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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고난의 땅’ 아프간을 가다

급행료·바가지… ‘달러’에 혈안

나라 전체가 도덕 불감증 … 통역에게 환전 의뢰했더니 절반이나 ‘꿀꺽’

  •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급행료·바가지… ‘달러’에 혈안

아프간엔 나무가 귀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아프간은 나무 한 그루 없이 삭막한 민둥산이다. 그런 척박한 토양 위에서 20년 넘게 전쟁을 치르다 보니 사람들의 정서도 메마를 대로 메말랐다.

지금 카불엔 많은 외국인이 들어와 있다. 그중 상당수가 취재기자 또는 아프간 재건사업에 뛰어들려는 사업가들이다. 이를 두고 현지인들은 ‘골드 러시’라 부른다. 카불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속임수와 엄청난 바가지로 이들을 상대한다. 아프간 특수를 맞아 저마다 한몫 챙기려고 생각하는 것.

카불 시내에서 65km쯤 떨어진 바그람 공항까지 택시를 타면 편도요금만 무조건 95달러다. 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외국 기자들은 비행기를 기다리며 한결같이 “테러블”(terrible)이라 내뱉었다. 필자가 고용한 운전사는 자기 차량이 조금이라도 카불시 경계선을 벗어나면 95달러를 매겼다. 그것도 마지막 날 공항에서 돈을 치를 때 알게 된 ‘카불식 요금 계산방식’에 따른 것이었다.

카불에 닿은 다음날 겪은 황당한 일. 호텔에서 소개한 통역 자와드와 함께 서울 남대문시장과 비슷한 곳으로 가 100달러를 현지 화폐인 아프가니로 바꾸었다. 필자는 차 속에 남고, 자와드가 혼자 가서 바꿔오도록 했다. 환율은 1달러에 3만 아프가니. 따라서 100달러면 100만 아프가니 세 뭉치가 되는 게 정상. 필자는 자와드를 믿고 그가 건네주는 대로 받아 가방에 넣었다. 그러나 점심시간에 호텔로 돌아와 가방을 열어보니 50달러어치도 채 안 되는 아프가니만 들어 있었다. 자와드에게 따져 묻자 슬쩍 따로 챙긴 20달러만 내놓으며 우물쭈물한다. 그는 조금 전까지도 필자에게 “당신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친구로 잘 지내고 싶다”고 되풀이해 말했다. 가난이 그의 판단력을 잃게 했을까. 아직도 의문이다.

하급 공직자의 부패는 어느 나라에나 있을 수 있지만, 아프간의 경우는 특히 심하지 않나 싶다. 아프간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카불로 몰려 너도나도 관련자 인터뷰를 신청하고 나섰다. 가장 많이 몰린 쪽은 압둘라 외무장관. 필자도 많은 신청인 가운데 하나였다. 카불에 머문 8일 동안 날마다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 면담 일정이 잡혔는지 체크했지만, 대답은 “기다려달라”는 것. 그런데 필자보다 늦게 카불에 닿아 같은 호텔에 묵고 있던 2명의 외국 기자가 압둘라 장관을 만났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뭔가 잘못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얼굴을 익힌 이탈리아 기자에게 어떻게 빨리 만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양쪽 검지와 엄지 손가락을 모아 직사각형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싱긋 웃었다. 인터뷰 일정을 담당하는 외무부 하급직원에게 100달러를 쥐어줬다는 것이다. 100달러라면 그 직원의 한 달 월급보다 적어도 1.5배는 많은 액수다(하위직 공무원 월급은 50달러 수준). 6개월째 월급을 못 받은 공무원에게 100달러는 큰 유혹일 것이다.



2000년 봄 시에라리온 내전 취재 때 그곳 공무원들로부터 자주 들은 말이 “Show me your morale booster”였다. 말하자면 떡값을 달라는 얘기였다. 10년 내전은 그들에게서 체면을 생각할 여지를 앗아가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 세력과 1년간 짧은 전쟁을 치른 코소보는 달랐다. 6개월 단위로 세 번에 걸쳐 그곳에 갈 때마다 ‘코소보 알바니아인은 이슬람적 자존심을 지니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가 다녀본 분쟁지역 가운데 아프간 민심은 최악이었다. 한마디로 도덕 불감증에 걸린 나라다. 전쟁 기간과 민심의 황폐는 정비례하는 것일까. 24년 철권 지배를 겪은 동티모르의 순박한 민심을 떠올리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주간동아 321호 (p38~38)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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