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4

2001.12.20

BB와 FIFA 그리고 문화제국주의

  • 조용준 기자

    입력2004-12-10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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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와 FIFA 그리고 문화제국주의
    따뜻한 가족의 보살핌도 기대하기 어렵고, 젊고 화려한 시절의 미모만 기억하는 대중에게 쭈글쭈글하게 늙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은, 그래서 고집과 편견만 더 성하게 된 프랑스 할머니에게 개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일 터다.

    특히 BB(브리지트 바르도)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한때 수많은 사내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이 할머니가, 과거 소녀에서 여인으로 탈바꿈하던 그 탱탱한 시절에 출연한 ‘신사분 용서하세요’ ‘내 몸에 악마가 있다’ 등의 영화 제목처럼 숱한 남자를 갈아치운 육체파 여배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의 개에 대한 집착은 엉뚱한 상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16세부터 시작된 무수한 애정 행각으로 스캔들의 여왕이 된 그녀는 스스로 “밤마다 내 곁에는 반드시 남자가 있어야 한다”고 고백했으며, 시몬 드 보부아르는 “BB는 사랑도 배고프면 먹는 것처럼 단순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BB는 기네스북의 ‘최대 섹스 베스트 남녀 5’에 들기도 한다. 호사가들이 추정하는, 그녀가 섹스를 가진 날은 무려 4980일(13년하고도 6개월).

    아양과 충성밖에 모르는 애완 문화는 문화제국주의

    어쨌든 올해로 67세 된 이 프랑스 할머니가 한국의 개고기 음식문화에 대해 88올림픽 때부터 이러저러한 불평을 늘어놓으며 국제사회에 못된 짓거리를 하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관대하게 넘겨왔다. 흔히 낭만의 도시라고 일컬어지는 파리가 보도마다 개똥 천지고, 바캉스 시즌만 되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애완견을 두고 바닷가로 피서 떠난 주인에게 버려진 개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프랑스 전역에 가득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비웃을 수도 있었지만, ‘남의 나라 일’이고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기에 시비 걸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인을 ‘거짓말하는 야만인’으로 몰아세우면서 자신의 할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몰지각하고 천박한 BB의 행태에 이르면 과연 누가 더 야만스러운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67세 할머니에게 아직 관능미가 남아 있는지 FIFA(국제축구연맹)조차 한국 정부에 개고기 요리의 금지를 요구한 사실 앞에서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단순하게 말해 도대체 축구와 개고기가 무슨 상관인가. 그러나 이렇게 말했다간 무식한 작자가 되기 십상일 터고,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월드컵 주최국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16강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우리’를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FIFA나 올림픽조직위 같은 스포츠 권력의 문화제국주의적 ‘음모’에 맞서 우리가 얼마나 ‘우리 것’을 지켜내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스포츠는 개인과 집단의 세력을 과시하는 전형적인 시위의 일환이다. 정복과 파괴라는 ‘원초적 본능’의 대리충족이기도 하다. 더구나 축구는 럭비를 제외하고 아마도 집단전투 요소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스포츠일 것이다. 따라서 무기 대신 공을 사용하는 ‘대리 전쟁’의 집행자로서 FIFA가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에 대해 이러저러한 문화간섭을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돈과 권력의 노리개가 다 된 ‘스포츠 흥행사’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스폰서인 ‘문화패권기업’(예를 들어 코카콜라나 나이키 같은)들에 보여줄 필요성도 다분하다.

    NBA의 스타 마이클 조던을 ‘미국식 문화제국주의의 선봉’으로 규정한 ‘마이클 조던, 나이키, 지구 자본주의’의 저자 월터 레이피버는 미래의 전장(戰場)을 헌팅턴류의 ‘문명 대 문명’이나 마르크스류의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가 아니라 ‘자본 대 문화’라고 역설한다.

    감정의 기복이 많은, 그래서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인간보다 ‘벗으로서의 개’는 부리기에 편리하고 단순하다. 그 개는 오직 주인에 대한 아양과 충성밖에 모른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사람은 영원히 ‘나의 것’으로 할 수 없지만, 개는 손쉽게 ‘내 것’이 된다. 확대 해석하면 애완 문화는 점령하고 정복해 ‘내 것’을 만들기 좋아하는 문화제국주의적 속성의 축소판이 아닐까도 싶다. 월드컵 전쟁은 휘슬이 채 울리기도 전에 그라운드가 아니라 생활과 문화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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