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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바이올린의 기구한 유랑생활

1713년산 스트라디바리 ‘깁슨’… 수차례 실종·도난 겪은 뒤 51년 만에 햇빛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명품 바이올린의 기구한 유랑생활

명품 바이올린의 기구한 유랑생활
1999년 개봉된 영화 ‘레드 바이올린’은 한 명기(名器) 바이올린의 파란만장한 사연을 그린 영화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레드 바이올린’은 알프스의 수도원, 영국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문화혁명기 중국을 거치는 험로를 겪는다.

이 ‘레드 바이올린’과 흡사한 실화가 있다. 최근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33)이 400만 달러(약 52억원)에 구입한 1713년산 스트라디바리 ‘깁슨’의 행로는 영화 못지않게 드라마틱하다. 더욱 공교롭게도 조슈아 벨은 ‘레드 바이올린’의 연주를 담당했던 바이올리니스트다.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명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은 과르네리와 함께 세계 최고가를 형성하는 바이올린이다. ‘깁슨’은 이 장인의 솜씨가 최절정에 이른 시점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깁슨’이라는 이름은 첫번째 소유주였던 앨프레드 깁슨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댈러스 모닝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깁슨은 두 번이나 도난당하고 50년간 실종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근에는 법정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깁슨은 몇 사람을 거쳐 20세기 초 폴란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브로니슬라우 후버만의 소유가 되었다. 후버만은 1919년 빈에서 악기를 도난당한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악기 중개상의 손에 들어간 깁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36년 후버만은 미국으로 연주여행을 왔다가 카네기홀 대기실에서 다시 바이올린을 분실하고 말았다. 당시 영국의 로이드 보험사는 후버만에게 보험료만 3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 후 50년간 깁슨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뉴욕 뒷골목 클럽의 무명 연주자가 이 명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만 떠돌았다.

깁슨이 다시 세상에 등장한 것은 도난당한 지 정확히 51년 후인 1987년. 마르셀 홀이라는 노파가 깁슨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떠돌이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안 알트만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1985년 감옥에서 사망한 남편이 그녀에게 깁슨을 넘겨주며 평생 묻어두었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1936년 알트만은 한 집시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카네기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시가 하나로 경비원을 꾀어 홀 안에 들어갔다가 비어 있는 분장실에서 깁슨을 발견하고 이 악기를 코트 속에 숨겨 가지고 나왔다. 그러나 희대의 명기를 훔쳤는데도 알트만은 별다른 부나 명성을 얻지 못한 채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악기에 대한 일차적 권리를 소유하고 있던 로이드 보험사는 악기 가격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6만 달러를 지불하고 홀에게서 깁슨을 인수했다. 그러자 알트만의 딸이 이 금액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부인과 딸 사이에 법정 공방이 시작되었다. 10년이나 끈 이 공방은 결국 홀의 승소로 끝났다. 그러나 긴 법정투쟁 동안 26만 달러를 거의 허비한 홀은 소송이 끝난 직후 무일푼인 채 세상을 떠났다. ‘레드 바이올린’의 소유자들이 모두 불행을 맞았던 것처럼 깁슨 역시 소유주들에게 시련만 안겨준 셈이다. 한편 깁슨은 다시 유럽으로 건너갔다. 로이드 보험사가 깁슨을 100만 달러 가격으로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히 연주해 본 이 악기의 음색에 반한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올해 4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주고 깁슨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명품 바이올린은 400년간 진화하고 다시 400년간 퇴화한다’는 속설이 있다. 긴 방랑 끝에 드디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주인을 만난 깁슨이 그동안 맺힌 한(?)을 풀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주간동아 2001.11.29 311호 (p68~68)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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