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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영어 때문에 조기유학, 애 망칩니다”

3남매 美 명문대 보낸 부모의 체험기… “정체성 갖춘 중3 정도 가장 이상적”

  • < 뉴욕=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영어 때문에 조기유학, 애 망칩니다”

“영어 때문에 조기유학, 애 망칩니다”
양희라: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졸업.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및 로레알 그룹 근무.

양희원:하버드 로스쿨 졸업. 매킨지 컨설팅 및 카젠버그 법률회사 근무.

양희민: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재학중. 전자공학 전공.

열한 살짜리 큰딸과 다섯 살짜리 막내아들까지 3남매를 데리고 20여년 전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은 부모가 자식농사를 이렇게 지어놓았다면, 당연히 최근 몇 년 사이 대한민국 모든 부모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로 자리잡은 조기유학의 대성공 사례로 꼽을 만하다. ‘나는 내 아이를 이렇게 키웠다’며 미국 명문대학 입학을 자랑하는 부모들의 조기유학 성공기는 이미 서점에서 고정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지 오래.

그러나 3남매를 이렇게 키워 미국에 남겨놓고 한국으로 돌아온 양영치(62) 이숙정씨(59) 부부에게서 화려하고 감동적인 유학 성공기를 기대하기는 애당초 어려워 보였다. 3남매 모두 하버드와 MIT에 입학시킨 비결을 묻는 질문에 두 사람은 똑같이 “가족간의 신뢰와 애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공자님 말씀으로 대답했기 때문이다.



“영어 때문에 조기유학, 애 망칩니다”
“아이들에게 늘 아빠와 엄마가 서로를 끔찍이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했죠. 엄마는 현관 앞에 아빠 구두가 놓여 있으면 아이들이 절대로 뛰어넘지 못하도록 했고, 아빠는 엄마가 식사 준비를 끝내고 식탁에 함께 앉은 다음에야 아이들이 숟가락을 들도록 했습니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도 집에서 직접 된장을 담가먹을 정도로 ‘한국식’을 강조하는 어머니 이씨에게는 성공한 유학생 부모들이 흔히 보여주는 극성스러움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가족간의 신뢰와 화목을 신앙처럼 강조하는 이들 가족은 희한하게도 가족간의 수평적 토론문화가 오늘의 결과를 낳은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버지 양씨로부터 전화번호 하나 받아 들고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어렵게 만난 큰딸 양희라씨(32)는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아버지의 ‘뉴욕타임스 교육’을 꼽았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아버지는 3남매에게 뉴욕타임스의 사설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읽도록 했다. 어린 3남매는 매일같이 뉴욕타임스의 사설을 통해 레이건의 감세정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했고, 중동분쟁에서 미국의 역할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펼쳐보기도 했다. 이들 나이 또래로는 소화하기 어려운 주제가 분명했지만 이러한 방식을 통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토론하는 능력을 길러주려 했다는 것이 아버지 양영치씨의 설명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반박하거나 공격하지는 않지요. 몇 군데 허점을 짚어주면 저희들 스스로 ‘뭔가 잘못됐구나’ 하고 느끼는 것 같습디다. 그렇다고 해도 족집게로 집어내듯이 결론을 내는 것은 금물입니다.”

이 무렵 딸들의 일기장에는 “우리 집에는 비싼 가구나 자동차는 하나도 없고 ‘타임’이나 ‘뉴스위크’ 같은 잡지만 산처럼 쌓여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산처럼 쌓인 잡지는 양영치씨 가족 ‘밥상머리 교육’의 살아 있는 교재였다.

양씨 부부를 포함한 다섯 가족은 저녁마다 한식으로 차려진 식탁에 앉아 이런 식의 토론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했다. ‘사회학습반’(social study class)이라고 이름 붙인 이 ‘토론식 수업’ 초기에는 아이들이 다소 지루해했지만, 아이들이 먼저 이 시간을 기다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밥상머리 토론수업은 큰딸 희라씨나 둘째 희원씨가 각각 하버드 비즈니스스쿨과 로스쿨에 입학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비즈니스스쿨은 입학 자격 중 실무 경험을 중요시하고, 로스쿨 역시 입학자격시험(LSAT)뿐만 아니라 학생회 활동 등 대외 활동의 경험을 중요하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양씨 부부는 최근 한국에서 불고 있는 조기유학 열풍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 그렇다면 양씨 부부가 ‘가진 자의 오만함’ 같은, 남들 사정 모르는 한가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것일까. 가만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아이를 너무 일찍 미국에 유학 보내면 부모는 한국 사람, 자식은 미국 사람이 되기 십상이죠. 이 경우 노후에 행복하기는커녕 부모 자식 간의 뛰어넘을 수 없는 정서적 차이로 외로움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충분히 안정되고 정체성을 확고히 한 뒤에 유학을 보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어머니 이씨는 “자녀들의 미국 유학은 9학년(한국 교육제도로는 중학교 3학년)부터 보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자녀들의 조기유학을 계획하는 부모들은 아이들만 보내는 것이 못 미더워 친척집에 맡기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러나 이씨는 이런 방식으로는 자녀들이 대학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영어 때문에 조기유학, 애 망칩니다”
“미국에는 9학년부터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학교(Boarding School)가 많습니다. 이런 학교들은 9학년부터 미국의 대학 과정과 학습 방법이 비슷하기 때문에 졸업후 대학생활에 좀더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의 미국 유학에 관심을 갖는 부모들이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을 미국행 비행기에 태우려는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영어문제 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과목을 잘해도 영어에서 뒤지면 미국 아이들과 경쟁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절박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또 일부 부모들은 ‘어차피 한국에서는 틀렸으니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라도 제대로 건져보자’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 그러나 양씨 부부는 부모들의 이런 태도에 대해 단호하게 손을 내젓는다.

“무조건 영어를 주입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면 단어보다는 문장을 외우게 하고, 반드시 영어로 된 동화책을 읽도록 하세요. 일기장에 단어만 늘어놓더라도 영어 일기를 쓰게 해서 선생님께 틀린 부분을 수정받도록 하고요. 이렇게 자꾸 영어를 소리 내서 읽게 만하면 어느 날 영어 동화책을 통째로 외우고 있는 걸 발견할 거예요.”

다섯 살 때 한국을 떠나 줄곧 미국에서 살아온 둘째 딸 희원씨도 무조건적인 조기유학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도 영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얼마나 많아요. 우선은 가족끼리 화목한 생활을 누리면서 차근하게 영어공부 하다가 열다섯 살쯤 돼서 유학 오더라도 미국 명문대학 진학하는 데 큰 지장은 없지요. 또 그렇게 유학와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주변 친구들도 많이있고요.” 영어 하나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아빠’를 남겨두고 미국행을 선택해 봤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얘기다.

하버드와 MIT에 연달아 합격한 3남매의 또 다른 공통점은 공부 이외의 과외활동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 3남매 모두 첼로 피아노 바이올린 등에 각각 일가견이 있는 데다 줄리어드 예비학교에서 현재 자신의 전공과는 관계없이 악기를 전공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 자체가 미국의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지름길이었다는 말이다.

“무조건 빨리 미국에 오기만 하면 성공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 같아요. ‘공부만’ 한 샌님은 미국 대학에서는 사절입니다.”

뉴욕의 희라 희원씨 자매는 자신들이 인터뷰 대상이 될 정도로 한국에서 조기유학에 관심이 높은 사실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주간동아 2002.05.03 332호 (p44~45)

< 뉴욕=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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