 영업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법망 안으로 들어와 이자 상한선을 지켜가면서 영업을 계속하겠다는 사람은 기껏해야 20% 정도라는 이야기다. 금융감독원 역시 전체 업체를 4만개 정도로 봤을 때 이중 3000∼4000개 정도가 등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부업 등록을 해놓고 연 66% 이상의 이자를 받게 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여기에 비해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고 사채 영업을 할 경우 받게 되는 처벌은 5년 이하의 징역에 5000만원 이하의 벌금. 상황이 이런 탓에 한 사채업자는 “어차피 3000만원 이하 벌금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이나 큰 차이 없는데 뭐 하러 등록하느냐는 분위기도 팽배하다”고 전했다.

    한국대부사업자연합회 유세형 회장도 “현재 사채업자들의 자금 조달 코스트나 채무자들의 부실률 등을 감안해보면 연 이자를 174% 정도는 받아야 먹고살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등록을 마친 대부업체들은 채무자 신용분석 기능을 갖추고 온라인망을 통한 관리의 표준화 등을 통해 과학적 관리 시스템을 갖춘 선두업체 몇 개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본격적으로 대부업 등록제가 실시되면 30% 정도는 대부업을 포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등록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고 나면 사채업자들은 자금 조달 금리도 낮춰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실률을 낮추기 위해 적극적인 채무자 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사채 신세를 졌던 신용불량자들 중 상당수가 돈을 끌어다 쓸 수단이 막막해져 버린다는 이야기다. 사채업자 B씨는 “정부가 정한 66%의 연 이자율로 대출해줄 수 있을 정도의 신용을 갖춘 사람들은 현재 사채를 쓰는 사람 전체의 20%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사채 소비자의 80% 정도가 더 높은 금리를 주고 불법 업체를 찾거나 자금 조달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 같은 주장은 사채업자들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합법적인 사채시장에서도 돈을 빌려 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고 해서 이들이 하루아침에 신용불량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겠느냐”면서 사채업자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에서 이런 상황을 악용해 벌써부터 신용불량자들로부터 리스크 프리미엄 형식의 고금리를 요구하는 경우마저 나타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내년 1월 말 등록 유예 기간이 끝나고 합법·불법 업체의 경계선이 확정되면 불법 업체들이 악성 신용불량자들로부터 리스크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게 사채업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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