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1

2001.11.29

거대한 정신병동에서의 도피

  • < 김미도/ 연극평론가 > midokim@dreamwiz.com

    입력2004-11-24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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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정신병동에서의 도피
    우리는 이제 한시도 ‘엿보기’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백화점, 슈퍼, 목욕탕, 화장실 등 어디에 설치되어 있을지 모르는 감시 카메라나 몰래 카메라가 개인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까지 무자비하게 엿볼 수 있다. 윤영선 작·연출의 ‘파티’(12월2일까지, 연우소극장)는 바로 ‘엿보기’의 공포에서 출발한다.

    한적한 시골의 멋진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젊은 교수 부부는 이사하자마자 누군가 집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집주인 김가형은 빈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로 그동안 책 속에만 빠져 살아온 삶에 심각한 회의를 느끼고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것을 계기로 자연친화적 삶을 살고자 한다. 그의 아내 이주희는 세련된 외모와 서구적 생활 감각을 갖고 있으나 사소한 일도 크게 의심하고 걱정하는 강박관념의 소유자다. 화려한 전원주택을 매입해 이사온 도회의 지식인 가족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부러움과 호기심 한편으로 시기심과 적대감을 품는다.

    거대한 정신병동에서의 도피
    이들 사이의 본격적인 충돌은 동장을 위시한 마을 사람들이 심야에 이 전원주택을 방문하여 환영 파티를 열겠다는 요청에서 비롯된다. 결국 이 집안으로 몰려들어온 마을 사람들은 환영 플래카드까지 펼쳐 들고 한바탕 축가를 불러젖히며 여러 가지 안주를 꺼내놓고 술자리를 벌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 사람들의 비합리적이고 무례한 행동이 증폭된다. 교수 부부가 위화감과 적대감을 드러낼수록 마을 사람들의 난장판은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지고 거실은 거의 무법천지로 변한다. ‘화해의 길 트기’로 명명되었던 이사 축하 파티는 결국 이질적 존재인 김가형 교수 가족을 마을에서 추방하려는 음험한 음모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극은 오늘날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불가시적인 공포를 집약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몰래 관찰되거나 감시당하는 불안, 같은 부류가 아니면 화합할 수 없는 철저한 배타의식, 합리성과 교양으로 가장된 언어의 폭력, 언제 사기꾼이나 강도로 돌변할지 모르는 이웃, 모두를 의심하고 불신하는 태도, 그것은 결국 거대한 정신병동과 같은 세계다.

    ‘그로테스크 심포니’로 명명된 이 작품은 엽기적인 분위기 속에 코믹한 요소들을 잘 버무려 놓았다. 마을 사람들이 벌이는 예측 불허의 행동들은 폭소를 유발하면서도 그 배면으로부터 서서히 불안과 위협의 무드를 상승시켜 나중에는 객석까지 숨막히는 공포로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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