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2002년 대선)는 민주화 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기 힘들어. 민주화 세력의 양 축인 양김(김대중-김영삼)이 집권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어. 또다시 민주화 세력이 나선다면 국민이 받아들이겠어?”
지난 9월, 대선 출마와 관련해 도움을 요청하러 온 한 인사(대선주자)에게 허주(虛舟·민국당 김윤환 대표의 호)는 직설적으로 자기 생각을 전달했다. 1시간 남짓 이어진 대화에서 이 인사는 도움은커녕 쓴소리만 잔뜩 들었다. 물러나는 그의 등 뒤에 허주는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이번에는 민주화 세력이 근대화 세력과 손을 잡고 도와줘야 해.”
비슷한 시기, 허주를 찾은 민주당 다른 대선주자가 받은 대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신은 영남 벽을 넘지 못해.”
폐부를 찌르는 한마디로 허주는 상대방의 기를 꺾었다.
70세(32년생)를 넘긴 노정객 허주가 마지막 투혼을 사르고 있다. ‘킹 메이커’로서 정권 창출을 향한 허주의 투지는 곳곳에서 표출된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치인’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그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사람을 만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필드(골프장)로, 호텔 커피숍으로, 사무실로, 때로는 자택(방배동)으로 사람을 청한다.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양김부터 민주당 대선주자 6인과 정치 지망생에 이르기까지 만나는 사람은 다양하다. 한 측근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만 빼고 다 만났다”고 다소 과장되게 허주의 폭넓은 활동 반경을 설명한다.
허주를 찾는 인사들은 대선으로 가는 지름길을 묻거나 도와달라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허주는 “당신은 당권을 잡는 게 현실적이야” “아직 때가 아니다”는 등 기대와 다른 답을 내놓기 일쑤다. 앞서가는 사람의 뒷덜미를 잡거나 뒤로 처진 인사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줄 때도 있다. 팽팽한 균형을 유지해 ‘허주 구상’이라는 우산 아래 모두 모으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허주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구상을 비교적 솔직하게 토로한다.
“정치 현실상 영남 쪽 지지를 받지 못하는 후보를 내놓으면 정권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영남후보론과 “정계개편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권을 이회창 총재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다” 는 정계개편론이 허주 구상의 양 날개다. 관심을 보이는 인사들이 있으면 구체적인 설명이 보태진다.
“내년 초 정계개편이 이뤄지면 신당이 출현할 것이다. 신당은 당정을 분리하고 제왕적 1인독재 정당을 타파하기 위해 분권적 민주체제를 도입하며 총리 2년 임기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4년 중임 및 부통령제 등을 위해 국민투표 등을 검토할 것이다.”
그가 갖는 정치적 상징성과 어눌한 달변이 합해지면 듣는 사람은 일순간 당황한다. 그때쯤 허주는 상대방에게 허주호(號) 승선을 요청한다. 허주호 승선을 요청받은 인물 중에는 양김도 포함된다. 지난 11월20일 허주는 JP(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오찬을 가졌다. 24일에는 경기도 서서울CC에서 골프 회동을 가졌다. “운동만 했을 뿐”이라는 JP 측근들의 해명보다 “어느 때인데 한가하게 운동만 했겠느냐”는 민국당 관계자들의 설명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지난 12월4일에는 자민련 김종호 국회부의장을 만나 ‘반창(反昌)연대론’에 대해 논의했다. 그 직후 자민련은 신승남 검찰총장 탄핵안 표결과 관련해 당론을 급선회했다.
지난 9월, 허주는 YS를 방문해 “정계개편에 앞장서 달라”고 요청했다고 상도동 사정에 밝은 한나라당 한 인사는 전한다. 지난해 여름 김대중 대통령이 허주에게 “민국당을 꼭 잡고 있으라”고 말했다는 것은 지금도 정치권에 회자되는 이야기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허주는 ‘남의 집’ 일에도 곧잘 개입한다. 10·25 재·보선 참패 후 민주당 내 동교동 신·구파가 내홍을 겪을 때다. 허주는 양갑(권노갑-한화갑)이 갈라서면 민주당이 좌초한다는 판단 아래 중재에 나섰다. 지난 11월 초 한화갑 고문을 만나 “동교동이 흩어지면 모두 죽는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11월8일에는 권노갑 전 위원과 비공개 골프회동을 통해 양갑 갈등의 조기 봉합을 건의했으며 11월17일 도쿄에서 또다시 권 전 위원을 만나 비슷한 얘기를 전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두 사람은 비교적 속내를 숨기지 않는 사이.
그 무렵 허주는 박지원 전 청와대정책기획수석과도 만나 양갑 갈등의 조기 봉합을 위한 해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민주당 김원기 고문, 박지원 전 수석을 비롯해 무소속 정몽준 의원, 김혁규 경남지사, 이수성 전 총리 등도 허주 구상의 허리를 떠받칠 수 있는 주요 인사에 포함된다. 따라서 허주의 각별한 마음이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특히 박 전 수석의 경우 민주당 쇄신파동을 전후해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났다(상자기사 참조)”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빈번하게 접촉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설명이다. 전용학 김성호 의원 등 언론인 출신 민주당 의원들도 허주를 찾는다. 한나라당 인사들에 대한 접촉 빈도도 늘고 있다. 박근혜 부총재에게는 이미 지난 여름부터 그의 구상이 전달된 상태라고 한다.
요즘은 민정계 출신 인사들과의 접촉도 늘리고 있다. 허주 주변에서는 이미 한나라당 의원들의 탈당 리스트도 거론된다. 허주측이 작성한 리스트에는 경남의 중진 P의원을 비롯해 한나라당 의원 5, 6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허주는 만나는 사람에 따라 눈높이를 바꿔 현실을 진단하고 비전과 대안을 제시한다. “당신이 나서면 된다”는 말에서부터 특정인을 거론하며 “그 사람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측면 지원을 해달라”에 이르기까지 처방전은 다양하다.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허주에 대해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 우선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평가가 있다. 허주를 만난 민주당 한 인사는 허주 구상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려움은 있지만 최선책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혹평도 나온다. 민주당 대선주자의 한 측근은 “허주의 총기가 흐려졌다”며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겠느냐”고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허주는 이런 지적이나 시선에 괘념치 않는다. ‘내 갈 길만 가겠다’는 입장이다. 허주는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근대화 50년을 마무리하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임무”라고 강조한다. 반창 연대와 영남후보라는 쌍 돛은 이런 자신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수단인 셈이다.
과연 그는 마지막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관건은 허주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태우느냐에 달린 것 같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듯 연말과 연초 그의 스케줄 표는 빈칸이 없을 정도로 빡빡하다.
지난 9월, 대선 출마와 관련해 도움을 요청하러 온 한 인사(대선주자)에게 허주(虛舟·민국당 김윤환 대표의 호)는 직설적으로 자기 생각을 전달했다. 1시간 남짓 이어진 대화에서 이 인사는 도움은커녕 쓴소리만 잔뜩 들었다. 물러나는 그의 등 뒤에 허주는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이번에는 민주화 세력이 근대화 세력과 손을 잡고 도와줘야 해.”
비슷한 시기, 허주를 찾은 민주당 다른 대선주자가 받은 대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신은 영남 벽을 넘지 못해.”
폐부를 찌르는 한마디로 허주는 상대방의 기를 꺾었다.
70세(32년생)를 넘긴 노정객 허주가 마지막 투혼을 사르고 있다. ‘킹 메이커’로서 정권 창출을 향한 허주의 투지는 곳곳에서 표출된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치인’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그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사람을 만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필드(골프장)로, 호텔 커피숍으로, 사무실로, 때로는 자택(방배동)으로 사람을 청한다.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양김부터 민주당 대선주자 6인과 정치 지망생에 이르기까지 만나는 사람은 다양하다. 한 측근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만 빼고 다 만났다”고 다소 과장되게 허주의 폭넓은 활동 반경을 설명한다.
허주를 찾는 인사들은 대선으로 가는 지름길을 묻거나 도와달라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허주는 “당신은 당권을 잡는 게 현실적이야” “아직 때가 아니다”는 등 기대와 다른 답을 내놓기 일쑤다. 앞서가는 사람의 뒷덜미를 잡거나 뒤로 처진 인사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줄 때도 있다. 팽팽한 균형을 유지해 ‘허주 구상’이라는 우산 아래 모두 모으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허주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구상을 비교적 솔직하게 토로한다.
“정치 현실상 영남 쪽 지지를 받지 못하는 후보를 내놓으면 정권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영남후보론과 “정계개편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권을 이회창 총재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다” 는 정계개편론이 허주 구상의 양 날개다. 관심을 보이는 인사들이 있으면 구체적인 설명이 보태진다.
“내년 초 정계개편이 이뤄지면 신당이 출현할 것이다. 신당은 당정을 분리하고 제왕적 1인독재 정당을 타파하기 위해 분권적 민주체제를 도입하며 총리 2년 임기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4년 중임 및 부통령제 등을 위해 국민투표 등을 검토할 것이다.”
그가 갖는 정치적 상징성과 어눌한 달변이 합해지면 듣는 사람은 일순간 당황한다. 그때쯤 허주는 상대방에게 허주호(號) 승선을 요청한다. 허주호 승선을 요청받은 인물 중에는 양김도 포함된다. 지난 11월20일 허주는 JP(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오찬을 가졌다. 24일에는 경기도 서서울CC에서 골프 회동을 가졌다. “운동만 했을 뿐”이라는 JP 측근들의 해명보다 “어느 때인데 한가하게 운동만 했겠느냐”는 민국당 관계자들의 설명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지난 12월4일에는 자민련 김종호 국회부의장을 만나 ‘반창(反昌)연대론’에 대해 논의했다. 그 직후 자민련은 신승남 검찰총장 탄핵안 표결과 관련해 당론을 급선회했다.
지난 9월, 허주는 YS를 방문해 “정계개편에 앞장서 달라”고 요청했다고 상도동 사정에 밝은 한나라당 한 인사는 전한다. 지난해 여름 김대중 대통령이 허주에게 “민국당을 꼭 잡고 있으라”고 말했다는 것은 지금도 정치권에 회자되는 이야기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허주는 ‘남의 집’ 일에도 곧잘 개입한다. 10·25 재·보선 참패 후 민주당 내 동교동 신·구파가 내홍을 겪을 때다. 허주는 양갑(권노갑-한화갑)이 갈라서면 민주당이 좌초한다는 판단 아래 중재에 나섰다. 지난 11월 초 한화갑 고문을 만나 “동교동이 흩어지면 모두 죽는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11월8일에는 권노갑 전 위원과 비공개 골프회동을 통해 양갑 갈등의 조기 봉합을 건의했으며 11월17일 도쿄에서 또다시 권 전 위원을 만나 비슷한 얘기를 전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두 사람은 비교적 속내를 숨기지 않는 사이.
그 무렵 허주는 박지원 전 청와대정책기획수석과도 만나 양갑 갈등의 조기 봉합을 위한 해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민주당 김원기 고문, 박지원 전 수석을 비롯해 무소속 정몽준 의원, 김혁규 경남지사, 이수성 전 총리 등도 허주 구상의 허리를 떠받칠 수 있는 주요 인사에 포함된다. 따라서 허주의 각별한 마음이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특히 박 전 수석의 경우 민주당 쇄신파동을 전후해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났다(상자기사 참조)”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빈번하게 접촉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설명이다. 전용학 김성호 의원 등 언론인 출신 민주당 의원들도 허주를 찾는다. 한나라당 인사들에 대한 접촉 빈도도 늘고 있다. 박근혜 부총재에게는 이미 지난 여름부터 그의 구상이 전달된 상태라고 한다.
요즘은 민정계 출신 인사들과의 접촉도 늘리고 있다. 허주 주변에서는 이미 한나라당 의원들의 탈당 리스트도 거론된다. 허주측이 작성한 리스트에는 경남의 중진 P의원을 비롯해 한나라당 의원 5, 6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허주는 만나는 사람에 따라 눈높이를 바꿔 현실을 진단하고 비전과 대안을 제시한다. “당신이 나서면 된다”는 말에서부터 특정인을 거론하며 “그 사람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측면 지원을 해달라”에 이르기까지 처방전은 다양하다.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허주에 대해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 우선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평가가 있다. 허주를 만난 민주당 한 인사는 허주 구상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려움은 있지만 최선책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혹평도 나온다. 민주당 대선주자의 한 측근은 “허주의 총기가 흐려졌다”며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겠느냐”고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허주는 이런 지적이나 시선에 괘념치 않는다. ‘내 갈 길만 가겠다’는 입장이다. 허주는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근대화 50년을 마무리하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임무”라고 강조한다. 반창 연대와 영남후보라는 쌍 돛은 이런 자신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수단인 셈이다.
과연 그는 마지막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관건은 허주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태우느냐에 달린 것 같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듯 연말과 연초 그의 스케줄 표는 빈칸이 없을 정도로 빡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