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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시한폭탄’ 김홍걸

“내 자식은 문제없어” … 국정 혼란 불렀다

DJ 부부, 세 아들 시중 소문 사실 아니라고 확신 … 각종 의혹이 악재로 돌변 김대통령 발목 잡아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내 자식은 문제없어” … 국정 혼란 불렀다

“내 자식은 문제없어” … 국정 혼란 불렀다
”홍걸씨 파워는 결국 김대중 이희호 부부에게서 나왔다.” DJ 저격수 출신 한나라당 L의원의 진단이다. L의원의 지적은 ‘자식 허물은 부모 책임’이란 광의의 연대책임론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가시스템이 몇 차례 경고음을 냈음에도 문제를 시정하지 않고 오히려 아들을 옹호한 대통령 부부의 온정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이자 비판 성격이 강하다. 부정과 모정을 이기지 못해 결국 홍걸씨의 행동을 외면했고 이것이 홍걸씨를 각종 의혹 사건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L의원은 이런 과정에서 파생된 각종 악재들이 김대통령 부부를 짓누르고 이것이 청와대 기능을 후퇴시키며 국정을 혼란으로 이끄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식, 그 가운데 ‘막내’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런 의미에서 홍걸씨는 DJ 부부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씨는 서울지검에 출두하기 전(4월15일) 미국에 있는 홍걸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께 얘기해 나 좀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홍걸씨는 민원이 있으면 청와대에 전화해 해결했다”는 말이 정치권에 나도는 만큼 최씨의 전화 내용이 던지는 의미는 새롭다.

“내 자식은 문제없어” … 국정 혼란 불렀다
홍걸씨를 옆에서 지켜본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미국에 있는 홍걸씨는 이여사와 거의 하루 걸러 한 번꼴로 통화한다”고 말했다. 평소 홍걸씨의 잦은 귀국을 지켜본 한 주변 인사가 홍걸씨에게 “왜 그렇게 자주 들어오느냐”고 묻자 홍걸씨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한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잦은 귀국에 대한 명분이 없어 둘러댄 말일 수 있지만, 어쨌든 어머니와 막내의 관계가 빌미를 제공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김영삼 정부 시절 현철씨의 국정 농단을 지켜본 김대통령 부부가 홍걸씨에게는 왜 이렇게 관대했을까. 지난 80년대 중반까지 동교동 가신으로 활동하며 김대통령 부부와 세 아들의 관계를 지켜본 한 인사의 설명이다.

“홍걸씨는 김대통령 부부가 40대에 낳은 늦둥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가 납치돼 바다에 수장당할 뻔했고,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생 시절에는 아버지가 사형수였다. 남과 다른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여러 일들이 어린 자식에게 감당하기 벅찬 고통을 안겨주었고, 이 때문에 김대통령 부부는 홍걸씨에게 항상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내 자식은 문제없어” … 국정 혼란 불렀다
김대통령 부부의 자식에 대한 온정주의를 읽을 수 있는 사례는 많다. 98년 초 김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아들들과 관련된 시중의 소문을 듣고 있던 법조계 원로 J씨가 김대통령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 문제를 건의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J씨는 “홍일이 홍업이 홍걸이를 외국으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 아들들이 바른 길을 가려 해도 부나방 같은 청탁꾼들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야당 시절 아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었는데 대통령에 당선돼서까지 내보낼 일이 있겠느냐. 그 문제는 나에게 맡겨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 더 험한 말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자리를 같이했던 이여사가 J씨에게 “그런 얘기를 하려거든 (청와대에) 들어오지 마세요”라며 불쾌한 감정을 직접 전달했다는 것.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 소문은 정치권에 널리 퍼졌고, 그 후 아들들의 거취에 대한 건의는 더 이상 대통령에게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홍걸씨는 대통령의 신뢰를 바탕으로 ‘영식’으로 변한 신분에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다. 94년 처음 LA로 건너갔을 때 홍걸씨는 월셋방에 살며 소형 ‘왜건’을 탔다. 베일 속의 인물로 통할 만큼 조용한 유학 생활을 하던 그였지만 98년 이후 홍걸씨는 고통스러웠던 과거사를 보상받으려는 듯 주변 변화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100만 달러를 호가하는 호화주택에 고급차의 대명사인 ‘렉서스’를 타고 다녔다.

홍걸씨의 미국 생활을 지켜본 한 인사의 증언. “YS 정권 초기 미국에 머물던 은철씨(장남)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몰렸지만 YS가 사람을 보내 차단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홍걸씨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베일 속 인물이었던 홍걸씨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제재하는 경우는 없었다. 아마도 최규선씨처럼 홍걸씨 주변을 서성이던 사람은 앞으로도 많이 나올 것이다.”

이 인사의 지적처럼 미국에 있는 홍걸씨는 이미 정치 지망생과 ‘자리’를 탐하는 인사들로부터 집중 타깃이 됐다고 한다. 지난 2000년 총선을 앞둔 어느 날 여권 중진 K씨는 “어떻게 지내느냐”며 홍걸씨를 찾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이 인사는 “언제 귀국하느냐” “귀국하면 아버지에게 내 얘기를 좀 해달라”는 등의 청탁성 민원을 던졌다고 한다. 그 후 교포 사회에서는 “K씨가 유학중인 홍걸씨에게 용돈을 주고 갔다”는 소문이 퍼졌다.

지난 99년 여름 뉴욕 등 미국 동부 지방을 돌던 자민련 고위 관계자 K씨도 “영식님 계시느냐”며 LA에 있는 홍걸씨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홍걸씨가 자리를 비운 것을 안 K씨는 “기회가 되면 찾아뵈려고 했는데 말씀이나 전해달라”며 전화를 끊었지만 부분 개각설이 나돌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그가 홍걸씨를 찾으려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내 자식은 문제없어” … 국정 혼란 불렀다
홍걸씨는 미국에 간 이후 한 번도 직업을 가진 적이 없는 학생 신분이다. 그렇지만 학업에는 별로 뜻이 없어 보였다. 한 교민 신문은 ‘석사 학위 과정을 7년째 다니는 홍걸씨’를 꼬집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학생 신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호화주택 구입 자금 출처, 융자 신청서에 미국 시민권자 사칭, 취업 허위 기재 등은 그의 요즘 활동과 관심사가 무엇인지 읽을 수 있는 좌표가 된다.

홍걸씨의 생활 터전은 미국이었지만 몸과 마음은 항상 ‘서울’을 향했다. 검찰에 따르면 홍걸씨는 그동안 방학은 물론 매월 한 차례 정도씩 입국했던 것으로 보인다. 귀국할 때는 4~5일 또는 1주일 가량 서울에 머물렀다. 검찰은 홍걸씨가 서울 체류 기간에 최규선씨 등을 만나 돈을 받아가곤 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 진위를 확인중이다. 최씨는 지인들에게 홍걸씨와 동업자 관계임을 과시하고 다녔고 각종 이권 개입의 매개로 활용했다. 본인도 모르게 로비에 이용됐는지, 적극적으로 나섰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개입 및 이권 개입 의혹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자연 홍걸씨를 둘러싸고 말이 많아졌다.

아들 3형제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잇따라 터져 나왔던 지난해 말, 보다 못한 김대통령은 이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먼저 김대통령은 김홍일 의원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한테 돈을 받은 적이 있느냐?”

이에 대해 김의원도 비장하게 답했다.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받은 것이 밝혀지면 두번 다시 아버지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그 직후 김대통령은 박지원 특보(현 비서실장)에게 은밀히 내사를 시켰다고 한다. 홍업씨도 같은 방법으로 스크린 했다. 그러나 나온 것은 없었다는 게 청와대 비서실 C씨의 설명이다.

“내 자식은 문제없어” … 국정 혼란 불렀다
홍걸씨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청와대 가족회의에서 홍걸씨는 여러 차례 최규선씨 등 몇몇 인사와의 관계를 지나치다 싶을 만큼 추궁당했다. 그 과정에 홍걸씨가 “왜 믿어주지 않느냐”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며 청와대를 뛰쳐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희호 여사는 그런 홍걸씨를 뒤에서 지켜봐야 했다.

2001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인 이날 김대통령의 세 아들과 며느리 손주 등이 청와대에 모두 모였다. 홍걸씨도 방학을 맞아 귀국했다. 즐거운 시간이 끝나갈 즈음 김대통령은 세 아들에게 시중의 소문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대통령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아들들의 해명을 100% 믿었고 2002년 1월7일 직접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큰아들은 선거 때 (진승현씨가) 와서 돈 5000만원을 주겠다는 것을 거절했고, 작은아들은 (진씨의 로비스트인 최택곤씨가) ‘도와달라’고 했으나 “그럴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 사실이 이런데도 항간에는 (아들들이) 연루된 것처럼 (허위)소문이 돌고 있다. 세상이 참 어렵다.”

전적으로 아들들의 해명에 근거한 말이지만 김대통령은 시중에 퍼진 소문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김대통령은 그렇게 홀가분하게 아들 문제를 정리하고 넘어가려는 듯했다.

“내 자식은 문제없어” … 국정 혼란 불렀다
그러나 이들 부자간의 대화는 겉돈 것이었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됐다. 특검은 3월25일 ‘이용호 게이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성환씨의 차명계좌로 드나든 100억원대 자금 중 10억원은 홍업씨의 돈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홍걸씨를 둘러싼 각종 소문도 그 일부가 사실임이 최근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김대통령으로서는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머리가 다 큰 자식들을 근본적으로 통제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사실과 다른 아들들의 해명을 믿은 김대통령은 권력 행사와 권위 유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들들의 일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신경이 예민해진 것은 이여사도 마찬가지. 지난 2월 보물선 의혹 사건에 연루된 조카 이형택씨(전 예금보험공사 전무)가 구속되자 친정 쪽 친지들에게 눈시울을 붉히며 “빨리 (청와대를) 나가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그때도 그랬는데) 막내 문제가 터진 지금 심정이 오죽하겠는가”라며 이여사 분위기를 설명한다. 더구나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지난 4월15일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부패의 정점에 있다”며 1월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김홍일 의원과 홍걸씨를 만나러 갔을 때 가져간 외교행낭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자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 부부를 압박하는 악재는 여기서 그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김홍걸씨와 최규선씨 사건에 연루돼 청와대 비서실부터 마치 첩보영화의 주무대처럼 인식됐다. 최성규 총경 기획망명 의혹 때문에 이만영 정무비서관이 20일 검찰 조사를 받는가 하면, 최규선씨의 돈을 받고 대통령 일정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은 이재만 수행비서(대통령 제1부속실 3급 행정관)는 지난 20일 사표를 제출했다.

“내 자식은 문제없어” … 국정 혼란 불렀다
검찰 수사를 저지하기 위한 최규선씨의 로비와 관련, 노인수 사정비서관과 또 다른 비서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고 홍걸씨와 이신범 한나라당 전 의원의 민사소송 과정에 개입한 윤석중 비서관의 역할도 도마에 올랐다. 청와대에는 지난 1, 2월 ‘이용호 게이트’ 등의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당시 박준영 공보수석, 이기호 경제수석 등이 옷을 벗거나 구속됐을 때와는 다른 팽팽한 위기감이 감돈다. “임기 말 증후군을 넘어 비틀거리는 청와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청와대 C 비서관)는 자괴감이 흘러 나올 정도다.

이런 흐름을 타고 한나라당은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16일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김대통령 아들들에 대한 특별검사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던 한나라당이 20일에는 대통령 아들들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이 규명되지 않을 경우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검토하는 등 강력한 대응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과거 같으면 정치 논리를 동원, 방어망을 구축했던 당은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이미 권노갑씨 등 과거의 동지들은 하나둘 김대통령 곁을 떠나고 있다. 김대통령은 요즘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김대통령이 나설 차례”라는 언론의 십자포화 속에서도 김대통령과 이여사는 아들 문제에 대해 일절 코멘트하지 않고 있다.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의 정점을 지나 하산길에 오른 김대통령의 주변에는 박지원 실장만이 곁을 지키고 있다. 80년 사형수의 절대 고독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불태웠던 김대통령. 그는 과연 덮쳐오는 ‘왕자들의 난’을 어떻게 처리할까.





주간동아 2002.05.03 332호 (p12~15)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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