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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살인극’ 타깃은 더 있었다

당초 친구 때린 동급생 2명 대상으로 삼아 … “영화 ‘친구’ 보고 의리 새삼 깨달아”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중학생 살인극’ 타깃은 더 있었다

‘중학생 살인극’ 타깃은 더 있었다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가 발생한 지난 4월15일 오후 서울 금천구 A중학교에서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이 학교 3학년5반 방모군(14)이 옆반인 3학년4반 교실에서 수업중이던 김모군(14)을 담임교사와 학생 30여명이 보는 앞에서 흉기로 난자한 것. 자신의 절친한 친구 최모군(14)이 이날 김군에게 폭행당한 것에 격분해 ‘복수’를 결심했다는 게 방군의 범행 동기다.

연이은 추락사고 속보로 이 ‘교실 살인사건’은 이내 묻혔지만, 일부 언론은 무참히 죽음을 맞은 김군이 A중학교의 소위 ‘짱’(폭력서클 우두머리로 예전의 ‘캡’과 같은 의미)이고, 김군이 평소에도 최군(3학년8반)을 괴롭혔다고 부각했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김군은 A중학교의 ‘짱’이 아니다. 그가 최군에게 수시로 폭력을 가했다는 내용 또한 전혀 밝혀진 바 없다. 더욱이 방군이 살해하려던 ‘타깃’은 김군만이 아니었다. 방군은 왜 범행을 저지른 걸까.

숨진 김군, 짱이라는 보도 ‘사실무근’

‘중학생 살인극’ 타깃은 더 있었다
취재 결과 방군이 최군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김군을 충동적으로 살해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방군의 범행 당일 행적은 극히 단순 명료하다.



그는 이날 점심시간, 김군 등 학생 서너 명이 운동장 한구석에서 “평소 말을 안 들어 버릇을 고치겠다”며 최군을 10여분간 때리고 발로 차는 광경을 목격했다. 4년 전 부모가 이혼한 방군에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형제처럼 지내온 최군은 가족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 방군은 점심시간 후 담임교사의 양해를 얻어 양호실로 갔다. “방군이 ‘머리가 아프다’며 찾아와 드링크제를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양호실을 나갔다”는 게 학교측 답변.

그러나 방군은 바로 교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학교에서 700m쯤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갔다가 학교로 돌아왔다. 그의 손엔 집에서 가져온 흉기가 들려 있었다. 6교시가 진행중인 오후 2시40분. 그는 수행평가(글쓰기) 수업이 한창인 3학년4반을 찾아 교실 뒷자리에 앉은 김군의 뒷목과 등을 흉기로 찔렀다. 사건을 목격한 교사와 학생들에 따르면 방군은 교실 앞쪽으로 도망가는 김군에게 거듭 흉기를 휘둘렀고, 김군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흉기에 찔린 부위는 여덟 곳. 직접 사인은 대동맥 자창(刺創)에 의한 출혈과다였다.

‘중학생 살인극’ 타깃은 더 있었다
사건 직후 방군은 곧장 인근 파출소에 자수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는 친구가 맞는 걸 보고도 김군에 맞서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한 자신에 대해 심한 자괴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범행 동기를 일관되게 진술했다. 방군은 4월18일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살해된 김군은 일부 언론에 의해 ‘학교 짱’으로 과장 보도돼 사자(死者)의 명예를 침해받았다. “김군은 ‘학교 짱’이 아니다. 사건기록과 보도자료 어디에도 ‘짱’이란 표현은 없다.” 사건을 맡은 서울 남부경찰서 박태균 형사는 “이는 이미 지난 1월 또 다른 학교폭력사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이라고 밝힌다(상자기사 참조). 기자와 접한 몇몇 A중학교 학생 역시 “김군은 ‘짱’이 아니다”고 답했다.

숨진 김군이 평소 최군을 괴롭혔다는 보도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 경찰과 학교측에 따르면 그런 내용은 확인된 바 없다. 상습폭력 사실이 극히 불분명한데도 개연성에만 집착해 ‘짱’ ‘상습폭력’ 등 일종의 정형화된 학교폭력 보도 방식 틀에 끼워 맞춰 이 사건을 보도했다는 의혹을 배제하기 힘들다.

이번 사건은 자칫 또 다른 살인을 부를 뻔했다. 보도된 바는 없지만, 방군은 김군을 살해하기 전 3학년1반 J군(14)을 교실 밖으로 불러냈다. J군은 이날 교내 화장실에서 방군의 또 다른 초등학교 친구인 C군(14)의 뺨을 때렸다. 하지만 방군은 J군에게 “학생부로 가라”는 한마디만 남겼을 뿐 그를 살해하진 않았다. 방군은 경찰조사에서 “당초 J를 죽이려 결심했지만, 막상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그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찌를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피의자 방군의 평소 생활은 어땠을까. 방군은 경찰조사에서 “영화 ‘친구’를 보고 친구간 의리를 새삼스레 깨달아 최군을 돕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범행 수법을 본떴다고는 진술하지 않았다. 영화를 통해 ‘의리’를 연상하긴 했지만, 지난해 10월의 부산 고교생 ‘짱’ 살인사건에서처럼 범죄 수법을 모방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중학생 살인극’ 타깃은 더 있었다
어렵게 취재에 응한 A중학교 박모 교감(교장은 이번 사건으로 4월17일 직위해제)은 “방군은 극히 평범하고 덩치도 크지 않아 교사들 사이에서 좀체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결손가정 출신이라 다소 내성적이었지만, 특이 사항은 없었다. 성적도 반에서 중위권에 속했다”고 말했다. 방군의 아버지 역시 “평소 아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진 못했다. 하지만 아들이 말썽부리거나 다른 친구와 싸우고 오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아들의 잘못이 명백한 만큼 사죄할 뿐, 더 할 말이 없다”고 입을 닫았다. 시흥동에 있는 피해자 김군의 집도 굳게 문이 잠긴 상태였다.

사건 수습을 위해 4월16일부터 3일간 휴교한 A중학교는 19일부터 정상수업을 재개했다. 그러나 학교측과 교육청 간 학교 조기안정화 및 학교폭력 대책 논의로 여전히 어수선한 분위기다. 4월19일 오후 3시30분 A중학교 인근 곳곳에는 하교길 자녀들을 마중 나온 학부모들이 눈에 띄었다. 한 학모는 “유사 사건 재발에 마음 졸이지 않는 학부모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방군처럼 평소 평범한 학생들마저 ‘시한폭탄’ 터지듯 분노를 폭발하는 학교폭력의 비극에 대한 우려였다. 이번 사건의 충격도 바로 이 점에 있다.





주간동아 2002.05.03 332호 (p36~37)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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