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2

2002.05.03

맥주도 잔 단위로 판다?

캐나다, 술 판매 장소·음주행위 엄격 규제… 관광 등 고려 점차 규제 완화 추세

  • < 황용복/ 밴쿠버 통신원 > ken1757@hotmail.com

    입력2004-09-21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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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도 잔 단위로 판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한 사람들이 가장 확연하게 느끼는 문화적 차이 중 하나는 술과 관련된 것들이다. 캐나다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가정집 등 사적인 장소 이외에는 주류 취급 전문 업소(술집 또는 주류 취급 면허를 가진 식당) 안에서만 술 마시는 행위를 허용한다.

    한국에서는 공원이든 길가든 대중이 보는 장소에서 술 마시는 행위가 위법이 아니다. 그러나 캐나다 대부분의 지방에서 술 마시는 행위는 가정집 등 사적인 장소 아니면 주류 취급 전문업소(술집 또는 주류 취급 면허를 가진 식당) 안에서만 허용된다.

    가지고 나가 마실 술을 파는 가게를 엄격히 규제하는 점도 한국과 다르다. 술 중에서 ‘리커’(liquor)라 불리는 위스키·브랜디·럼 등의 독주(발효주를 증류해 알콜 도수를 높인 술)는 리커 스토어(liquor store)란 간판을 붙인 전문점에서만 판매된다. 이들 리커 스토어들은 10개 주 중 앨버타 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는 주정부 직영으로 운영된다.

    맥주나 포도주 등 발효주는 주정부 가 아닌, 민간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도 판매된다. 하지만 이들 가게 역시 퀘벡 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는 주정부의 술 판매 면허를 받아야 하고, 이를 통해 가게 수가 제한된다.

    술 관련 규칙 무려 5800가지



    한국에서 술은 과자나 청량음료 정도로 사기 쉽고 마시는 데도 제한이 없지만 캐나다에서는 ‘경계해야 할 특별한 상품’으로 여겨진다. 이는 19세기부터 1930년대까지 북미 역사의 중요한 대목을 이룬 절주운동(Temperance Movement)과 금주령(Prohibition)의 영향이다.

    절주운동은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돼 북미로 들어온 캠페인이다. 산업혁명 후 공장 노동자 등 도시 빈민들이 고달픈 하루를 잊기 위해 술에 빠져들고 이 때문에 가정이 망가지는 일이 빈번해지자 이 운동이 시작됐다.

    금주령은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절주운동을 정부 차원에서 떠맡아 술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기 위해 제정한 법을 말한다. 이 법은 캐나다보다 미국에서 더 강도 높게 시행돼, 연방정부는1920년부터 12년간 전국적으로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다.

    절주 운동과 금주령은 미국을 통해 캐나다로 들어온 시대 조류였기 때문에 미국에도 술을 금기 상품으로 보는 경향이 남아 있다. 그러나 캐나다는 미국에 비해 사회주의적 정부 정책의 농도가 짙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술에 관한 정부 간섭이 더 까다롭다.

    그러나 캐나다 내에서도 술 관련 규제가 가장 많은 주에 속하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서 3월 중순 주정부가 완화 방안을 발표해 화제가 되고 있다. 골자는 △민간 주류 판매점에서의 증류주 판매 허용 △18종류로 나뉘어 있는 술 서비스 업소 면허를 전문 술집과 식당으로 이원화 △무려 5800가지에 이르는 술 관련 규칙 중 25%를 폐기하는 것 등이다.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시민의 상당수가 반대하고 있으나 술집 등 관련 업소와 관광업계 등에서는 대환영이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는 술 관련 규칙이 많다 보니 한국인의 눈에 희한하게 보이는 내용도 많다. 전문 술집이 아닌 식당(물론 술 서비스 면허를 가진)에서 손님이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술부터 청할 때 주인은 이를 거절해야 하며, 전문 술집에서도 술을 병 단위로 손님에게 팔아서는 안 되고 맥주든 양주든 반드시 잔 단위로 팔아야 하는 것 등이 그 예다.

    캐나다에는 음주에 대한 규제가 무척 많지만 캐나다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술을 덜 마신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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