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1

2001.11.29

친숙하게 다가서는 문화적 코드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1-24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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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숙하게 다가서는 문화적 코드
    올 여름 극장가에 ‘방콕 데인저러스’라는 영화가 걸렸을 때까지만 해도 태국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 영화는 우리 극장가에서 처음 선보인 태국영화다. 청부살인업자 청년의 암울한 삶을 현란한 스타일로 그려낸 이 영화는 감각적인 영상과 심장박동 같은 리듬에 실린 강렬한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국내 영화팬들은 “옛날 홍콩영화 같다”며 외면해 버렸지만 사실 이 영화는 지난해 토론토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한 화제작이었고, 평론가들은 이 영화의 쌍둥이형제 감독 옥사이드 팡과 대니 팡에게 ‘태국의 오우삼’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태국영화를 주목하라’. 17일 폐막한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태국영화에 유달리 깊은 관심을 나타내면서 영화팬들에게 이런 명제를 던졌다.

    친숙하게 다가서는 문화적 코드
    태국영화 ‘수리요타이’가 폐막작으로 선정된 데 이어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 등 수십명의 태국영화계 인사들이 부산을 찾았다. 태국영화 11편이 상영된 ‘태국영화 특별전’을 비롯해 태국영화 관련 세미나와 ‘태국영화의 밤’ 등 여러 행사도 열렸다. 부산영화제가 특정 국가의 영화를 모아 상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화제의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앞으로 우리는 태국영화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아시아 영화의 중심세력이 중국, 이란, 대만, 한국을 거쳐 태국으로 확장되고 있다. 태국의 영화산업은 우리의 현실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고 설명했다.

    영화제 폐막작 ‘수리요타이’는 태국영화 사상 최다 제작비 5억 바트(150억원)가 투입된 대하역사극으로 16세기 포르투갈에 맞서 태국의 독립을 지켜낸 실존인물 수리요타이 여왕의 생애를 담은 작품이다. 지난 8월 태국에서 개봉하자마자 3개월 뒤의 입장권까지 매진되는 진기록을 낳았다. 태국영화 최초로 100% 외국 자본으로 제작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태국영화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이 밖에 올 상반기 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블록버스터 ‘방라잔’, 과감한 성애묘사와 홍콩 여배우 종려시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은 ‘잔다라’ 역시 영화제 내내 화제를 모았다.



    지금 태국영화는 양적·질적으로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잔다라’ 제작사 시네마시아의 대표 듀앙카몬 림차로엔은 “올해 태국에서는 25편의 영화가 제작됐다. 이는 지난 2년 동안 만들어진 영화보다 더 많은 숫자다. 태국영화의 수익은 작년보다 5배 늘어난 10억 바트에 이르렀으며, 자국 시장 점유율도 급상승해 올해 20%가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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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국 영화시장 점유율 50%대를 전망하는 우리와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태국영화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는 아시아의 어느 나라 부럽지 않다. 위시트 사사나티엥 감독의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올해 칸영화제 공식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었고 최근에 제작되는 태국영화는 미국·유럽 배급사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편집·녹음 등 아시아에서는 정상급의 후반 작업기술도 태국영화의 저력을 뒷받침한다. 왕자웨이 등 세계적인 유명 감독들이 태국에서 영화 후반 작업을 자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금융위기로 허덕이고 있던 태국영화계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젊고 유능한 감독·제작자들이었고 그들의 성공이 창출한 새로운 자본의 힘이다. 평론가들은 ‘전반적으로 내러티브가 탄탄하고 표현력이 풍부하며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는 점을 태국영화의 강점으로 꼽는다. 여기에 또 하나. 태국영화는 세계 곳곳의 관객에게 익숙하게 다가가는 문화적 코드를 갖고 있다. 동성애 문화에 익숙한 서구 관객들이 태국의 게이 영화 ‘철의 여인’에 열광적인 찬사를 보낸 것처럼 ‘세계적 보편성’을 추구하는 태국영화의 전략을 우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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